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을 줘요 치킨수프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을 때 죽이요,라는 답은 웬만해선 듣기 어려운 것 같다.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고 감칠맛과 매운맛, 단짠잔짠의 홍수 속에서 죽은 보통 삼삼함, 담백함, 부담 없음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므로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으로 죽을 떠올리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질문이 죽 중에서 뭐가 제일 좋아요? 라면 또 다른 문제다. 재료가 뭐냐에 따라 수만 가지 모습으로 변신하는 죽 중에서 나의 원픽을 정하자면 전복죽. 흰 죽에 전복살 조금 썰어 넣은 그런 거 말고, 내장까지 팍팍 넣어 죽 전체가 시퍼런 진짜 전복죽이 나의 취향이며 완벽하게 이 맛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밖엔 없으므로 - 정확히는 엄마 전복죽을 통해 내 취향이 형성된 것이지만 - 항상 레시피를 받아 놔야 하는데, 하고 말로만 동동대다 결국 엄마 집에서 한 냄비 받아다 먹게 되는 바로 그 음식이다.
어느 주말, 아이가 키즈카페를 다녀온 후 고열과 함께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장염인지 코로나인지 병원에서도 긴가민가한 가운데 그렇게 먹기 좋아하고 잠도 없는 아이가 축 늘어져 자려고만 하니 속이 상하고, 통통하게 나왔던 귀여운 배(용서하시라, 자기 아기 배는 다 귀엽고 거기에 대고 뽀뽀 한번 해보지 않은 부모는 없으리라 확신한다!)도 쏙 들어가서 안쓰럽기 짝이 없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몸이 아플 때 먹는 음식에는 국물 있는 것이 으뜸인 바 동양에는 죽이 있고 서양에는 수프가 있는 법. 내 취향이라고 전복죽을 하자니 방법도 모르고 재료도 없다. 만만한 게 닭고기니 닭다리째로 흰 죽을 끓여줘 보기로 했다.
죽은 먹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번거롭다. 방법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시간이 오래 걸리고 팔이 아픈 음식이다. 식은 밥으로 하거나 쌀을 미리 갈아서 하면 빨리 된다고 하는데, 정석대로 쌀을 불려 끓이자면 방법은 별 것 없어도 불 앞을 떠나면 금방 넘치거나 타기 때문에 시간만 맞춰놓고 딴짓하다 와서 확인하면 되는 오븐 요리와는 좀 결이 다르고 상태를 계속 확인하며 용암이 되어 튀어나오지 않도록 살살 저어줘야 하는 것이다. 어쩐지 국자로 저으면서 얼른 나아라, 나아라 하면서 기도하는 마음을 담아 조리하게 되는 음식이랄까. 아픈 사람에게 만들어 주기에는 결과물은 물론 만드는 과정마저도 이보다 적합한 음식은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엄마의 닭죽은 전복죽과는 달리 나의 취향에 백 퍼센트 부합하는 음식은 아니다. 나는 닭죽보다는 삼계탕을 선호하여 입이 마르도록 쌀은 닭고기 속에 들어가는 걸로 충분하니 맑은 국물로 삼계탕을 해달라고 요청하곤 했는데, 엄마는 만들다 보니 쌀이 또 많아졌다며 늘 닭죽과 삼계탕의 중간쯤 되는 음식을 창조하는 것이었다. 물 조절에 실패한 경우엔 죽도 아니고 그냥 닭밥 같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했다. 아니 그러니까 쌀을 좀 빼시라구요. 넣다 보니 이렇게 된 걸 어떡해. 그럼 애초에 쌀을 넣지 마세요. 그럼 또 맛이 없지. 늘 이런 대화의 연속으로 엄마는 칠순이 되신 지금까지도 삼계탕이 아닌 삼계죽을 만들었다. 가끔은 삼계밥.
아픈 아이를 위한 닭죽을 끓이며 내 닭죽보다 훨씬 물이 적었던 엄마의 죽을 생각했다. 아마 입 짧은 딸 입에 한 수저라도 쌀이 더 들어가길 바라며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재료가 추가되었을 것이다. 아이가 안 먹는다고 도리도리 하다가도 한 입 먹고는 마디떠요, 하면 심장이 노곤노곤 행복해지는 건 누구라도 같을 것이다. 아이가 네 살이건 사십 살이건 그 기분은 늙지 않을 것이고 내 미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니 한 숟가락만큼 더 행복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