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건 질색입니다. 그보다 더 싫은 건 단체생활입니다.
그 집은 싱가포르 공항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인 Tanah Merah 라는 동네에 있었다. 방 3개에 화장실 2개, 거실은 광활하고 부엌과 다용도실이 있었으며 수영장과 헬스장, 잘 정비된 조경을 갖춘 예쁜 집이었다. 다 좋았다. 그 집을 혼자가 아니라 8명이 사용한다는 것만 빼고.
집에서도 귀마개 없이는 자지 못하는 내가 8명의 여성들과 살을 부대끼며 1년을 보냈다는 게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 아마 그때 그 나이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머리만 커지고 몸은 게을러진 때라면 완주하기 어려운 레이스였을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로 간에 스케줄이 매우 달라 한 집에 모두가 모여 있을 때가 거의 없었다는 것, 그래서 한 방을 나눠 쓰는 친구와도 잘 때나 쉴 때가 아니면 만날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문제는 바퀴벌레였다. 뉴욕에 쥐가 있다면 동남아에는 바퀴벌레가 있다. 한국 바퀴벌레는 여기에 대고 더듬이도 못 내밀 귀요미들이라는 것을 살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따로 고이 모아 내놓는 한국과는 달리 그때 싱가포르 아파트에는 모든 종류의 쓰레기를 냅다 투하하는 투입구가 각 가정 주방마다 있었는데, 그 투입구 뚜껑을 열면 세 번에 한번 확률로 거대 바선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뚜껑 열다 기함하는 일을 두어 번 겪자 우리는 쓰레기 투입구 뚜껑을 열기 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노크를 했다. 쿠아왕쾅쾅!! 그럼 바선생도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는 것 같았고, 노하우를 터득하자 그 후로 쓰레기 버리다가 바퀴벌레와 조우하는 일은 없었다. 거실에 무작위로 등장하는 것은 어쩔 수 없고.
당시 공항에서 근무하던 우리는 새벽 또는 오후 스케줄로 일했다. 새벽 1주일 근무 후 다음 3주간은 오후 근무, 다시 새벽근무 1주일, 오후 근무 3주일. 대충 이런 패턴이었다. 오후 근무라면 집이나 근처 몰에서 점심을 먹고 출근했지만 새벽근무는 그럴 시간이 없어 일단 출근하고 일을 시작한 후, 조금 짬이 나면 아점을 먹을 시간에 첫 끼를 먹었다.
새벽근무의 장점은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집으로 출근 택시가 왔다는 점, 그리고 아점으로 치킨 포리지를 먹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싱가포르 치킨 포리지는 홍콩 치킨콘지와 같다고 보면 되는데 한국의 닭죽이나 서양의 치킨수프에 비하면 좀 더 걸쭉하고 간이 강하다. 위에 튀긴 마늘과 파를 뿌려 내주는데 특징이라면 주문을 하자마자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이다.
"Eeeeegg?"
첫 주문, 죽집 아저씨가 무심한 목소리로 에에에에에에그? 하고 되물어 에그? 에그 어쩌라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앞사람들을 보니 죽그릇에 날계란이 떨어져 있었다. 눈치껏 예쓰예쓰 하고 미소를 짓자 역시,라는 듯 희미하게 웃으며 날랜 손길로 내 죽에도 날계란이 들어갔다.
당시 공항 직원식당의 포리지는 환경호르몬 따위 쿨하게 먹으라는 듯 스티로폼 국그릇에 담겨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온도로 서빙되었다. 따라서 몇 분만 지나도 계란은 완벽한 수란이 되어 죽과 어우러졌고, 여기에 후추와 간장, 중국식 튀긴 빵인 요우티아오를 적셔 먹는 맛은 새벽 기상을 잊게 하는 마법이었다.
슬픈 일은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포리지 집이 치킨라이스 집으로 변신했다는 점. 그래서 아직 아침식사가 서빙되는 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가족과 함께한 첫 싱가포르 여행에서 마지막 식사로 치킨 포리지를 선택한 것은 간판을 보는 순간 그날들의 기억이 되살아나서였다. 조용한 새벽 택시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일,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동이 터 있고 포리지 집으로 향하며 아는 얼굴이 있나 두리번대던 일, 다음 스케줄까지 커피 한잔 할 수 있으려나 생각하던 일, 빨리 돌아가서 겨울 되고 싶다 더운 거 지겨워, 하며 투덜대던 일.
그건 빛나는 이십 대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