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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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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Jun 16. 2023

내안의 너 #2

안녕, 콩

제가 갔던 병원은 공덕역에 있는 나름 유명한 난임병원이었는데요. 병원이라기보다는 작은 호텔처럼 깨끗하고 조용한 분위기였습니다. 어색함을 감추지 못하며 상담을 하고, 해도 해도 익숙해질 수 없는 초음파 검사를 시작했습니다.


'평소 생리량이 굉장히 많은 편이신가 봐요?'

'아니에요. 오히려 정반대인데요'

'그래요? 신기하네. 자궁내막이 두꺼운 편이라서요. 피검사나 한번 해보시죠'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며 채혈을 하고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바로 하루 전에 짧게 피가 비치고 난 후였고, 워낙 평소에도 양이 많지 않았던지라 아무런 의심이 없었죠. 그러나 잠시 후 의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저를 반겼습니다.


'축하해요, 임신이에요! 첫날 오자마자 이런 분은 또 처음 보네요!'

'네? 아니 분명히 피가 났는데요?'

'착상혈도 많이 나는 경우가 있어요. 축하드려요!'

'아 진짜요?'




제가 생각해도 정말 웃기는 반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진짜요? 라니, 의사는 난임병원에 오자마자 임신 사실을 알았으니 제가 뛸 듯이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기쁘냐며 따뜻하게 웃어주셨지만 전 그냥 정신이 없었고, 병원을 돌아 나오는 길엔 조금 눈물도 났습니다.


앞으로의 삶이 겁이 났고, 아빠가 알았으면 좋았을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유산하는 경우가 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과 상의해 한 달간은 주변에 알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 이미 조금씩 달라졌죠. 꼽아보면 끝이 없지만, 그리고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만, 임신은 육아만큼이나 지난한 과정이며 단 1분도 누구에게 위탁할 수 없는 노동입니다. 


살면서 그렇게 사소한 일에도 '임산부 OOO 괜찮은지' '임산부 OOO 먹어도 되는지' 검색의 노예가 되어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한 스트레스입니다. 게다가 저는 대학 대 친구들이 마을버스라고 불렀을 정도로 걸음이 빠른데요, 이동을 빨리 할 수 없다는 것(정확히 말하면 할 수는 있는데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점)도 스트레스였죠. 걷다가 넘어질까 봐 걱정하는 것도 그렇고요.


그러다 병원 초음파를 통해 심장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아기 심장소리 들어 보셨나요? 콩 콩 콩 하고 귀엽게 뛸 것 같지만 아니고요,

쿠과쿠과쿠과쿠과 하며 고질라 발소리처럼 뜁니다. 아기 심장은 어른보다 훨씬 빨리 뛰거든요.


하지만 실감했습니다. 우리 콩 녀석이 진짜 몸속에 있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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