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개월인 콩은 말이 빠른 편입니다. 비교군이 없으니 제 주관적인 판단은 아니고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평이에요. 등하원하는 길에 얘기하는 걸 옆에서 들은 보호자들이 아이가 말을 어떻게 이렇게 하냐며 물어보고, 선생님도 나중에 말하는 직업을 갖지 않겠냐며 신기하다고 하시니 객관적인 평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죠.
아이가 말을 해서 좋은 점이 두 가지 있는데, 먼저 대화가 가능하니 전보다 육아를 하면서 느끼던 답답함이 많이 줄어들었다는 점입니다. 어린이집 다녀와서 뭐 했냐고 물어보면 그날 있던 일을 말해 주니(상상이 절반 섞여 있는 건 함정이지만) 엄마 없는 곳에서 뭐 하고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달래진다고 할까요.
두 번째로 좋은 건 부족한 능력으로나마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다 보면 기억에 남는 웃기는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아마 다른 부모님들도 모두 느끼실 것 같아요. 저 또한 인터넷에서 읽은 글 중에 아이가 다리에 쥐가 나서 저린 걸 가지고 다리가 반짝반짝한다고 했다는 걸 읽고 감탄했던 적이 있거든요.
콩은 이렇게 로맨틱한 실수를 하지는 않고 그냥 웃긴 소리를 가끔 하는데 어제는 어린이집에서 뭐 했냐고 물었더니 그러는 거예요.
' 내가 불을 불렀어! '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불장난을 했다는 말인가? 설마 애들한테 불을 가지고 놀게 하진 않았을 거고 생일파티를 하면서 초에 불을 붙였나? 생각하는 순간 이어서 콩이 소리쳤습니다.
'불이야 ~ 불이야 ~ 하면서 불렀어 ~ (입에 양손을 대고 확성기 표시를 하며) 이렇게 불이야 ~ 하는 거야'
아 소방훈련 한 거 얘기하는 거구나. 불이야를 불이 났다고 외친 게 아니라 강아지야 고양이야 하듯이 불의 이름을 불러 줬다고 생각했구나 하고 깨닫자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어요. 제가 신나게 웃어제끼면서 그래서 불이야 부르고 도망갔어? 하자 콩은 더 신나서 응 도망갔어 친구들이랑 같이 도망갔어~ 하는데 아아, 이 순간을 나중에 얼마나 그리워하게 될까 싶은 생각이 들어 절로 아이를 껴안게 되더라고요.
처음 엄마를 외치던 순간의 감동과 단어만 외치던 아이가 맘마 주세요를 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어느 순간 자주 듣던 노래 가사를 외워 부르는 아이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내가 아이와 떨어져 있는 순간마다 조금씩 놓치는 아이의 시간이 참 아깝다는 것입니다. 출퇴근까지 하면 하루 최소 열 시간 이상을 떨어져 있는 내 아기가 종일 떠드는 말들, 그 말들을 어디 담아둘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이가 태어나고 남편과 저는 주말 이틀 중 하루씩은 서로가 늦잠을 잘 수 있도록 오전에는 번갈아 가며 솔로 육아를 해 왔습니다. 이 방식이 꽤나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유지해 오긴 했습니다만 얼마 전부터 이것도 더는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늦잠 자기로 한 날 콩이 공원에 나가자는 아빠의 만류를 뿌리치고 안방 문을 덜커덕 열며 소리 질렀거든요.
'엄마 아빠 OO 셋이 같이 가야지!'
둘만 가는 건 싫고 셋이 다 모여야 한다는 콩.
저녁식사를 하며 엄마 아빠가 자기가 모르는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를 할라치면 곧바로 제지하며 누가 그랬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OO이도 OO이도 ~ 하는 콩.
혼자 인형들을 늘어놓고 놀다가도 엄마 아빠가 자기를 빼고 수다라도 떨면 한쪽씩 손을 잡고 자리 옆으로 데려와서 자기 보라고 하는 콩.
너 아무리 외동이라고 그렇게 관심 독차지하려고 하면 못써 둘째의 서러움을 모르는 배부른 녀석아! 하고 쥐어박고 싶다가도 부모 옆에 있으면 그저 즐거운 그 얼굴을 보고 있자면, 앞으로 몇 해면 사라져 버릴 이 맹목적인 애정과 사랑스러운 어설픔을 아쉬워하며 문득 깨닫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