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견 제로에 도전하는 아이
얼마 전 생각 없이 웹서핑을 하다가 그런 게시물을 하나 봤습니다. 아이 양육단계별 부모들의 부심 단계라는 내용이었는데요. 모든 단계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대충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는 자연분만 + 모유수유 부심, 돌 때는 빨리 걸음마한 부심, 두 돌 때는 말 빠른 부심, 유치원생은 영유 부심, 초등학생은 사립학교 부심... 뭐 이런 순서로 대학까지 가는 부심 시리즈였는데 우리 사회의 비교본능을 우스갯소리로나마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저만 해도 아이 낳을 때는 제왕절개에 모유수유는 1달밖엔 하지 못했고요. 걸음마도 남들 다 하기 시작할 때 뭐 너무 늦지만 않게 걸었고요. 부심이랄 것도 없이 애가 너무 많이 먹나 비만이 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으로 지내던 찰나 아이가 말을 빨리 하면서 오 잘하는 게 하나 생겼다! 하는 마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 마음이 다 그렇지요. 아이 하는 건 뭐든 예쁘고 신기하잖아요. 부부가 둘이라서 좋은 것도 그게 가장 큰 것 같습니다. 내 아이 자랑할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도 나만큼이나 내 아이 자랑을 하고 싶어 한다는 거!
해서 지난 편에 이어 이제는 32개월이 된 콩의 편견제로 어록을 저장해 두려고 글을 씁니다. 몇 년만 지나도 이런 사랑스러움이 사라질 테니 잘 기록해 둬야 두고두고 꺼내 곱씹을 수 있겠죠. 때는 얼마 전 아이 데리고 삿포로 여행을 다녀올 무렵, 콩의 애착템인 라*스 베개 토끼귀 커버에 대한 내용입니다. 육아인이라면 거의 다 알고 있을 이 베개는 2개가 한 세트인데, 한쪽에만 토끼 귀가 달려있습니다. 콩은 당연히 그 귀가 달린 쪽을 좋아하고, 여행을 갈 때면 베개째로 가져가기엔 부담이라 토끼귀가 있는 쪽의 커버만 벗겨내서 챙겨 갑니다. 잘 때 만지면서 자거든요. 그런데 지난번 여행 때는 그만 정신이 없어 귀가 없는 쪽 커버를 챙겨간 겁니다.
"귀 어디 갔어요?"
콩의 한 마디에 모골이 송연해지던 그 기분이라니...! 속으로 으악 하면서 아이를 달랠 마음의 준비를 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죠. 미안해 콩. 실수로 귀 없는 애를 들고 왔어. 어쩔 수 없으니 얘라도 안고 자자.
콩의 대답은 반전이었습니다.
"그때 토끼가 말했어요 ~ 나는 귀가 없는 토끼란다!"
역할놀이에 빠져 있는 콩이 갑자기 토끼에 빙의해서 또 일인극을 시도한 건데요.
뭔가 알 수 없는 것에 통, 하고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아 얘가 보기에는 둘 다 토끼는 토끼인데 하나는 귀가 없고 하나는 있는 애구나. 잠들 때까지 만질 귀가 없어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콩의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나는 귀 없는 토끼다!
생각해보니 그런 적도 있었어요. 어린이집에서 컬러 점토를 나눠주셔서 집에 가져왔는데 점토에 찍고 노는 새 모양 틀이 있더라고요. 콩이 이건 뭐냐고 하길래 점토에 틀을 찍어내는 시범을 몇 번 보여주면서 가르쳐 줬습니다.
자 봐봐 이건 빨간 새야(꾹). 이렇게 하면 노란 새(꾹), 이렇게 하면 파란 새(꾹).... 앗 얘는 잘못 나왔다. 얘는 좀 이상해져 버렸어.
몇 번 찍다가 힘이 덜 들어가서 새 날개가 찌그러진 점토가 나왔길래 잘못 찍었다고 했더니 콩은 또 대수롭지 않게 그러더라고요.
"그런 새도 있는거지 뭐."
혹시 노인이세요?
할머니가 자주 봐주셔서 할머니 말투를 따라 하는 건지, 묘하게 해탈한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뭐가 됐듯 토끼 발언에 이어 다시 한번 아이들의 순수성이랄까. 거름망이 없는 듯한 발상에 감탄하고 맙니다. 일과 육아에 너무나 지치고 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소진된 밤에도 이런 순간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와요. 머리 다 큰 어른끼리는 절대 공유할 수 없는 감정이랄까요.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이럴 때마다 생각합니다. 고마워 콩, 넌 나의 빛이야. 그냥 빛은 아니고 특별한... 사이키 조명 같은 빛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