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서른두 번째 여름은 함양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고여 있었다. 도시에서는 오전 일곱 시가 지나야 겨우 무거운 몸을 일으켰는데, 그곳에서는 다섯 시만 되면 절로 눈이 떠졌다. 일찍이 마중 나온 옅은 햇살 아래서 책을 읽다가 여섯 시가 넘으면 집을 나섰다. 내가 "야옹" 소리를 내면 똑같이 "야옹" 하며 나타나 인사를 건네는 아기 고양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나는 두 마리의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지만, 고양이와는 친하게 지낸 적이 없다. 태풍 링링 때, 태어나자마자 어미에게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잠시 거둔 적이 있다. 내 강아지 하리의 동생이라는 뜻으로 '하동'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동이는 눈도 뜨지 못한 채 고작 3일만을 내 옆에 머물다 떠났다. 나는 그렇게, 가깝지도 않았던 '고양이'와 더 멀어졌다. 자격의 관점에서, 나는 고양이를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 예쁜 옷을 입은 아기 고양이 '야옹이'가 다가왔다.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표정은 위풍당당했다. '일단 내 마음부터 받아 보지 않을래요?' 꼭 그렇게 말을 건네는 듯했다.
처음에 야옹이를 발견한 나는 흠칫 놀랐다. 함양에서의 첫 아침, 첫 산책길에서였다. 모든 게 낯선 동네를, 나는 길 잃은 생쥐처럼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골목길에서 사탕 같은 눈동자를 가진 야옹이를 발견한 것이다. 생쥐는 깜짝 놀라 걸음을 멈추었고, 야옹이는 급할 것 없다는 듯 제 보폭대로 걸어왔다. 그리고 제 몸으로 내 다리를 스윽- 훑고 지나갔다. 빙글, 반대로 돌아와 또 스윽, 빙글. 그때 어느 가게 처마 아래에 있던 사내가 야옹이를 보며 박수를 쳤고, 야옹이는 사라졌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야옹이가 사라진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최대한 고양이인 것처럼 "야옹"하고 소심하게 울어 보았다.
야옹이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제야 안심이라는 듯 가슴을 펴고 다가왔고, 우리는 그날 친구가 되기로 약속했다. "내가 매일 이 시간대에 이곳으로 올게""좋아. 네가 오늘처럼 나를 부르면 내가 나올게""고마워""별말씀을" 아마 그런 인사를 나누었던 것 같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고양이, 야옹이
이른 오전부터 일정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나는 거의 매일 같은 시간에 야옹이에게 갔다. 내가 야옹" 하면 야옹이가 "야옹" 하며 나왔고, 우리는 매일 같은 장소에서 서로를 쓰다듬고, 기대앉고, 드러누웠다. 지나가던 동네 어르신들은 내게 고양이 주인이냐 물었고, 아니라고 대답하면 하나같이 말했다. "아가씨가 데려가 키워. 아가씨를 잘 따르네" "주인이 있을지도 모르는데요" "주인 없어. 아가씨가 주인 해" 마음 같아서는 야옹이와 평생 친구하고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고양이의 마음을 받을 자격 같은 거, 아직은 내게 있을 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알아 버렸다. 야옹이의 진짜 이름. 야옹이의 주인아저씨가 지은 이름은 '나비'였다. 이름 없는 고양이들의 대표적인 이름 같은 이름이었다.
어릴 때 자녀를 불렀던 애칭이 있나요? 그렇게 부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빠는 어린 나를 '부르리'라고 불렀다. 현철 씨의 노래 <봉선화 연정>의 가사에서 따온 별명인 줄 알고 자랐는데, 인터뷰를 하며 물어보니 아니라고 했다.
"니가 부르리고, 효지(동생)가 까까띠고. 그냥 귀여워서 그래 불렀지"
"뭐가 귀여웠나요?"
"그냥 애기니까 다 귀엽지 뭐"
"효지랑 내가 귀여워서 그렇게 불렀다고?"
"응"
"근데 왜 하필 부르리랑 까까띠야. 거기에 뜻이 있나요?"
"뜻 없어"
"뜻 없어?"
"어(웃음)"
"왜?"
"왜는 뭐. 그냥 부르다 보니까 그렇게 부른 거지"
부르다 보니 부르리가 된 나는 왠지 억울한 기분이 들어 별명을 붙잡고 늘어져 봤다.
"아니, 근데 뜻이 없다기에는 부르리랑 까까띠에 공통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부르다 보니께네 그게 친근감도 있고 그래 부르게 됐어"
"뜻이 있었는데 까먹은 거 아니고(제발 뜻이 있어라)?"
"없어. 뜻이 어디 있어. 내가 그렇게 불렀는데"
"그 애칭을 부를 때가 자녀들이 몇 살일 때였나요?"
"말을 알아들을 때부터. 세 살?"
"세 살부터 언제까지 그 애칭을 불렀나요?"
"학교 다닐 때까지? 니 중학교 때까지도 불렀나. 초등학교 때까지 불렀나. 한 중학교 들어갈 때까지 불렀지"
"내가 중학교?"
"응"
"그렇게 부를 때 자녀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대답 잘하지 뭐"
"둘 다?"
"응. 자기 부르는데 대답 잘하지 뭐"
"자녀들을 애칭으로 부를 때 기분이 어땠나요?"
"흐흐흐흐흐 부르면서도 웃기지 뭐. 히히히 거기다 대답하는 게 더 신기하고"
"그러면 왜 내가 까까띠가 아니고, 왜 효지가 부르리가 아니고, 저마다의 애칭을 갖게 된 데에는 이유가"
"(말을 자르며) 없어 이유. 그냥 니 먼저 부르고 나중에 또 하나 지은 거지 뭘 그래. 한참 뒤에 지었는데"
"동시에 지은 게 아니고?"
