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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내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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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R Aug 13. 2024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걸까

나를 보면 무슨 생각이 나니

아이를 키워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겠습니다만 아이가 자면 어른도 좀 더 놀고 싶고, 놀고 나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아이 때문에 부족해진 잠에 후회하고, 주말엔 진짜 좀 쉬어야지 하다가도 어떻게 맞이한 주말인데 하면 또 아이가 잘 때 육퇴기념 홈술이라도 하다가 아침이 되면 후회하는 일상의 반복입니다.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어른도 건강하려면 해 지면 자고, 해 뜨면 일어나는 사이클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는데 21세기에 그게 되나요. 이미 인공조명과 스마트폰에 절여진 성인인 저는 밤만 되면 초롱초롱해졌다가 아침에 끙끙대기 일쑤입니다.


저희 집 신입인 콩은 잠이 좀 없는 아기입니다. 저는 잠이 많으니 아빠 쪽을 닮았다 하겠네요. 다른 집 애들이 낮잠을 두세 시간씩 자고도 때 되면 잘 때, 이 녀석은 낮잠을 조금만 푹 잤다 싶으면 여지없이 그날 육퇴가 10시를 훌쩍 넘겼으니까요. 낮잠도 어찌나 안 자려고 버티는지 어린이집에서 혹시 미운털이라도 박힐까 싶어 두 돌이 넘을 때까지 어린이집 낮잠 재우기에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주말 아침, 콩 옆에서 잠을 자다가 작게 '엄마' 하는 소리가 들리면 '아닐 거야... ' 하고 속으로 생각합니다.

아직 7시밖에 안 된 것 같은데... 설마 아니겠지? 어제 10시에 잤는데?


"엄.뫄."


어느새 용사를 깨우는 제사장처럼 제 얼굴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는 콩. 이쯤 되어서도 엄마가 자는 척을 하고 있으면 시력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조금 기다려도 눈을 뜨지 않는 것 같으면 엄마를 걱정한 나머지 콩이 손가락으로 눈꺼풀을 벌릴 거니까요. 힘조절이 잘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후다닥 일어나면 콩은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합니다.


엄마 좋아.




낮잠을 깨울 때는 상황이 반대가 됩니다.

밤의 육퇴를 보장받기 위해 늘 엄마아빠가 콩을 먼저 깨우거든요. 저희는 성인이니까 콩처럼 단순무식하게 잠을 깨우지는 않습니다. 노래도 불러 주고, 뽀뽀도 해 주고, 간식 먹는 척도 하고, 보들보들한 배를 만지며 사심도 채우고 깨우죠. 콩은 이리저리 구르며 손길을 피하지만 결국 일어납니다.


아이는 신기할 정도로 깨워서 일어나고도 웬만하면 짜증을 내지 않습니다. 눈이 마주치면 바로 웃어요. 깨운 엄마를 보고 웃는 콩은 봐도봐도 신기합니다. 짜증 안 나나?

그럴 때면 생각합니다.

이 녀석이 화내지 않고 일어나는 것도, 밤에 안 자려고 버티는 것도 그저 이 시간을 행복하게 즐기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어린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능력이 아직 부족합니다. 내일 일어나서 뭘 하겠다, 안 자면 내일 피곤하겠다, 이런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 것이죠. 오늘만 사는 것처럼 순간을 즐기는 건 그래서 아이들만의 특권인 것 같아요. 그러니 매일 밤 잠들기 전이 그렇게 힘들 수밖에요. 엄마 아빠랑 헤어지기 싫은데, 오늘 너무 재미있게 놀았는데, 이대로 끝나는 건 싫은데 하면서 끝까지 저항하다가 잠드니까요.


아이를 키울수록, 부모는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보지만, 진짜 사랑은 아이가 우리에게 준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아이 말고도 배우자도 회사도 친구도 부모도 있지만, 아이는 엄마 아빠 말고는 보이는 게 없는 것처럼 사랑을 주거든요.


눈만 뜨면 엄마를 찾고 몇 번을 잠들었다 깨어나도 처음 발견한 것처럼 나를 반기는 내 아기.

이런 사랑은 죽을 때까지 단 한 번, 지금밖엔 받지 못하는 거겠죠. 하루 한 시간도 아쉬운 내 아기,

눈곱도 떼기 전에 엄마를 보고 웃는 녀석을 어서 안아주러 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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