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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Nov 15. 2024

굿바이 삿포로

24년 10월 아기랑 삿포로 # 5

3박 4일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콩만 걸렸던 감기는 우리 가족 모두에게 공유되었는지, 마지막 날 아침엔 셋이 사이좋게 콧물을 흘리며 기침을 해대는 지경이 되었다(마지막 날이라서 다행이다) 

입맛은 없었지만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한다며 호텔 조식당으로 이동. 

그리드 프리미엄 호텔 오타루의 조식은 훌륭한 수준이다. 가짓수가 대단히 많다기보다 하나하나의 재료가 신선하고 식당이 잘 관리되어 있으며,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 않을 메뉴들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팥으로 양념한 경단 디저트가 기억에 남는데 콩도 우리도 맛있게 잘 먹었다. 오타루 자체가 2박까지 해가며 볼 것이 없다 보니 연박을 하는 손님은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이삼일 내리 먹어도 즐겁게 먹을 것 같은 조식이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이제 귀국길에 오른다. 오타루 역으로 가서 JR로 신치토세 공항까지 가면 되는 심플한 귀갓길!

열매가 예뻤는데 이 나무 이름 아시는 분?



문제는 삿포로를 떠나 오타루에 오면서부터 콩이 뛰어놀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점점 아이의 짜증이 올라갔다는 것. 오타루 첫날은 비가 오고, 이튿날도 공항에 오느라 짐 싸고 어쩌고 하면서 아이랑 놀아줄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게다가 리조트에서 놀 수 있었던 동남아와는 달리 일본 호텔은 큰 방이래 봤자 놀 공간은 부족하고 호텔 안에서도 딱히 아이가 놀 곳은 없었다 보니, 콩 입장에서는 삿포로 가챠샵 이후로는 재밌는 게 1도 없었던 여행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자긴 재밌지도 않고, 맛있는 게 많은지도 모르겠고, 비가 와서 나가 놀지도 못하고, 좀 뛸라치면 위험하다고 손 잡고 유모차에 태워 다니니 에너지 쓸 곳이 없었던 게 느껴져서 -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와 여기 너무 좋다! 여기 진짜 재밌는 곳이다! 하는 콩을 보며 너무나 미안했다 - 너무 어른 위주의 스케줄을 소화하게 만든 것 같아 반성하게 되었다. 


공항에서도 계속 뛰어다니고 도망가고 아이는 길에 있는 온갖 안내판이며 마스코트들을 다 건드리고 싶어 하는데 우리는 우리대로 수속도 해야 하고 국제선으로 이동도 해야 하고 직장과 가족들에게 줄 쿠키라도 소소하게 사야 하고...! 달래고 달래서 유모차에 앉히자 자기가 원하는 과자가 없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아이에게 결국 화를 내버리고는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미안함과 부끄러움이 교차한다. 


미안해 콩

하지만 공항을 좋아하는 콩은 다행히 내가 조공으로 사다 바친 유바리 멜론(삿포로 특산품으로 매우 매우 매우 맛있다)으로 화해의 제스처를 받아들이고, 곧 게이트 앞에서 신나게 뛰어놀며 대미를 장식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을 겪으며 홀로 여행자에서 부부 여행자, 진정한 부모 여행자로 레벨업했던 기분도 들고, 앞으로는 가족여행을 떠날 때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시간도 꼭 따로 만들어야겠다는 반성도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우리도 콩도 성장하는 거겠지?

신치토세 공항 KINOTOYA 소프트 아이스크림 대강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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