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샘플 편지
오늘은 다르게 시작할 거예요. ‘안녕하세요’를 썼다가 지웠습니다. ‘보고 싶었어요, 여러분!’도 썼다가 지웠습니다. 일요일이니까요. 무슨 상관이냐고요? 그냥 그러고 싶은 일요일이라는 얘기였습니다(웃음).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일어났지만 이불 위에서 오래 뒹굴었어요. 어젯밤 M이 보내준 칼림바 연주 파일을 다시 듣고, 유튜브에서 ‘월량대표아적심’을 검색해 보고, 다른 사람의 칼림바 커버 연주 영상을 봤어요. ‘저렇게 연주해서 보낸 거구나’ 웃음이 났습니다. 곰보빵을 먹으며 밀린 답장을 보냈고, 설거지를 하고, 밥을 안치고, 음악을 틀어놓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얼마 만의 여유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제는 아주 힘든 날이었습니다. 오전만 해도 안 좋은 일들이 연이어 쏟아졌고, 결국 저녁에는 침대 위에 엎어져서 엉엉 울었습니다. 세어 보니 안 좋은 일이 일곱 개나 있었더라고요. 오후는 엉망이 된 마음을 수습하면서 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습니다. 어제의 일기 제목은 ‘일곱 개의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일곱 개의 나쁜 일이 생겼다면 일곱 개의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M이 그랬다. 고진감래라고. 책이 아직이니 주말 동안은 마음 가볍게 글쓰기 수업 안내문을 만들고, 독서모임 프로그램도 생각해 봐야겠다. 편지도 써야지. 으아(절규), 마지막 편지라니!! 습습 후 후. 침착하고 차분하게 뚜벅뚜벅 걸어가자, 란아.’
그렇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샘플 편지 구독 서비스를 종료하는 날입니다. 아주 특별한 일요일이군요. 저와의 이별을 앞둔 여러분의 마음은 어떤가요? 아직 첫 번째 편지도 안 읽으셨다고요? 편지가 도착한 줄도 몰랐다고요? 저런…… (아직 편지를 안 읽은 분들이 정말로 계시더라고요). 그냥 ‘끝나는구나’ 싶다고요? 저런……. “너 T야?”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누구보다 T인 책방지기는 입을 다뭅니다(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네이버에 ‘MBTI’를 검색해 보세요). 아참! MBTI와 관련한 재미있는 책도 주문해 두었으니 와서 둘러보세요. 딱 한 권 있는데 아주 흥미로운 책이라 제가 살까 싶습니다. 이거 저 혼자만의 경쟁 아니죠?
세 번째 경우의 수. 이게 마지막 편지라니 믿어지지가 않고 제법 슬픈 마음까지 드신다고요? 책방지기의 일상과 시선을 이제 공유할 수 없다니, 서운하고 아쉬운 감정이 생긴다고요? 곧 오픈하는 책방의 재미있는 소식과 끊어지지 않는 이야기들이 궁금하시다고요? 그럴 줄 알고 11월 구독 서비스의 문을 열어 두었습니다(회심의 미소). 편지 구독 서비스의 이름도 정했어요. ‘편지, 하리’. 샘플 편지는 네이버폼으로 구독 신청을 받았었는데요, 해당 서비스가 11월부터 종료된다고 합니다. 구글폼으로 자리를 옮겨 양식을 만들어 두었고, 10월 29일까지 접수를 받습니다. 시간이 넉넉하니 다음에 신청하시겠다고요? 아니요…? 생각난 김에 지금 바로 신청해 주세요(간절한 눈빛).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해 주시고, 문의사항이 있으면 답장 주세요(이렇게 또 답장을 획득한 책방지기).
https://forms.gle/jcuy2ADJDiAoMBB68
제가 인스타그램을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만, 인스타그램 계정도 만들었습니다. 구글폼 상단에도 적어 두었지만, ‘책방하리’ 혹은 ‘haribookshop’으로 검색하면 휑한 계정 하나가 나올 것입니다. 팔ㄹ...팔로우... 해 주세요(쑥스러워서 머리를 긁적인다). 이제 네이버에 ‘책방하리’를 검색하면 매장 정보가 뜨고, 블로그로도 연결됩니다. 블로그 주소는 아래와 같습니다.
https://blog.naver.com/hari_bookshop
인스타그램 계정과 마찬가지로 하단바를 없애고 싶은데, 블로그 주소는 수정이 안 되네요. ‘책방, 하리’의 반점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지내야겠어요. 블로그에는 지금까지의 샘플 편지 두 통을 업로드해 두었습니다. 사진과 짧은 글을 부록처럼 추가해 두었으니 확인해 보세요(웃음).
