정성훈 씨의 딸 마봉필

장미는 장미라고 이름 붙기 전에도 향기로웠지

by 정란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잘 모르는 특징이 있다. 별나다면 별나고 특이하다면 특이한 취향. 이름에 대한 것이다. 대학 신입생 때 첫 연애를 시작했다. 동기였던 그는 주위 사람들이 모두 알아챌 정도로 내게 호감을 표했으며, 꽤나 여러 번 고백했다. 나는 꽤나 여러 번 거절한 후에 그와 교제를 시작했다. 친구 이상의 감정이 생기는 데는 그 후로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 왜 연애부터 시작했느냐면, 그를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웃음소리가 호탕했고, 꽤나 재미있었으며, 내가 맞춤법을 잘 지키는 모습에 반해버렸다는 제법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도 거절하면 그와 친구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애를 시작하는 이유와 타이밍이 얼마나 제각각인지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내 이름은 성을 합쳐 두 글자인데, 그의 이름은 성을 합쳐 네 글자였다. 우리를 더해 나누면 셋이 되지 않느냐고, 하나씩 모자라고 하나씩 넘치는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지 않느냐고 농담을 하곤 했다. 한국인의 이름이 성을 합쳐 세 글자여야 한다는 법칙도 없는데 말이다. 사랑은 때로 그렇게나 얼토당토않다.


그는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고, 그즈음 그 또래 남자아이들은 대체로 군인이었다. 곰신(군인의 연인을 칭하는 말) 카페에서 알게 된 한 여자아이는 자기 남자친구를 '균'이라 불렀다. 그의 이름은 지극히 평범했으나, 그녀가 이름의 끝 자만 따 그를 "균아" 하고 부를 때면, 이름 주변에는 꽃이 피고 벌이 날아다녔다. 내 남자친구는 이름의 어디를 따서 불러도 꽃은 피지 않을 것 같았다. 그와 헤어진 후 나는 마음속에 작은 로망 하나를 품었다. '끝 자를 부를 때 예쁜 모양인 사람과 사귀어야겠다' 그리고 내가 정한 끝 자는 '섭, 균, 동'이었다.


배낭여행 중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넘어가는 기차. 나는 기차 안에서 이름이 '동'으로 끝나는 사람을 만났다. 우연이었다. 그는 계획 없이 떠나온 여행이라 숙소조차 예약해놓지 않았다 했고, 내가 묵는 백패커스에서 묵어도 되겠냐고 물었다. 그 백패커스가 내 소유도 아니었으니, 그가 나를 따라 숙소까지 가는 것은 자유였다. 숙소로 가는 길에 내 캐리어에서 바퀴가 하나 빠졌고, 그는 그것을 다시 끼워주겠노라했다. 나는 인터라켄(Interlaken)에 머무는 동안 그와 동행했다. 어쩌다 보니 넓은 잔디 운동장 앞에서 입도 맞췄는데, 그건 순전히 그의 이름이 '동'으로 끝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섭균동 로망'은 시시하게 막을 내렸다. 이름 끝 자 같은 것에 의미 부여하다간 시시한 여행만 하게 될 거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이름이 예쁜 사람에게는 호감이 간다. 예쁜 이름을 발견하면 꼭 뜻도 함께 물어본다. 그러니 인터뷰 질문 중에 느닷없이 이런 게 끼어 있었던 거다.



앞으로는 지금의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 살아야 한다면,
어떤 이름을 갖고 싶은가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빠가 새로운 이름을 짓는다면 앞으로는 그렇게 부를 요량으로 만든 질문이었다. 거의 예순 해를 부모가 지은 이름으로 살았다면, 남은 예순 해 정도는(나의 진실된 바람이다) 아빠가 스스로 지은 이름으로 사는 것도 근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빠가 고민 끝에 짓는 이름은 어떤 모양에 어떤 소리를 갖고 있을까?' 설레며 답을 기다렸다. 아빠의 입에선 의외의 답이 흘러나왔다.


"내가 옛날에 이름을 하나 지은 게 있어."


아빠가 이미 이름을 지어두었다고? 서른두 해를 살며 처음 듣는 얘기였다. 아빠는 담담하고 반듯하게 말을 이었다.


"성훈이라고. 성훈이라고 지은 게 있어."

"무슨 뜻인데?"

"그냥, 내가 만약에 내 이름을 개명을 한다면 성훈이라고 지었다고."

"왜?"

"그냥. 이름이 돌림자도 아니고 좀 괜찮은 것 같아서. 옛날에 그때 철학관에 갔는데 이름을 바꾸면 좋다 그래서. 돌림자가 있어도 사람들이 불러주는 이름으로 성훈으로 해도 된다고 해서 내가 정성훈이라고 지었지. 법적으로 개명하지는 않고, 내가 그냥 지어서 노트에 적어 놓은 적이 있어."

"무슨 한자야?"

"이룰 성에 공 훈 자."

"왜 그렇게 지었어?"

