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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Nov 19. 2024

우유부단 혹은 순결함, 그리고 몇 가지 질문들…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슬픔이 찾아올 때는 수색대처럼 소수로 오지 않고 전 부대가 온다오. (p.165)  


『햄릿』, 윌리엄 셰익스피어, 문학동네


윌리엄 셰익스피어     

시골 출신의, 인맥도 가문도 재산도 없는 한 젊은이가 있다.(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십대 시절 가세가 기울었다.) 그는 인간 존재의 심연을 꿰뚫는 주제 의식과 철학의 바탕 위에, 세상 모든 것들의 캐릭터를 창조했다. 그의 작품은 감성과 뉘앙스를 버무린 언어로, 세계 인류의 심장을 타격하게 된다. 그의 작품이 갖는 힘은 무엇에 기반한 것일까.    

  

클로디어스, 거트루드     

그들은 사랑일까. 클로디어스(햄릿의 삼촌)와 거트루드(햄릿의 어머니)가 선왕의 생전에도 불륜관계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선왕의 혼령이 이 사실을 햄릿에게 알려준다.) 거트루드는 선왕의 살해에 직접 가담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햄릿의 깊은 우울의 단초다.(어머니의 손쉬운 변절로 인해 햄릿의 상심이 크다.)

형을 죽이고 권력을 찬탈한 클로디어스는 권력 집착형 악인일 것이나 거트루드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심으로 느껴진다. 악인의 사랑이란 어떤 형태의 것일까.      

형제의 살인. 나는 기도도 드릴 수 없는 처지지. (…)    
나는 여전히 내 살인의 목표물들인 내 왕관, 내 야망, 내 왕비를 소유하고 있으니까. 범행으로 얻은 것들을 간직하고도 용서를 받을 수 있을까? (p.131)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폴로니어스와 오필리어. 아버지와 딸. 폴로니어스는 클로디어스의 오른팔로 정의로움이나 도덕심보다는 권력욕에 취약한 인간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딸 오필리어에게는 현명한 조언을 건네는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이다. 오필리어는 폴로니어스의 죽음(햄릿에 의한)으로 정신이 흐려지고 물에 빠져 죽게 된다. 아버지에게 의지하던 그녀의 정신이 허약하게 무너져 내린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햄릿)에 의해 아버지를 잃고, 그 사람은 미치광이가 되어 그녀를 냉정히 대한다. 햄릿은 복수를 위해 미치광이 행세를 하지만, 오필리어는 잔인한 세상이 주는 상처를 이기지 못한 채 정말 미쳐버린다. 자신을 놓아버린 그녀가 아름다운 화관을 쓰고 물 속으로 향할 때(죽음으로 향할 때), 그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  

 

레어티즈      

아버지 폴로니어스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궁정으로 추종세력을 이끌고 쳐들어오는 격정적인 인물이다. 아버지의 죽음이 햄릿에 의한 것임을 알고 복수를 위해 못할 일이 없음을 천명한다. 여동생 오필리어에 대한 사랑도 지극하여 그녀의 죽음 앞에 눈물을 참지 못한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하고자 할 때 해야 해. 이 '하고자 하는 것'은 변화하고, 말리는 입과 손과 사태에 따라 감소하고, 지체되기 때문이지.(p.180~181)     

햄릿에 대한 복수를 종용하며 클로디어스가 레어티즈에게 건넨 말이다. 이 말은 어쩌면 혼령으로부터 아버지의 죽음의 진실을 전해 듣고도 복수에 착수하지 않는 햄릿에게 더욱 적절히 쓰일 말이다. 레어티즈는 그 말에 '교회에서라도 그자의 목을 자르는 일'을 하겠다고 지체 없이 화답한다. 햄릿과 대비되는 레어티즈의 격정적 성향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포틴브래스     

노르웨이의 왕자. 그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덴마크를 공격할 준비를 하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폴란드 공격 길에 나선다. 얻는 것은 이름뿐 이득이라고는 없는 작은 땅덩이를 취하기 위해 목숨을 건 전장에 나선 것이다. 포틴브래스의 행군을 보며 햄릿은 생각한다.     

 

진정한 위대함은 대단한 명분 없이는 거사하지 않는 게 아니라 명예가 걸려 있을 때는 지푸라기만 한 일에도 고상하게 싸우는 것이다.(p.160)     


햄릿은 명분, 의지, 힘, 수단을 갖췄지만 아버지의 복수를 망설이는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결과를 너무 면밀하게 고려하는 주저함 때문은 아닌지 넋두리한다. 그리고 섬세하고 젊지만 고상한 야심으로 부푼 포틴브래스의 정신이 자신을 훈계한다고 말한다.      


햄릿      

그는 우울했으며, 오필리어를 향하던 사랑은 회의에 빠졌고, 복수의 결단은 망설임 속에 미뤄졌다. 햄릿의 복수 지연은 자기 자신과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를 비롯하여 폴로니어스, 오필리어, 레어티즈 일가 등 그의 주변인들을 모두 죽음에 빠뜨렸다.

(그러나 햄릿은 서구 최초로 선악 이분법을 벗어나 고뇌하는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으로 의미가 크다.) 




 '『햄릿』의 비극성은 악의 제거에는 선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는 데 있다.'라고 역자 이경식 교수는 짚는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악인의 악행에 맞선 선한 이들의 희생의 과정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과정은 단박에 명쾌하게 이뤄지지는 않는다. 햄릿의 복수의 과정이 그러했고, 우리 삶의 여정이 단순하지 않은 것과 같이. 『햄릿』이 오늘도 읽히는 까닭은 이 비극의 완성을 위한 지난한 과정이 우리네 삶과 닮아있기 때문은 아닐까. 세상은 불의로 가득하고, 부패와 부조리의 인간들은 권력을 차지한다. 복수를 다짐한 이는 생각이 많고 복수의 시간은 자꾸 뒤로 밀린다. 그러나 우리는 악이 제거되는 시간을 기다린다. 비극을 통해 낙관을 꿈꾼다.  


셰익스피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어느 곳에선가, 누군가에 의해 재해석된 햄릿이 공연되고 있을 것이다.   

(올해는 조승우의 연극 햄릿이 '몰입감 최고'라는 찬사와 함께 우리의 가을을 뜨겁게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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