‘책방하리’는 간판 디자인을 마쳤고, 곧 간판과 책갈피, 도장 제작에 들어갈 거예요. 책갈피에는 책방 정보가 간략히 들어갈 것이고, 책방지기가 직접 도장을 찍어 디자인을 완성해 드립니다. 책방하리에서 구매한 책에는 ‘하리하리’ 도장을 찍어 드리고요. ‘하리’가 대관절 무엇인지, 무슨 뜻을 가진 어느 나라의 말인지는 언젠가 편지에서 알려드릴게요(구독해 주세요). 책방하리는 북카페가 아닙니다. 음료를 판매하지 않으며, 책 읽는 분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합니다. 편안히 와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원목 테이블과 의자, 캠핑 테이블과 캠핑 의자를 준비해 두었습니다. 캠핑 가서 책 읽는 로망이 있으신 분들은 여기, 책방하리로 와서 그 기분을 느껴 보세요.
더 즐거운 독서를 도와줄 외부 음료는 반입이 가능하지만, 책을 구매하지 않고 책방하리의 좌석을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너무 당연한 얘기라고 느끼시겠지만, 다른 동네책방에서 왕왕 일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하리하리’ 도장은 이때 빛을 발합니다. 책방에 오고 싶을 때마다 책을 구매할 수는 없잖아요(물론 그런 경우를 환영합니다). 하리하리 도장이 찍힌 책을 들고 오신다면 언제든지 책방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매번 책을 구매하지 않아도요. 책을 들고 다니기 힘들다면, 책방하리에 맡겨두고 가셔도 됩니다. 와인처럼 키핑이 가능하니 아무리 무거운 책이라도 부담 없이 구매할 수 있겠죠?
저는 제가 구매한 책이라도 깨끗하게 보관하고 훼손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손님들께도 그런 책을 안겨드리고 싶고요. 책방하리가 책을 빌려주는 곳이냐고 묻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책방하리는 책 대여점이 아닙니다. 책을 판매하는 곳이며, 진열된 책들은 누군가 구매하는 책입니다. 방문하신다면 조심히 살펴주시길 부탁드리며, 책의 표지나 내용을 촬영하는 것을 금지합니다(저작권 침해에 해당합니다). 책의 제목을 촬영하거나 메모하는 것도 삼가 주세요. 책방의 전체적인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이런저런 제한 사항을 다는 마음이 좋지만은 않으나, 여러 동네책방들이 겪는 어려움을 미연에 방지해 더 오래 ‘함께’ 존재하고 싶은 마음임을 헤아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동네책방이 있는 곳과 없는 곳은 지역의 온도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7년 만에 지친 마음으로 영주에 돌아왔을 때, 제가 가장 먼저 한 일도 동네책방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인터넷 서점만을 이용하는 마을을 생각해 보세요. 나의 취향(혹은 미디어의 취향)만을 따라 커서를 옮기는 삶이요. 저는 어디에 살아도 늘 책방을 찾았습니다. 책방지기가 진열하고 큐레이션한 책들을 보며 새로운 세계에 문을 두드렸지요. 평소라면 관심 가지지 않았을 책을 들여다 보고, 의외의 행복을 발견하며 세계를 확장했습니다. 그런 때면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었고, 터뜨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책장을 넘겼습니다. 독서 세계는 점점 넓어졌고, 바라보는 풍경과 만나는 사람들이 달라졌습니다. 그걸 바라보는 시선이 말이에요. 비인간 동물과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도 그렇게 길러 왔지요(부족하지만요). 삶의 해상도가 높아지면서 나는 더 자주 슬프지만 훨씬 더 많이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동네책방을 연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책방에서 사?” 길거리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책방 오픈 소식을 알렸을 때, 일면식도 없는 이에게 이런 말도 들었습니다. “책을 누가 봐요?” 어떤 사람들은 제가 하는 일이 아주 쓸모없고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마음 한 구석이 조금 찌그러지면서 아린 느낌이 듭니다. 많이 두려웠지만 그보다 큰 용기를 가지고 시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것을 알고도 시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책방에서 아주 흥미로운 책을 발견하고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하는 걸 막을 초능력이 제게는 없습니다. 책을 완독한 후 문을 나서는 손님도 어쩌면 있을지 모르죠(실제로 존재한다고 하니까요). 그런 것들을 방지하고자 이용 규칙을 만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또 마음 아린 순간들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제가 쓴 편지를 읽고 위로 받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책방하리를 응원하는 사람이요. 