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게츠비』
단 하나의 꿈을 갖고 너무 오랫동안 살아왔던 것에 대해 비싼 대가를 치렀음을 … (p.201)
『위대한 게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문학동네
제이 개츠비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 그 사이엔 만이 있다. 신흥부호들의 지역인 웨스트에그와 전통부호들의 지역인 이스트에그를 구분하는 경계와도 같은. 그 뚜렷한 구분만큼이나 뛰어넘을 수 없는 부와 신분의 한계에 막혀 자신의 사랑을 잃었다고 믿는 개츠비. 그 자리에 서기까지 참으로 먼 길을 돌아온 그는, 자신의 대저택에서 데이지네 집의 초록 불빛을 바라보며 꿈을 꾼다.
'모든 것을, 예전 그대로 돌려놓을 거야.'(p.140)
톰 뷰캐넌
데이지의 남편 톰은 유명한 예일대 미식축구 선수였고, 높은 톤의 거친 허스키 목소리와 무시무시한 체격을 지닌 인물이다. 또한 그는 개츠비가 안간힘을 쓰며 다가가고자 하는 모든 것을 이미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톰은 '미식축구 시절의 드라마틱한 흥분상태를 그리워하며 영원히 방황하리라는 것(p.17)'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며, 그 방황은 데이지 이외의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것으로 드러난다.
데이지 뷰캐넌
'돈으로 충만한 목소리'를 지닌 여자, 힘겹게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과는 무관하게 안전하고 오만한 여자. 부로 치장하고 부가 주는 혜택들 속에서 끝없이 매력적인 여자.
1920년대 미국, 재즈의 시대. 1차 세계대전은 지나갔고 대공황은 시작되기 전, 재즈와 춤과 대규모 파티와 금주법 시행 하의 밀주가 성행하던 시대. 도덕과 법이 물러난 자리에 돈과 출세를 좇는 세태가 들어서는 모습들 속에서, 짧은 생애 내내 오직 하나의 목적으로 일관한 개츠비의 삶은 그 과도한 낭만성으로 우리를 전율케 한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p.13)
아무 경력도 없는 무일푼의 청년이었던 개츠비는 '상류층' 여자 데이지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개츠비는 데이지와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으나 그가 해외로 떠나 있는 사이, 그녀는 훌륭한 조건을 갖춘 톰 뷰캐넌과 결혼한다. 톰의 자질과 신분의 묵직한 무게감에 우쭐함까지 느끼며 결혼을 한 그녀였는데, 개츠비는 자신의 가난 때문에 그녀가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되찾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 부를 축적한 그는 데이지의 집이 건너다 보이는 웨스트에그에 저택을 마련하고, 그녀를 불러들이기 위해 매주 화려한 파티를 연다. 그리고 결국 데이지를 다시 만난다. 너무도 오랫동안 이를 악문 채, 믿을 수 없는 집중력으로 꿈꾸어왔던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만난 데이지는 여전히 물질 중심적이고, 자신을 감싼 부와 신분을 벗어놓을 줄 모르는 여자다. 개츠비는 그녀에게 사랑을 말하지만, 그녀는 '너무 많은 걸 원한다'며 개츠비의 사랑을 경계한다. 부와 신분에서 완벽한 상류층인 톰을 놓고 싶지 않은 것이다.
모든 것을, 데이지와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던 그 시절로 되돌리고픈 개츠비. 그러나 멋진 셔츠가 상징하는 물질의 아름다움에 경도되어 눈물짓는 속물적인 여자 데이지. 그녀는 '영원히 더럽혀질 수 없는 꿈'을 간직한 개츠비의 순수한 심장을 결코 짐작할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개츠비의 변화였다. 그는 문자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다.
환희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 없이도,
그로부터 뻗어 나온 새로운 행복의 광휘가 온 방을 가득 비추고 있었다. (p.113)
자동차 수리점을 운영하는 조지 윌슨은 개츠비를 살해한 후 자살한다. 개츠비가 자신의 아내와 바람을 피운 후 고의로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 그녀를 죽였다고 생각한 것이다. 개츠비의 죽음 앞에 데이지는 꽃 한 송이, 조전 하나 보내지 않는다. 더구나 조지 윌슨의 아내인 머틀 윌슨을 치어 죽게 한 사람이 자신이었음에도.(머틀 윌슨은 톰이 바람을 피운 상대였다.) 어쩌면 데이지는 그녀를 그대로 처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자신에게 빠져있는 개츠비가 그 일을 덮어주리라는 계산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톰은 조지 윌슨에게 개츠비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고의로 흘린다. 결국 개츠비의 죽음은 톰의 계략에 의한 것이었다. 자신이 바람피운 상대가 처참하게 죽은 상황에 놓인 톰. 자신을 지극히 사랑하고, 또 자신이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의 죽음을 맞은 데이지. 그러나 그들은 그런 죽음 앞에 참으로 덤덤할 뿐이다.
그들, 톰과 데이지는 경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든 사물과 살아 있는 것들을 산산이 부숴버리고 그런 다음에는 돈이나 더 무지막지한 경솔함, 혹은 그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 뒤에 숨었다.
그런 후에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말끔히 치우게 했다…… (p.222)
밤이면 역동적이고 모험적인 분위기로 충만한, 남자와 여자, 자동차들이 쉴 새 없이 몰려들며 눈을 어지럽히는 대도시. 그 대도시의 찬란한 어스름 속에서 간혹 저주받은 외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타인들에게서도 발견하였던 화자처럼, 또한 온갖 사람들이 몰려든 파티의 주인이면서도 완벽하게 고독했던 개츠비처럼, 오늘의 우리도 지나치게 외로운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개츠비의 무모한 열정을, 터무니없는 사랑의 욕구를, 무서울 정도의 집중력을, 이토록 오래 쓸쓸한 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일지도.
자신의 사랑을 위해 '암울하지만 절망하지 않으면서 끝까지 분투한' 개츠비처럼, 그 분투가 이토록 안쓰러운 우리도 지금 허망한 무언가를 놓지 못한 채 지나치게 애쓰고 있는 건 아닐는지.
나는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었다. 놀랍도록 다양한 인간사에 매혹당하는 한편으로 진절머리를 내면서.(p.51)
화자인 닉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우리도, 안에 있으면서 동시에 밖에 있는 존재들이고, 또 때때로 인간사에 진절머리를 내면서도 인간이라는 존재들에 수시로 매혹당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개츠비는 옳았다. (p.13)
(*표지 이미지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가져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