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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Nov 15. 2024

소크라테스를 기다리며...

플라톤 『소크라테스의 변명』

벌써 떠날 시간이 되었군요. 나는 죽으러, 여러분은 살러 갈 시간이. 우리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향해 가고 있는지는 신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분명치 않습니다.(p115)


『소크라테스의 변명』 , 플라톤, 아카넷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기원전 399년 아테네에서 열린 재판에서 소크라테스가 행한 연설을 재현하는 형식으로 된 플라톤의 작품이다. (재판 당시 소크라테스의 나이 일흔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제목은 '소크라테스가 하는 변명', 또는 '소크라테스를 위한 변명'이라는 두 가지 의미 모두로 읽을 수도 있을 것 같고, '변명'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가 내포된 단어 대신 내용에 적합하게 '변론'으로 바꾸어 볼 수도 있겠다.  


이 작품 속 소크라테스의 재판은, 기원전 430년 카이레폰(소크라테스의 친구)이  '소크라테스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이 있는지' 신탁에 질문함으로써 촉발된 것으로 생각된다.(무녀 퓌티아는 “없다”라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지혜롭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지혜롭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지혜를 확인하고자 한다. (더 지혜로운 자를 찾아내 예언을 논박하고자) 그런데 이런 소크라테스의 행동은 아테네 시민과 지식인 계층에게 미움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신의 뜻에 따라 탐색을 하는 나에게는 가장 명망이 높은 사람들은 사실상 최대로 모자란 사람들인 반면, 그들보다 더 형편없다고 여겨지는 다른 사람들이 오히려, 현명함과 관련하여 더 제대로 된 사람들이라고 여겨졌습니다.(p45)

명망 높은 사람들(정치인, 시인, 수공 기술자 등)을 향한 소크라테스의 위와 같은 판단과 날카로운 지적은 그들의 미움을 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에 비해서는 자신이 더 지혜로운데 그 까닭은 자신은 스스로의 무지를 인지하기 때문이라 했다.


작품의 형식

작품의 배경이 된 그 시대의 재판의 형식은 세 단계로 나뉜다.

(1) 1차 판결: 원고, 피고가 각각 입장을 개진 후 유무죄 여부를 정함. (무죄일 경우 재판 끝남.)

(2) 형벌 제안 단계(유죄일 경우)

  -원고가 먼저 형벌 제안 후, 피고가 형벌을 역제안함.

(3) 2차 판결: 다수결 투표로 형벌 선택


이 작품도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부: 유무죄를 가르는 1차 판결 전 연설

2부: 형량을 확정하는 2차 판결 전 피고로서 대안 형량을 역제안하는 연설

3부: 2차 판결로 사형 확정 후 배심원을 향한 최후 연설


소크라테스 재판의 경우 형벌 제안 단계에서 원고 측이 사형을 제안했다. 이것은 피고 측이 역제안할 형량의 무게를 올리고자 하는 의도로 제안된 것으로 본다.(벌금형이 아니라 추방형 정도를 제안하게 하려는 계산한 행동이다. 원고 측 제안과 동떨어진 역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상식적인 선에서의 역제안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형량을 줄이고자 하는 현실적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자들은 두 무리다. 오래전에 고발한 사람들과 최근에 고발한 사람들. 소크라테스는 현재의 재판과 직접 관련이 없는 오래전 고발자들에 대해 항변하는 데 시간을 더 할애한다.(자신이 지금 법정에 서기까지의 연원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인 것 같다.) 그리고 오랜 시간 굳어진 비방과 고발을 항변하기에는(자신의 신념을 드러내 배심원들을 설득하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짧다고 말한다.     


오래전부터의 비방과 항변

-멜레토스는 시인을 대변하여, 아뉘토스는 상인과 정치인을 대변하여, 뤼콘은 연설가를 대변하여 소크라테스를 비방하고 있다.  


첫째, 젊은이들을 망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반론: 젊은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나를 따라다니면서 사람들이 검토받는 걸 들으며 즐거워하고, 결국 그들도 다른 사람들을 검토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둘째, 신들을 믿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반론: 나는 신의 뜻에 따라 지혜로움을 탐문하고, 지혜롭지 않은 것은 신을 도와 지혜롭지 않음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이런 일들로 분주하여 -신에 대한 봉사 때문에- 극도로 가난한 상태에 처해 있다.)

=> 내가 미움을 사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며, 그게 내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이다.

   

나중 고발자들에 대한 항변

고발 내용은 오래전부터의 비방과 비슷한 내용이다. 피고인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논리로 오히려 고발자 멜레토스를 단계적으로 심문하며 자신의 논지를 펼쳐나간다. 그리고 자신은 아테네인들을 깨우치기 위해 신이 이 나라에 주신 선물이라고 주장하며 죽음은 두렵지 않다고 말한다.("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기에 두려워하지도 피하지도 않을 것이다.") 죽게 되더라도 지혜를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않겠다고 공표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민주정 치하일 때나 과두정* 체제일 때나 동일하게 불의에 동조하지 않고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밝혀왔음을 말한다. 옥살이나 죽음이 두려워서, 정의롭지 않은 결정을 내리는 편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법과 정의의 편에서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펼친다.

(*404년 아테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스파르타에 패한 후 민주파 정권 대신 30인 참주들이 득세한 과두파 정권이 들어섰다. 과두파 정권은 여덟 달 동안 존속하며 1,500명 가량을 처형했다. 전쟁의 패배와 살육의 소용돌이 속에서 삶이 피폐해지자 현실의 불안과 고난을 책임질 희생양으로 소크라테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짐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원고 측의 사형 제안에 대한 역제안으로 엉뚱하게도 시 중앙 청사에서 받는 식사 대접을 언급한다.(이는 올림픽 경주의 승자가 받는 대접인데, 그 사람은 행복해 보이게 만들어 주지만 자신은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소크라테스의 형벌은 추방이 유력했는데 소크라테스는 이 나라에서 쫓겨나 어딜 가든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거라며, 자신이 침묵을 지키며 사는 것은 신에게 불복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위험 때문에 자유인답지 않은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듯, 지금도 이런 식으로 항변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런 식으로 사느니보다 차라리 이런 식으로 항변하고 죽는 쪽을 택하겠습니다.(p103)


소크라테스는 철저하게 검토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적당한 타협을 몰랐던 그의 신랄한 비판 정신은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었다. 안일함을 두고 보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날 선 정신이 사람들은 불편했을 것이고,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아갔다.


지금, 소크라테스를 다시 읽는 이유,

이 땅, 여기, 이 자리에 날 선 시대 정신과 정의의 목소리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 소크라테스를 다시 읽으며, 이 땅의 소크라테스를 기다린다.


지성이 균형을 되찾는 일, 소크라테스가 목숨을 바쳐 가며 성취하려 했던 일도 바로 그것이다.(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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