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생긴 주제에 맛은 있어가지구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려서부터 나는 소고기와 갑각류를 좋아했다. 아버지는 딸이 비싼 것만 밝힌다며 돈 많은 신랑 만나야겠다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하셨는데, 돈 많은 신랑은 아니지만 먹는 취향은 비슷한 신랑을 만난 덕분에 당기는 음식을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게 되긴 했으니 다행이라 하겠다.
소고기야 돈만 있으면 먹지만 갑각류, 그중에서도 게는 얘기가 좀 다르다. 물론 이것도 돈만 주면 다 손질해 주긴 하지만 내 집에서 갓 쪄낸 게를 먹으려면 아무래도 소고기보다는 손품이 훨씬 많이 드는 음식인 것. 쓰레기도 그만큼 많이 나와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음식인 바 아무리 해산물을 즐기는 우리 부부라지만 한번 먹으려면 맘먹고 주문하는 음식인 것이다.
하루는 아이가 게를 먹고 싶다고 쫑알거렸다. 고작 세 돌 주제에 음식을 고르다니... 하지만 작은 입으로 엄뫄 궤가 먹고 싶어요 궤. (개와 게의 발음이 다르다고 알려 주었더니 좀 너무 심하게 차이 나게 발음을 하게 되었다) 꽃궤랑 대궤 먹고 싶어요. 하는데 구매하지 않을 도리는 없었다. 대게는 늘 구매하는 곳에서 이번 주말 발송이 마감되어 이번 주는 꽃게로 결정하고 이런저런 판매처를 살펴보며 생물을 살지, 냉동을 살지 고민하던 중 칼날 같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때는 아직 신혼이었던 약 5년여 전. 처음 차린 살림과 홈술의 재미에 빠지기 시작한 때로 난생처음으로 집에서 꽃게찜을 해 볼 요량으로 살아있는 게를 주문한 참이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집에서는 게찜이란 걸 먹지 않았고 보통 게장이나 탕으로 먹던 사람인데 어쩐지 탕은 자신이 없어 꽃게찜으로 당첨, 이미 인터넷 검색으로 게 손질 방법을 사전에 숙지한 바 자신 있게 박스를 오픈하는 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요새 마트에는 톱밥에 넣어 게를 파는 경우보다는 얼음에 재워 파는 게 대부분이고 시장에서도 보통 얼음통에 있는 게를 물을 뿌려가며 팔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을 당당하게도 톱밥 포장이 되어있는 게를 주문하고는 오 추억 돋네 생각하며 뚜껑을 연 순간이었다.
"옴마야아!"
비명은 내가 아니라 남편 입에서 먼저 나왔다. 모래밭이 부엌 조명에 드러나기 무섭게 모래 안에 숨어있던 꽃게 군단이 일제히 집게발을 위로 쳐들고 로마 병정처럼 일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몇 시간을 그 안에 있었을 텐데 그 정도의 텐션으로 살아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고(1차 충격), 톱밥을 싱크대에 부어버리면 나중에 청소 지옥이 벌어질 테니 게만 꺼내 싱크대로 보내야 하는데 떨리는 나의 스테인리스 집게는 녀석들의 장검 같은 집게에 번번이 나가떨어졌다(2차 충격), 게들이 힘을 합쳐 내 집게를 집중 공격하자 온 바닥에 톱밥이 휘날리며 챙 챙 소리가 났고(실제로 소리가 났다. 상상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어떡해, 어떡해 하는 쓸데없는 탄식만 해가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 와중에 내 뒤에 숨어 떨고 있는 남편을 보며 분노와 공포가 혼재되는 끔찍한 순간, 이 인간은 소행성 같은 게 날아오면 내 뒤에 숨겠구나 내가 어쩌다 이런 초식동물과 결혼을 했을까 하고 우뇌가 혼자 딴생각을 하는 것을 느끼며 간신히 모든 게를 싱크대로 몰아넣었다.
인터넷에서 본 대로 얼음을 던져 넣었지만 얼음으로 기절을 시키려면 얼음이 한 박스는 필요했을 것 같다. 결국 끓는 물을 부어 그들 모두를 사망하게 하고(정말 미안하다...) 내가 무슨 살인마가 된 듯한 찝찝한 기분을 느끼며 게 손질을 마쳤던 신혼의 추억. 그 와중에 꿈틀거리는 녀석이 한두마리 남아있어 몇 번 더 비명을 지르고서야 먹을 수 있었던 눈물의 꽃게찜.
고민없이 냉동 꽃게를 결제하며 나란 인간은 먹는 건 그렇게 좋아하면서 죽음의 과정을 견디지는 못하는구나, 하고 이율배반적인 기분이 들었다. 물론 그런 기분은 잠깐이었고 냉동 게는 톱밥 게와는 달리 손질은 10분컷에 맛도 예상외로 훌륭하여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꽃게를 먹을 때마다 소환되는 톱밥 꽃게 사건은 이번에도 좋은 안주거리였고 남편은 그때마다 자긴 참 용감해. 역시 믿고 살 수 있는 여자야. 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