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 싱가포르
3박 5일의 여행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아 마지막 조식을 먹고자 전날 커피를 마셨던 래플즈 쇼핑몰의 티홍바루 베이커리로 향했다. 따로 브런치 메뉴도 팔고 있지만 샌드위치가 너무 탐스럽게 생겨서 주문, 맛은 예상대로 좋았고 근처에 살았다면 주기적으로 크라상을 사다 날랐을 법한 가게였다.
먹고 나서 향한 곳은 내가 싱가포르에 살던 시절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던 차임스. 그때도 예뻤지만 여전히 세계 각국에서 날아온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차임스는 오래전 수도원이자 학교, 고아원 등으로 사용되었던 공간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고전적인 건물들 안에 수준 높은 레스토랑과 바, 카페가 모여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날씨도 좋고 마지막 날이기도 해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콩은 더웠는지 짜증을 좀 냈다) 하지만 콩 너도 조금만 자라면 인증샷에 목숨 거는 십 대가 되겠지. 그땐 부모 마음을 이해할 것이다. 차임스는 낮에도 밤에도 예쁜 곳이니 싱가포르 방문 계획이 있다면 꼭 들러서 사진을 남기시기를 권한다.
이어서 우리 셋은 클락키로 향해 강변에서 땀을 식히기로 했다. 클락키는 강가에 술집과 밥집, 쇼핑몰이 늘어서 있어 밤문화를 즐기기 좋고 보트를 타면 야경도 즐길 수 있는 지역인데, 우리는 아이를 동반한지라 물가에서 밤에 맥주잔을 기울이는 호사를 누리진 못했지만 이 지역 특유의 컬러풀한 건물들을 아이가 좋아해 신나게 뛰어다녔다. 강을 따라 걷다가 근처 쇼핑몰에 들어가 콩은 동전 넣으면 움직이는 자동차도 태워 주고, 야쿤 카야 토스트도 한번 더 먹고, 간간이 주전부리를 보충하다 보니 어느새 콩은 유모차에서 잠이 들었다.
우리끼리 마지막 현지식을 즐기고자 버스를 타고 부기스의 알버트 푸드센터로 이동! 나는 예전에 즐겨 먹던 중국식 죽인 콘지를 주문했고 남편은 Lor me 라는 처음 보는 짜장국수 같은 음식을 사 왔다. 둘 다 맛있었고 소이밀크도 크게 한 잔 사서 나눠 먹으며 마지막 저녁을 마무리. 콩이 깨면 주려고 오는 길에 커팅 망고도 구매했다.
한국에서 동남아를 여행하다 보면 많은 비행편이 현지에서 한밤중에 출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비행기도 예외가 아니었던지라 숙소인 Carlton Hotel에 문의했더니 1시까지만 무료로 체크아웃 시간을 더 주겠다고 했던 것. 다른 후기에서는 2시까지도 레이트 체크아웃을 제공받았다는 말이 있었으나 아마 이때가 싱가포르 방학이라 더 성수기였던 것도 같다. 아무튼 아쉽긴 했지만 다행히도 체크아웃 후에 샤워실은 무료로 개방되어 있어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시원하게 씻어내고 공항 갈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다만 공항으로 가는 와중에 택시를 탈 것을 괜히 시간이 많이 남는답시고 버스를 탔다가 후회했다. 가는 길은 무난했으나 내려준 곳이 그냥 공항 맞은편 깜깜한 도로 한복판 정류장이어서 진심으로 당황. 건너는 길도 보이지 않고 이거 진짜 어떡하나 싶어 동동거렸는데 다행히도 지나가던 사람에게 길을 물어 육교를 통해 공항으로 갈 수 있었다. 길을 못 찾았으면 오밤중에 얼마나 곤란했을지... 여기 살 때에도 공항엔 늘 지하철을 탔었는데 좀 편해보겠다고 무리한 시도를 했다가 십년감수했던 순간이다.
다시 한번 잊지 말자. 공항 이동은 처음 이용하는 교통수단으로는 하는 것이 아니다!
19년 전 이곳에서 노잼도시를 외치며 한국으로의 귀국을 갈망했던 내가 부자식(?)을 거느리고 신나게 놀다 가는 모습이라니 사람 일은 참, 한 치 앞도 모른다는 것이 이런 것이겠다.
다시 찾은 싱가포르는 여전히 깨끗하고, 합리적이고, 안전했다. 물가는 좀 더 올랐다. 공항은 뭐 세계 죄고의 공항이니 내가 굳이 더할 코멘트도 없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있었지만 귀국까지 모든 순간이 즐거웠고 (귀국날 공항 에피소드는 브런치북 '먹고사는 문제'에 올라갈 예정) 아이와 함께하기에도 더없이 좋은 여행지였다. 아이를 데리고 가방을 챙기다 보면 한숨이 나오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한 뼘씩 더 자라는 아이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다녀오길 잘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