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민 『훌훌』
모든 고통은 사적이지만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제12회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훌훌』, 문경민, 문학동네
이 소설은 작가가 한 입양 가정의 어머니를 인터뷰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가는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안다'고 말하며, 자신의 딸이 자폐 장애가 있음을 밝힌다. 결핍을 지닌 등장인물들에 대해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섬세하게 마음 썼다는 걸 표현한 것이다.(딸의 질병을 받아들이기까지 긴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는 작가의 고백을 어디선가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서유리는 엄마 서정희에게 입양되었으나 3년 후 할아버지에게 떠맡겨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서정희는 아빠가 누구인지 모르는 초등학교 4학년 연우를 남긴 채 죽는다. 할아버지와 둘이 살던 유리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지금, 복막암 치료 중인 할아버지를 대신해 어린 연우의 보호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고등학생인 유리가 진 짐이 너무 무겁다. 할아버지의 질병이 치료가 쉽지 않은 종류라면 결국 남겨진 모든 것을 유리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든다. 훌훌 떠나는 게 목표였던 유리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 존재에게 연결되고, 깨지기 쉬운 상태에서 의젓하게 단단해지는지를 -그녀의 이름처럼- 응원하는 마음으로 지켜보게 된다. _개인적으로 제목 '훌훌'이 반어법으로 느껴지는 건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
유리는 친구 미희와 주봉과 더불어 무난한 학교생활을 해나가지만 자신의 입양 사실, 친부모에 대한 온갖 마음들로 머리가 복잡하다. 나중에 동아리 신청 문제를 계기로 친구 무리에 합류한 모범생 세윤을 통해 자신의 혈육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된다.( '세윤'은 입양가정의 아이를 모범적인 캐릭터로 그려달라는 부탁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입양가정의 어머니가 굳이 그런 부탁을 한 것은, 아직도 이 나라의 많은 입양가족들이 편견에 시달리고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유리의 담임인 고향숙 선생님은 학생들 사이에 사생활 관련 소문이 떠돌고 그로 인해 병규, 진성 등의 무리에게 수업 중 노골적인 공격을 받는다. 소설에서 자세한 내막은 드러나지 않지만 뭔가 불행한 곡절이 있음을 알 수 있다.(작가가 노골적으로 그 불행의 세밀화를 그려내지 않아 다행스럽다. 대신 불행을 통과한 인간의 담담함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낫다 싶다.)
이 소설은 각자의 사연을 짊어진 인물들이 자신의 현재를 버텨내고 극복해 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진 이야기다. 지나친 낙관도 경쾌한 희망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냥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어렴풋이 돋아나 서서히 자라는 인간애와 공감력을 통해 상처를 숨긴 인간들이 어떻게 모여 사는지를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