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탄생, 아버지의 첫 돌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by 정란

내가 태어날 때, 아빠는 병원에 없었다. 출산이 처음인 엄마는 진통을 자주 '출산 임박'으로 오해했고, 아빠는 그때마다 회사에서 조퇴했다. 막상 정말로 내가 태어난 날에는 조퇴를 다 써서 퇴근할 수 없었다고 한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니 주인집 아주머니가 말했단다. 새댁이 너무 아파하면서 억지로 병원에 갔다고. 엄마가 병원에 걸어서 도착했을 때, 나는 이미 세상 밖으로 나와 있었다. 머리의 3분의 2가 나와 있었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엄마를 몹시 당황스럽게 하며 세상과 인사했다. 물론 엄마는 극심한 고통으로 당황을 느낄 새도 없었겠지만.


"자녀가 태어난 날이 기억나나요? 계절과 날씨, 그때 있었던 일들과 기분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겨울. 겨울. 한겨울. 날씨는 추웠지 뭐. 비나 눈은 안 왔어. 니 퇴원할 때는 눈이 와 있었어. 근데 니 태어난 날에는 눈이 안 왔어."


사실 이 뒤의 대화는 기록할 만한 것이 아니다. 엄마의 답변과 비교해 보았을 때, 아빠의 대답은 제대로 된 게 거의 없었다. 의심스러운 나는 급기야 아빠에게 내 생일을 묻기에 이르렀다.


"태어난 건 언젠데, 그럼"

"1월 25일"

"근데 주민등록번호는 왜 음력으로 했어"

"안 그러면 말띠가 되니까 말띠는 안 좋다 이래 갖고 뱀띠로 할라고. 여자가 말띠면 드세고 안 좋대. 백마 띠. 그래서"

"근데 어차피 띠는 음력이라서 나는 주민등록번호랑 상관없이 뱀띠인데"

"나는 1월 1일부터 백마 띠인 줄 알았지"

"아빠 때문에 나이 더 먹었어, 괜히. 책임져"

"뭔 책임을 져"

"아빠 때문에 나 지금 30대 초반일 수 있었는데 30대 중반이야 벌써. 책임져 빨리. 여보세요"

"왜 자꾸 따지(따져). 그때는 그 생각이 맞았는데"


"그럼 나를 처음 본 건 언제야"

"병원에서 그날 저녁이지 뭐"

"어디서 봤어?"

"병원에서. 병원에 애들 있는 신생아실에서"

"유리창으로?"

"어"

"혼자?"

"같이"

"기분이 어땠어?"

"희한하지 뭐. 쪼만한 게. 신기하지 뭐"

"그게 다야?"

"어"

"어?"

"그게 다지. 그만큼만 기억하는 것도 대단하지. 30년이 다 넘었는데 어떻게 기억하노. 아 참, 힘드네 진짜. 그때 태어났을 때 한 달 뒤에 물었으면 몰라도. 니가 나중에 육십 돼 갖고 생각해 봐라. 정확하게 그날 날씨가 어땠는지, 몇 시에 갔었는지 기억나나"

"나는 다 기억나지"

"나발 뒤통수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내가 이사 다닌 집도 다 모르는데. 몇 번 갔는지도 모르는데. 너 고모한테, 큰고모한테 물어봐라. 나이도 모르지. 형제들 나이도 모르는데"

"아니 이제 아빠가 된 거잖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어?"


뭔가 뭉클한 대화가 이어질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육십이 된 아빠는 나의 탄생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태어났으니 됐다는 건가(건강하게 태어났으니 된 거긴 하다). 그래서 나도 아빠가 새로 태어난 날(인생은 60부터니까), 아빠를 만나러 가지 않았다. 대신 환갑에 맞춰 60만 원을 입금했는데, 아빠의 반응을 보니 내가 간 것보다 용돈이 간 게 좋은 게 분명했다. 입금을 확인하자마자 전화가 걸려왔는데, 인터뷰를 할 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분명히 음성통화인데 아빠의 솟은 광대가 느껴졌다.





나는 아빠를 많이 닮았다. 산처럼 솟은 눈썹 모양, 흰 피부(아빠는 지금은 까만 편이다), 길쭉한 손가락과 웃을 때의 얼굴. 할 말은 해야 속이 시원한 성격과(아빠는 이제는 말을 참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깊은 마음을 길어 밖으로 꺼내는 데는 꽤나 서툴다는 점까지. 내가 태어난 날을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묘사해주길 바라며 보낸 질문. 그리고 인터뷰가 끝나고 아빠의 예순 번째 생일을 보내면서 한 생각. 내가 할 일은 30년도 더 지난 그날을 생생히 듣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30년을 또 열심히 살아온 아빠의 생일을 기억하는 것.


"생일인 거 모르고 지나갈 줄 알았는데 알고 있었구나"

"차도 없이 먼 길인데 오지 말고 집에서 쉬어라"

"다음에 내가 너 있는 데로 한 번 갈게. 좋은 데 놀러 가자"

"나는 너 생일에 해 준 것도 없는데 생일이라고 용돈도 보내 주고"


아빠는 내가 태어난 날의 기억만 잃은 게 아니라, 아빠가 살면서 내게 해 준 많은 것들을 잊은 모양이다. 아빠가 내 뒤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든든했던 많은 날들을, 아빠는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아빠가 잊은 날들을 기록해 아빠에게 전해줘야겠다. 내가 다 기억한다는 게 나발 뒤통수 같은 소리가 아니라는 걸 증명해야지. 이 글을 쓰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뭐 해?"

"응, 뭐 하고 있어"

"(웃음) 나는 지금 산 위에서 물 마시고 있어"

"산으로 출근했어?"

"아니. 산에서 일하다가 물 마시고 있어"

"요즘 날씨 좋지?"

"응. 밥은 먹었나?"

"응. 아빠는?"


별거 아닌 대화. 오가는 농담과 웃음과 서로를 향한 염려. 오늘도 역시, 아빠가 있어 든든하고 따뜻한 오후. 이제 막 인생의 첫 발을 내디딘 예순의 아빠. 서로의 탄생을 축하하고 기억할 수 있어 행복하다.






아빠의 환갑 생일날. 아빠와 나눈 카톡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