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을 부는 아버지

by 정란

아버지와의 인터뷰는 종종 한 시간을 넘기곤 했다. 짧은 질문에서 뻗은 곁가지들이 또 가지를 치고 가지를 치고, 가지를 쳤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좋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아버지와 단둘이 대화를 나눈 게 얼마만인지. 고등학교 입학 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기숙사에 살았고, 졸업 후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해외에서 살았다. 뜨거운 나라에서 2년을 보내고 돌아와서는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이전에는 아버지의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 동생과 함께 살았었다. 그러다 부모님의 이혼 후 어머니가 보금자리를 옮겼고, 나는 계속 아버지의 집에서 살았다.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는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여자친구가 생겼고, 어머니는 이사를 했다.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지냈다. 나는 자연스레 어머니의 집에 짐을 풀었다. 아버지와는 종종 만났다. 어머니의 집에서. 식당에서. 아파트 화단 앞에서. 지금 우리 네 식구는 모두 따로 살고 있다. 코뿔소처럼, 두더지처럼, 바다거북처럼, 눈표범처럼.




시간과 비용으로부터 자유롭다면, 지금 배우고 싶은 것이 있나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버지: 전자 오르간하고 색소폰 같은 거 그런 거.


나: 왜?


(이하 앞 글자만 따서 '아(아버지)'와 '나'로 정리)


아: 그냥 멋있어 보이고, 부르면 크으, 내 혼자서도 즐길 수 있으니까. 음악을 좋아하거든. 나 혼자도 그런 좋은 기분에 빠져들 수 있을 거 같애. 내 혼자 연주를 딱 하면서. 좋지 않나?


나: 좋네. 좋지(의외의 답변이네)!


아: 그래. 아, 색소폰 같은 거 그런 거 잘 부는 사람 보면 부러워.


나: 그럼 색소폰이 생기면 배울 생각이 있어?


아: 근데 그거 불 데가 있나. 시끄럽고.


나: 여름에 강아지들 산책하는 공원에서, 부는 사람이 있었어. 자정이 가까워서 사람도 없는 시간대인데, 거의 매일같이 어떤 사람이 색소폰을 불었어. 아마 자기 집에서 불면 소음도 소음이니까 탁 트인 야외에서 연습하는 것 같았어.


아: 그니까. 잘 불면 몰라도 못 불면 남한테 민폐야, 민폐. 근데 희한하다. 내 자서전을 쓰는 것도 아닌데 이걸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나에 대해서 뭐 이렇게 묻노. 내가 주인공이라? 거 참 웃긴데이, 진짜. 내가 뭐 아무것도 잘난 것도 없고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뭘 주인공도 아닌데. 이게 뭐 이야깃거리가 되나? 네가 지어내서 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재밌게.


나: 지어내면 아빠가 아닌데?


아: 그럼 내 자서전이네.


나: 자서전 써 줄까?


아: 시래. 자서전 써서 뭐하노. 전 국민이 다 읽는다고 해도 내가 뭐 달라질 거 있나.


코뿔소는 인터뷰 내내 의문을 품었다. '도대체 이걸 왜 묻는 거지' '이걸 물어서 대답을 들으면 이걸 어디다 쓴다는 거지' '이게 정말 이야깃거리가 되나' '이걸 책으로 만들면 누가 본다는 거지' '이건 내 자서전인가' 부모님 피싱범은 그럴 때마다 반쯤 안절부절못하고 반쯤 상황을 즐기며 아버지의 설렘을 엿보았다. '내가 가장 먼저 읽는 아버지의 자서전을 만들고 있구나' 그 설렘은 음악처럼 내게 흘러 왔다.





2016년 1월. 해야 하는 일 외에도 하고 싶은 일, 부탁받은 일들을 해내며 일만 하고 지냈다. 그리고 1월 24일의 나는 겨우 한두 시간 눈을 붙인 후 공항으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몇 달 전에 예매해 둔 비행기 티켓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내 생일에 진짜 맛있는 팟타이 한 그릇 먹여줘야겠어. 양껏 먹여줘야겠어' 나를 위한 방콕행 티켓이었다. 책자 한 번 펼치지 않고, '태국 방콕 여행' 한 번 검색하지 않고, 민들레 홀씨처럼 수완나폼 공항에 내려앉았다. 방콕은 친절했다. 다정한 쌀국수와 상냥한 팟타이가 거리마다 즐비했다. 백지상태로 태국에 떨어질 나를 위해 동생은 한인민박을 예약해 뒀었고, 나는 그곳을 나오자마자 방콕에서 제일 유명한 팟타이 가게 옆에 숙소를 잡았다. 매일 새로운 곳에서, 또 매일 같은 곳에서 도장 깨듯 팟타이를 접수했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 나는 색소폰에 홀로 앉아 있었다.


