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의 단맛
요즘엔 한국에서도 카야잼을 바른 토스트를 쉽게 맛볼 수 있다. 동남아식 코피티암을 서울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고 카야잼을 인터넷에서 구매하면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받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19년 전, 카야잼은커녕 싱가포르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던 대학생이었던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난데없는 인턴십 제의를 받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속전속결로 진행된 인터뷰 끝에 싱가포르행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기 전날까지 고민했던 출발이었고 당시의 나는 무지하게도 싱가포르가 변방의 제3세계 국가쯤 되는 줄 알고 있었다.
난 더운 거 싫어하는데 어떻게 살지, 싱글리시는 알아듣기 힘들다는데 어떻게 일을 하지, 음식은 입에 맞는 게 있으려나, 사람들이랑 잘 지낼 수 있을까 등등 비행시간 내내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처음 도착해서는 패스트푸드 말고는 아무것도 당기지 않았다. 싱가포르 동네 마트를 가 보면 알겠지만 두리안 냄새가 솔솔 나는 경우가 많고 그때의 나는 두리안 향이 조금만 나도 거기서 뭘 먹을 수가 없었다.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호커센터를 가면 더워서 입맛이 나지 않았고, 트레이닝을 받던 센터의 매점에서도 온갖 나라의 음식 냄새가 섞여 식사를 잘하지 못했다.
하루는 푸드코트에서 먹을 만한 게 없어 고민하다 그나마 만만해 보이는 Chicken curry를 주문했는데, 당시 카레라고는 일본식 '카레'밖엔 몰랐던 내게 노란색이 아닌 벌건 주황색 소스가 올라간 밥에 거대한 닭다리가 다소곳이 누워 있던 본토식 '커리'는 신선한 충격이었고 그 비주얼과 향은 새내기 외노자인 나를 한동안 인도 음식에는 도전할 수 없게 만들었다.(지금은 인도음식 없어서 못 먹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1달 정도가 지나자 이 엄청나게 다양한 미식의 나라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환율이 1 싱달러에 약 600원 정도로 외식물가도 지금에 비하면 낮게 느껴졌는데, 주말마다 친구들과 새로 생긴 몰의 어디 맛집이 있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면 달려가기 바빴고 참새가 방앗간 드나들듯 졸리빈의 팬케익과 뱅가완 솔로의 에그 타르트, old chang kee의 튀김, 인도식 간식인 사모사 등등 온갖 디저트를 섭렵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총 섭취빈도수 1위를 달린 음식이라면 망설임 없이 카야 토스트를 꼽을 수 있다. 카야 토스트를 파는 가게는 많지만 나의 원픽은 언제나 Ya kun kaya toast.
수란 세트도 팔지만 나의 경우 보통 토스트만 시켜서 밀크티 혹은 밀크커피와 함께 먹었다. 고소한 버터와 달달한 카야잼, 거의 비스킷에 가까울 정도로 바싹 구워낸 빵의 조화란... 혈당 스파이크를 걱정할 나이가 된 지금은 조식으로 선뜻 고르기 쉽지 않은 조합이지만 그땐 정말 많이 먹었다. 지금은 단 음료를 즐기지 않지만 저 고소 달달한 토스트에 입가심으로 달달한 밀크티까지 쭉쭉 마셔대던 어린 날의 내 췌장에게 감사와 미안함을 전할 뿐이다.
음식은 달달했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단체생활이 기본이었기에 수영장과 헬스장이 딸린 넓은 아파트에 몸이 들어있긴 했지만 한 집에 여러 학생들이 모여 사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었다. 다 같이 친구처럼 지내다가도 문제가 생기면 니편 내편을 가르며 싸울 때도 있었고, 냉장고 칸을 침범하는 유치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일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누워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이 간절했던 날들이 있었는가 하면, 해가 진 후 선선해진 틈을 타 동료들과 옹기종기 장을 보러 나서던 밤의 촉촉한 공기가 더없이 즐거운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과정에서 나의 성격적인 부분도 적잖은 변화를 겪은 것 같다. 전보다 요구사항을 명확히 전달하게 되었고, 다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고, 일터의 누구와도 지나치게 나쁜 사이가 되거나 지나치게 기대를 갖고 친해지지 않도록 노력하게 되었다.
즉, 좀 더 어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