"성공하고 잘되기 위해서. 부르기도 좋고."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일 년에 두 번씩 꼬박꼬박 아빠와 함께하던 행사가 있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교과서를 쌓아두고 책 기둥에 이름을 쓰는 일이었다. 아빠는 어린 딸의 책 더미를 옆에 쌓아둔 채, 바닥에 엎드려 온 정신을 집중해 한 권 한 권, 한 자 한 자, 책에 딸의 이름을 새겼다. 아주 예민한 금속물질에 무척 중요한 내용을 음각하듯 진지하고 신중한 모습이었다. 책 한 권에 아빠의 서체로 '정 란'이 무사히 새겨지면 아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나는 몸을 들썩이며 박수를 쳤다.


그런 아빠가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노트에 새 이름을 새기는 걸 생각하니 마음이 이상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아빠의 삶. 내가 목격하지 못했으나 분명하고 뚜렷하게 그곳에 존재했던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고민하고 희망하며 진지하고 신중하게 써 내려갔을 이름. 정성훈. 그때 아빠의 표정은 어땠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름. 그게 뭐기에 우리는 이토록 그것에 집중하고, 바라보고, 만지고, 주무르고, 뜯어내거나 덧붙이는 걸까. 아는 동생이 추천한 스님에게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이메일로 생년월일시와 이름을 보내면 한글 파일로 사주 풀이를 보내준다. 50장이나 되는 페이지에 적힌 한글과 한자와 숫자들을 하나도 빼지 않고 샅샅이 읽었다. 그 안에 이런 게 있었다. 성명학. 내 기운을 보강해 준다는 자음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내 새 이름을 지었다. 마봉필. 아무 생각 없이 성까지 바꿔 버렸다. 가족과 연인에게 내 새 이름을 알려주고, 그렇게 불러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블로그 닉네임과 포털사이트의 이름도 죄다 마봉필로 변경했다.


이런 적도 있다. 블로그에서 하루에 하나씩 보내주는 질문을 받을 때였다. 어느 날은 이런 질문이 배달되었다.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여러분의 소중한 이름 뜻을 알려주세요!'


난초 란. 내 이름의 뜻을 쓰다가 문득 이름을 검색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찾은 정보.

'난초 란을 이름에 쓰면 외로워질 수 있다.'


젊을 때 불 같았던 아빠를 닮은 아직 불 같은 딸은, 바로 휴대폰 뚜껑을 열고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빠! 이름에 난초 란 들어가면 안 좋대!"

"그래?"

"어! 내 이름 왜 이렇게 지었어!"

"…"

"… 짜증 나"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투덜댔고, 아빠도 조금 언짢아진 것 같았다.

"그거 따질라고 전화했나?"

"어!"

"그럼 바꿔라 왜"


서른 해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름이다. 동네방네 들고 다니며 자랑하고 싶었던 이름. 다음 생까지 쓰고 싶은 마음이 불 같은데, 정보의 바다는 불길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것도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저딴 거 믿을 게 못 된다며, 지들이 뭘 알겠냐며 가운데 손가락으로 창을 닫았다.





정성훈(일 뻔했던) 씨는 젊은 날 노트에 적었던 이름으로 살고 있지 않으며, 아무도 그를 성훈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그가 정의한 성공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을까. 마봉필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을지 모를 좋은 기운을 포기한 채 조금은 외로운 이름으로 살고 있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건 정성훈 씨의 딸이 마봉필이라는 것. 마봉필의 아버지는 정성훈이라는 것. 이름이야 어떻든, 우리는 우리가 희망했던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뚜벅뚜벅 이 생을 걷고 있다.


딸자식이 고작 몇 개의 세포에 불과했을 때부터 고민하며 지어낸 이름 . 수많은 선택지 중 가장 빛이 났던 이름 정란. 그로부터 서른 해가 지난 어느 날, 느닷없이 다 큰 딸이 전화를 걸어 왜 자기 이름이 란이냐고 따진다. 이름을 진작 성훈으로 바꿨으면, 이렇게 지랄 맞은 딸을 가진 아버지가 되지는 않았으려나. 라고 아버지가 생각하지는 않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무리한다.




아빠. 나는 내 이름이 정말 좋아. 원래도 좋았는데, 이제는 완벽하게 좋아졌어.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정말 힘이 센 관용구인데, 내 이름 앞에 서서 그걸 지켜주겠노라 공표했거든. 당장에 이름을 바꾸지 않으면 평생을 홀로 살게 된대도, 실버타운에 들어가서도 친구 하나 없게 된대도, 나는 다른 이름을 부러워하지는 않을 거야. 외로운 삶이라. 이상하잖아. 사람이라면 누구나 외로울 수밖에 없는 걸. 게다가 평생을 외롭기에는, 나는 사랑이 꽤 많은 사람이거든. 무엇에든 마음을 주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사람이거든. 늘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봐. '외롭다'는 반대말도 없어. 누구든 외롭지 않을 도리는 없는 거니까. 아무튼 걱정하지 마. 늘 외로울 수는 없을 거니까.


또, 나는 내 이름이 불린 순간들을 너무 사랑하거든.




2014년, 스리랑카에 있는 딸에게 아빠가 보낸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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