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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란 Oct 20. 2023

4. 무엇보다 건강하렴

네 번째 샘플 편지

안녕하세요. 세 개의 샘플 편지를 모두 받았는데, 왜 네 번째 편지가 도착했는지 의아하신가요? 안내드릴 것이 있어서 추가로 편지를 보냅니다. 2023년 10월 22일 오픈 예정이었던 책방하리는 책방지기의 사정으로 오픈을 연기합니다. 그저께 병원에 다녀왔는데,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어 조직검사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의사 소견을 들었습니다. 다음 진료일은 10월 25일인데, 이르면 그날 조직검사 여부를 알 수 있지만, 한 주 더 미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조직검사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책방하리 휴무일인 수요일마다 병원에 다니며 진료와 치료를 병행할 수 있지만, 조직검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최소 4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하므로 이후 일정을 확실히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조직검사를 한다면 그 날짜가 언제인지도 아직은 알 수 없고요. 따라서, 책방하리는 인스타그램(@haribookshop)과 블로그를 통해 일정을 공유하면서오픈을 잠시 연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존재는 부재를 통해 확인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잃었을 때에야 비로소 그가 나에게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내 몸에 뼈와 피와 각종 기관이 있다는 건, 그것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인지하지 못합니다. 존재를 느끼지 못해 돌보지 못했는데, 이제야 들립니다. “나 여기 있어” “나 좀 돌봐 줘” “넌 너무 많이 먹었어” “넌 정말 아무거나 먹었어” “넌 너무 조금 움직였어” “너는 오늘도 너무 많이 화가 났어” “너무 많이 울었어. 그러느라 너무 많이 힘들었어” 하면서요.


책방하리 오픈을 준비하며 직면한 갖가지 고민 앞에서 현명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 친구들, 달력의 22일에 동그라미 쳐 놓고 기다리신다는 손님들, 떡 먹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 동료 상인들이 마음에 걸립니다. ‘일단 오픈을 할까’ 많이 고민했습니다. 누구보다 제가 기다려온 날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삶 자체이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강해야 하므로, 저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먼저 몸을 보살피기로 했습니다. 밥과 약을 잘 챙기고, 충분히 자고, 조금 더 걷고, 좋은 책을 읽으며 그냥 정란과 책방지기 정란을 동시에 보살피기로요. 그리하여 가뿐한 마음으로 책방 문을 열고, 손님들은 제 친구 J가 고른 도어벨의 청량한 종소리를 들으며 책방에 첫걸음을 들일 겁니다.


수심 없는, 밝고 환한 미소로 당신에게 첫인사를 건네겠습니다. 제가 사랑하고 아끼는 책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원하는 자리에 앉으세요. 조금 피곤한 날이라면 준비해 둔 캠핑의자에 앉아 기대 독서할 수도 있습니다. 그 책에는 책방하리의 대표인 하리의 발자국(진짜는 아닙니다. 진짜도 만들 생각이에요) 모양 도장이 찍혀 있을 것입니다. 책방지기가 선곡한, 그날의 분위기와 꼭 맞는 음악을 들으며 평화롭고 따뜻한 시간을 보내세요.


병원에 다녀온 날은 서러움에 울었고, 어제는 고민에 지쳤습니다. 오늘은 당신에게 네 번째 메일을 보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말을 건네는 일이 좋거든요. 어느 다정한 이가 답장을 보내, 하루치의 거뜬한 행복을 선물해 주기도 하거든요. 답장이 아니어도, 제 편지가 당신의 마음에 가닿은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1월에도 함께해 주신다면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https://forms.gle/jcuy2ADJDiAoMBB68


오픈 전에, 다섯 번째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그때까지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추신.

대학 시절, 학교에서 주최하고 주관한 교내문화상 수필 부문에 당선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심사위원이었던 교수님에게 이런 메일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렴. 더 예쁜 정란을 위해서.’ 이것을 오늘 편지의 제목으로 정해야겠습니다.


-책방지기 정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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