색소폰은 재즈바였다. 새로운 팟타이 가게를 접수하기 위해 포털 사이트를 열었고,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곳. 내가 깨야 하는 도장 목록에는 없었지만, 어쩐지 여행 마지막 날 머무를 마지막 장소는 그곳이어야 할 것 같았다. 팟타이 한 그릇 먹고 발마사지까지 받으니 노곤했지만, 조용한 숙소에 들어가 한 숨 자고도 싶었지만, 나는 오토바이 택시를 잡아 탔다. 젊은 기사는 팟타이만큼이나 상냥했다. 이전 손님이 누구였는지 한껏 느슨해진 헬멧 고정끈을 다정하게 맞춰 주었고, 색소폰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색소폰으로 나를 데려다주겠다 했다. 우리는 함께 오토바이를 탄 채 방콕의 밤거리를 헤맸고, 기사는 쌀국수만큼 친절한 사람들에게 자주 길을 물었다. 자동차를 탄 사람에게 묻기도 했고, 오토바이를 탄 사람에게 묻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놀랍게도, 아무도 색소폰을 알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 사이에는 몇 번이나 웃음이 터졌다. 머쓱한 기사는 연신 내게 미안하다 했고, 나는 예의 바르고 다정한 그와 낯선 거리를 달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쩌다(골목골목을 돌다 '엇! 여기가 색소폰인데?' 하는 정도의 발견이었다) 색소폰에 도착한 후에는, 그래서 기쁜 반면 아쉬운 마음까지 들고야 말았다. '이 정도면 요금이 어마어마하게 나오겠는데' 걱정했지만, 기사는 처음 약속한 금액만 받았다. 그리고 나는 마치 유령의 집처럼 찾기 힘들었던 그곳에, 밤도깨비처럼 입장했다.


다른 도깨비들은 모두 일행이 있어 보였고, 2층까지 사람이 차서 꽤나 북적거렸다. 하지만 소란스럽지는 않았는데, 늙은 호박빛의 조명이 그곳의 분위기를 정돈해 주는 것 같았다. 나는 밴드 바로 앞 바(Bar)에 자리를 잡았다. 거한 식사에 로띠와 석류 주스까지 마시고 온 터라 위장도 만석이었으나, 고민도 않고 싱하(Singha, 태국 맥주)를 주문했다. 거품이 풍성한 싱하는 흙으로 만든 색소폰에 담겨 나왔다. 소리가 나오는 곳에서 맥주가 나왔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귀 대신 입을 갖다 대고 목을 축였다. 그리고 얼마 후, 밴드가 공연을 시작했다. 방콕에 와 처음으로, 혼자라는 게 쓸쓸했다. '이 좋은 걸 나만 느껴야 하다니!'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입술을 조금 내민 채 옆사람을 보고 말하고 싶었다. "아, 너무 좋다!" 옆에 앉은 누군가는 살포시 웃으며 끄덕일 것이다. "그러니까 말이야. 진짜 너무 좋다"




"내 자서전을 쓰는 것도 아닌데 이걸 왜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 나에 대해서 뭐 이렇게 묻노. 내가 주인공이라(내가 주인공이니)?"




자서전을 기대했다면 코뿔소에게는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인터뷰는 내 이야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내 이야기 혹은 나와 코뿔소의 이야기로.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쓸 수 있는 것은 나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꿈꾼다. 앞으로는 내 이야기의 많은 부분에 코뿔소가 들어 있기를.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어른 시절에도, 코뿔소가 내 인생에서 커다란 비중으로 드러나기를.


다음 색소폰 방문은 코뿔소와 함께였으면 좋겠다. 맛있는 메인 요리 하나와 싱하 두 잔을 주문해야지. 우리는 각자의 색소폰으로 건배하고, 멋지게 악기를 연주할 것이다. "아빠, 여기 너무 좋지?" 그럼 코뿔소는 대답하겠지. "아이고, 이런 골목 안에 이런 데가 다 있네. 여 사람들은 다 이 공연 보러 온 거라?" 어쩌면 그때는 색소폰 연주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그때까지도 색소폰을 손에 들지 못했더라도, 직접 색소폰을 연주하지 않더라도, 그날은 썩 괜찮은 밤일 것이다. 코뿔소와 눈표범이 나란히 앉아 색소폰 연주를 들으며 색소폰 안에 맥주를 담아 마시는 모습은, 썩 아름다운 풍경일 것이다.


"거 참 웃긴데이, 진짜. 내가 뭐 아무것도 잘난 것도 없고 특별한 사람도 아닌데 뭘 주인공도 아닌데. 이게 뭐 이야깃거리가 되나?"


아주 잘나거나 특별한 사람이 아니어도 아버지, 누구나 주인공이 될 수 있어요.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시간만큼의 이야기는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저는 이 이야기 속의 아버지가 좋아요. 혼자서 전자 오르간이나 색소폰을 연주하는 아버지가 아니어도, 그런 꿈을 마음에 품은 아버지가요.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어떤 일을 거치지 않고는 그 일이 일어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 내가 어떤 곳에 다다랐던 데는 또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 누군가를 만나거나 스친 것에도, 미리 정해진 의미가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요.


아버지. 우리가 나눈 대화가 드디어 한 꼭지의 글이 되었습니다. 저는 몇 년 전에 홀로 다녀온 재즈바를 떠올렸고, 여름밤의 공원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던 한 남자를 생각했습니다. 다행히도 그 남자는 꽤 멋진 연주를 했고, 그 소리가 밤의 공원을 야외 재즈바로 만들어 주었지요. 혹시 우리가 함께 방콕에 갈 날이 요원하다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공원 재즈바도 나쁘지 않을 거예요. 여름과 함께 그 남자가 찾아오면, 오후의 열기가 식고 색소폰 소리가 공기를 채운다면, 꼭 아버지께 연락드리겠습니다. 밤의 공원의 주인공인 동네 뮤지션과, 그 시간을 몰래 동경해온 저와, 그런 시간을 기다려온 아버지가 함께라면, 그곳은 그것만으로도 아주 근사한 공간이 될 거예요. 아버지가 아버지의 꿈만으로, 제게는 이미 아주 근사한 사람인 것처럼요.




태국 방콕에서 혼자 갔던 재즈바 @SAXOPHONE






색소폰 모양의 머그잔에 싱하를 잔뜩 담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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