그에게 쓴 편지도 아니었지만, 그는 그 글을 좋아하는 마음으로 책방까지도 좋아해 주었습니다(예전에 브런치에 연재한 편지글입니다). 책방하리에 놓인 4인 테이블과 네 개의 의자는 그가 후원한 것입니다. 친구 K 씨는 자신의 일이 끝났음에도 자주 책방에 들러, 책방지기가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척척 도와줍니다. 돈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을 때, 묵묵히 하던 일을 하며 그가 말했습니다. “원래는 돈 받고 해야지. 근데 사장이 열심히 하려고 하니까 힘이 되어 주고 싶어서.” 책을 읽으러가 아니라 사러 오겠다며 답장을 보낸 분도 있었습니다. 책방의 오픈을 함께 기다리고 응원해 주는 분들이 계셔서, 저는 봄나물 캐듯 조금씩 용기를 냅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책방하리에서의 시간과 경험’을 선물하기 위해 노력하는 책방지기가 되겠습니다. (갑자기 너무 결연한 분위기라고 놀라지 말아 주세요. 지금 조금 뭉클한 상태이므로 앞으로도 이런 분위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제가 동네책방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건, 그 책은 꼭 그곳에서 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방지기가 엄선해 고른 책. 오래도록 그의 시선이 닿았을 책. 누군가의 애정과 희망이 담긴 책. 어쩌면 누군가는 망설이다 내려놓았지만 내게는 꼭 필요한 책. 그건 인터넷 서점에서는 살 수 없는 것들이니까요. 도서관에서는 얻지 못하는 경험이니까요. 저는 영주에 큰 애정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을 따라 살다가, 가족을 떠날 수 있었을 때 미련 없이 영주와 헤어졌었죠. 이곳으로 돌아온 데는 꼭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을 찾기 위해서일 수도 있고, 지나친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일 수도 있겠죠. 운명의 신이 ‘동네책방을 열어라.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라’ 제 등에 바람을 불어준 걸지도 모르고요. 낯선 곳에 정착할 때면 늘 책방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좋아하는 책방이 생기면 이내 그곳이 좋아졌거든요. 여러분이 발 딛고 사는 이곳을 더 좋아하는 데 제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영주에 애정을 키워가는 데는 여러분의 마음이 필요하고요. 우리 같이, 좋아하는 곳에서 사는 거 어때요?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글쓰기 수업을 열고, 독서모임을 만들 예정입니다. 성인 글쓰기 모임도 열고 싶어요. 책방에 어린 작가들이 모여 앉아 자신의 세계에 집중해 글 한 편을 뚝딱 완성하는 모습은, 벅차오를 만큼 근사하지 않나요? 책방이 문을 닫은 저녁에 이런저런 사람들이 둘러앉아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모습은요? 책 한 권의 세계를 넘어 다른 사람의 세계까지 여행하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책과 글과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보고 싶습니다. 저의 공간을 만들었으니, 제가 꿈꾸는 즐거운 일들을 하나하나 실행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길 위에서 저는 깨닫습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행복은,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만 결실이 맺어지는 행복이라는 것을요.
어제 M이 보낸 오디오 파일을 다시 재생했습니다.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인 ‘월량대표아적심’을 칼림바로 연주한 것입니다. 월량대표아적심의 뜻은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요’입니다. 이건 아주 재미있는 우연이네요. M의 이름에는 ‘내 이름’이라는 뜻이 들어 있고, 제 스리랑카 이름은 샤시칼라. ‘달빛’이라는 뜻이거든요. 여러분의 마음을 대신하는 책을 고르고, 운이 좋으면 여러분의 마음을 대신하는 편지를 쓰면서 지내겠습니다. 날이 갈수록 편지가 길어지네요. 긴 편지를 읽어 주셔서, 제가 보낸 세 통의 편지를 마음으로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신.
아직도 구독 안 하신 거 아니죠? 추신까지 이렇게 질척거리는 책방지기는 처음이라고요?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런 거니까 얼른 구독부터 하고 오세요(미소). 구독하고 와서 뭐 하냐고요? 시간이 되신다면 답장 한 통 보내 주세요. 이제 우리, 일대일로 인사할 때도 되지 않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