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없는 어른은 나쁜 걸까

어쩌면 저의 꿈은 당신일지도 모르는데요,

by 정란

태블릿에 브런치 앱을 설치하며 보니, 연관 앱에 '밤편지'라는 것이 있다. 익명의 누군가와, 혹은 연락처에 번호가 저장된 사람과 편지로 소통할 수 있는 앱이었다. '모르는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는 건 어떤 느낌일까' 호기심이 일었다. 앱을 설치했고, 가입과 동시에 '당신의 행복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 같은 앱을 사용하는 누군가가 이틀 전에 보낸 편지였다. 누군가에게 이 정도의 따뜻함으로 존재할 수 있다면, 꽤 행복한 사람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까지 열 통의 편지를 받고 네 통의 답장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편지를 읽고 답장을 하고 나자, 몇 달을 작가의 서랍에 누워 있는 내 글이 떠올랐다. 아빠의 꿈에 대해 얘기했던 그날이 떠올랐다.


성별도 나이도 직업도 알 수 없는 누군가가 어제 보낸 편지(내게 도착한 것은 하루가 지난 오늘)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안녕하세요. 어렸을 때 어떤 꿈이 있었습니까? 전 어렸을 때 꿈이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어렸을 때는 친구들이랑 놀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으면서, 전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생각도 없었습니다. 나쁜 겁니까? 저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꿈 없는 사람 목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적이 없으면.. 인생에서 적극적인 행동들을 할 수 없잖아요?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늘은 세 명에게 답장을 했고, 편지가 더 와도 답장을 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떻게 생각합니까?'라는 말을 들으니 꼭 무어라 답변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떠오르는 대로 내 이야기와 생각을 적었다. 편지란 무릇 그렇게 시작하고, 어떻게 끝맺어도 마음을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니까.




어릴 때 교실 뒤 게시판에 '꿈나무 열매'라는 게 있었습니다. 키가 고만고만한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이 저마다의 장래희망을 써 놓았죠. 저는 그즈음 교내외 글짓기 대회나 백일장에 나가기면 하면 수상을 했었습니다. 시를 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쉽고, 그래서 한편으로는 시가 시시했던 어린이였죠. 주제어가 던져지고, 떠오르는 생각을 원고지에 글자로 옮겨 담기만 하면, 얼마 후에는 금빛 테두리 두른 상장이 보상으로 주어졌으니까요. 저는 커서도 그 시시한, 하지만 사람들을 웃게 하는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제 열매에는 '시인' 두 글자를 새겼습니다. 지금 저는 시는 한 자도 쓰지 않는 어른이 되었고요.

꿈이라는 건 있기도 없기도, 있다가 없어지기도, 없다가 생기기도, 있던 게 달라지기도 합니다. 꿈이 없는 사람은 꿈이 없는 사람일 뿐, 단지 꿈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나쁜 사람은 아닐 거예요. 큰 꿈이 없어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매일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저는 마음 깊이 존경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이 제 꿈이고요.

어렸을 때는 맛있는 거 먹으면서 친구들이랑 노는 게 행복이죠. 커서도 아마 별만 다르지는 않겠지만요. 꿈 없는 어린이가 괜찮듯, 꿈 없는 어른도 괜찮을 거예요. 타인에게 무해하게 자신의 행복을 지켜나가는 것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어른일 거예요.




어린 시절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아빠: 어린 시절에 꿈이 어디 있노. 하루하루 그냥 재미있게 사는 거지.

나: 되고 싶은 거. 장래희망 같은 거.

아빠: 그냥 나중에 다 잘 되겠지 했지. 우리 어릴 때는 그런 거, 학교에서 물어봐도 그냥 뭐 '군인이 되겠다' 뭐 군인은 다 되는 거잖아. 애들이 말하는 게 다 그렇지 뭐. 국무총리, 선생님… 근데 나는 그런 거 없었어. 하루하루 잘 먹고 잘 살고 그냥. 굳이 따지면 부자? 엄청나게 돈 많이 벌어 갖고 나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그런 부자.




지금의 꿈은 무엇인가요?
막연한 것도 좋고 현실적인 계획도 좋아요.



아빠: 죽기 전에 이 세상에, 이 넓은 데, 안 가 본 데 온 사방 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그냥, 후회 없이 좀 편안하게, 마음 편하게 여행도 하고 싶고 그렇지 뭐.

나: 어디 여행하고 싶은데?

아빠: 그냥. 좋은 데 그냥. 세계.

나: 아빠한테 좋은 데는 어떤 거야?

아빠: 자연경관 멋진 데도 가고 싶고, 휴양지 이런 데도 가고 싶고 두 군데 다.

나: 특정 나라나 지역이 있어?

아빠: 그림에서 보니까 중국 장가계나, 유럽에 하여간 막 음식 맛있게 하고 볼거리 많은 그런 즐거운 데. 그런 데.

나: 그러고 보니까 아빠 유원지나 축제 같은 거 좋아하잖아.

아빠: 축제야 뭐, 갈 데가 없으니까 이런저런 구경하고 그런 거지, 그런 거는.




꾸밈 없는 꿈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그럴싸하고 겉멋 든 꿈 말고, 단순히 자신의 행복을 위한 꿈들이 넘실대는 세계는 얼마나 근사할까. 무언가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게 다 꿈 아닐까. 그건 작거나 커도 상관 없고, 없어도 나쁜 일은 아닐 거다. 세계 평화에 일조하는 꿈이 아니면 어때. 더 높은 커리어를 쌓는 꿈이 아니면 어때. 세계 평화를 위한답시고 떠들면서도 한 사람의 일상을 비참하게 무너뜨리는 놈도 있는데. 더 높은 커리어를 위해 낮은 곳에 핀 꽃들을 짓밟는 자들도 있는데.


아빠는 내년 환갑을 맞아 생애 첫 해외여행을 떠날 거라고 했다. 비행기 한 번 타 보는 게 꿈인 아빠. 나는 그런 아빠 옆에서, 정말로 비행기를 탄 아빠를 바라보는 게 꿈이다.


"아빠, 기분이 어때?"

막상 타 보니 별거 없다며 머쓱하게 웃는 아빠. 그게 아니라면 상기된 표정으로 창밖을 둘러보는 아빠. 그 어떤 아빠라도 좋을 것이다. 꿈을 달고 하늘을 달리는 아빠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꽤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