"동시에 어떻게 짓노. 태어난 게 몇 년이나 차이 나는데"
"아, 그래? 난 우리 애칭을 동시에 만든 줄 알았는데?"
"아니여. 니도 맹 세 살 때 짓고. 그니까 니를 계속 부르다 보니까, 효지가 고만큼 크니께 효지도 만든 거지"
"그 애칭을 가족끼리 있을 때만 불렀나요, 다른 데서도 불렀나요?"
"가족들만 있을 때만"
"엄마까지? 할머니? 아니면 친척들?"
"너 엄마까지"
"엄마의 반응은 어땠나요?"
"그냥 그러려니 했겠지 뭐"
"그 애칭은 엄마랑 같이 불렀나요? 엄마까지 같이 불렀나요?"
"내가 제일 많이 불렀어. 너 엄마는 너 엄마한테 물어봐라. 그걸 어떻게 기억하노. 내만 불렀겠지"
"그럼 엄마도 불러주길 바랐나요?"
"아니?"
"왜?"
"왜는 뭐 왜여. 그냥 내만 부르면 되지"
2주 동안의 함양살이가 끝나고도 자주 함양에 갔다. 나비는 한낮의 더위가 기승일 때도 "야옹" 하면 나타났고, 강아지풀 하나로도, 나무 한 그루로도 지치지 않고 놀았다. 나비네 집 앞에 먼저 도착한 친구가 말했었다. "내가 계속 '야옹'해 봤는데 안 나와. 아무리 야옹거려도 기척도 없어" 나비가 어디로 갔나 싶어 걱정하며 "야옹" 했더니, 저 멀리서부터 "야옹" 하며 빠른 걸음으로 나타났던 나비. 그날의 반가움과 감동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날 오후의 만남이 나비와의 마지막이었다.
일주일 후 다시 나비를 찾았을 때, 나는 나비 대신 길 위에 서 있는 나비의 주인아저씨를 만났다. 아침밥을 먹다 나간 나비가 여태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열두 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아저씨는 누군가 나비를 데려갔을 거라고 했고, 평소 나비의 성격을 생각해 보니 납득이 되었다. 아저씨는 해가 지도록 집 앞에서 나비를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경찰서에 가자고 했다. 이전에는 대화 한 번 나눠 본 적 없었던 우리는, 한 마음으로 나비를 걱정하며 경찰서까지 함께 걸었다.
형사가 우리의 관계를 물었을 때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고양이 주인이고요, 이 아가씨는 우리 고양이 친구예요!"
형사는 어리둥절하다는 듯 어색한 표정을 지었으나, 아저씨의 얼굴에는 뭔지 모를 뿌듯한 확신 같은 게 있었다.
"이 아가씨가요. 우리 고양이한테 완전히 미쳐있어요(예?). 나는 이때까지 살면서 우리 고양이 사진이 한 장도 없거든요. 근데 이 아가씨 핸드폰 좀 보세요. 우리 고양이를 맨날 보러 온다고요. 날마다 온다고요. 함양 사는 사람도 아닌데 우리 고양이를 보러 와요. 이 아가씨 휴대폰을 보면요, 휴대폰에 고양이 사진이 엄청 많아요(형사에게 보여줄 때 옆에서 보신 듯하다). 우리 고양이가 나한테는 안 오는데 이 아가씨가 부르면 바로 뛰어 나간다고요. 둘이 친구예요."
우리는 형사와 함께 다시 집(나비의 집)으로 왔고, 나는 주변의 CCTV를 판독할 수 있는지 의뢰했다. 형사는 내 휴대폰에 있는 나비 사진을 찍어 갔고, 나와 아저씨의 휴대폰 번호를 모두 받아갔다. 늦은 밤, 형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비가 사라지기 전 시점부터 CCTV를 돌려봤는데, 나비는 단 한 번도 대문 밖을 나서지 않았다고. 나비 스스로 가출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고. 이후 함양에 갔을 때 다시 나비네를 방문했지만, 나비와 관련된 모든 흔적은 사라진 후였다. 나는 그렇게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야옹이와 헤어졌다.
뜻은 없었다. 그냥 부르다 보니 그렇게 부르게 된 거였다. 야옹이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나도 야옹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언제까지고 애칭을 부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야옹" 고양이 소리를 내는 스스로가 우스우면서도, 이내 "야옹" 하고 대답하는 나비를 보면 기특했다. 아마 내가 야옹이를 제일 많이 부른 인간이 아닐까. 야옹이의 말로 야옹이와 대화한 유일한 인간일지도 모른다. '야옹이'도 '부르리'도 이제는 추억 속의 이름이 되었다. 야옹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부르리는 가족도 열지 않는 추억 상자에 갇혔다.
애칭(愛稱): 본래의 이름 외에 친근하고 다정하게 부를 때 쓰는 이름
그러나 야옹이가 잊지 않으면 좋겠다. 종이 다른 누군가 온 마음을 다해 애정을 갖고 자신을 불렀음을. 그렇게 자신을 대했음을. 마음을 줘도 될까, 사랑에 빠져도 될까 고민하던 때에도 마음은 이미 그쪽으로 흐르고 있었음을.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지금, 야옹이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면 좋겠다. 음식물 쓰레기가 아닌 깨끗한 밥을 먹고, 지저분한 길거리가 아닌 다정한 동물의 품에서 밤을 보내면 좋겠다. 아빠의 야옹이인 부르리가 그렇게 지내고 있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