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허송세월 6(187~218쪽)
"비가 오거나 춥고 바람 부는 날에 어머니는 늘 수제비를 만들었다. 음산한 날씨는 가난을 더욱 발가벗기는 것이어서, 어머니는 그 쓸쓸한 기운으로부터 식구들을 보호하려고 수제비를 만들었던 모양이다."(p196)
음울한 가난의 풍경은 이제 먼 풍문이 되었지만,
가난을 위무하던 유년의 냄새는 남아
한 그릇 수제비 국물로 떠돈다.
유난히 바람이 궂어 눈이 시리거나
불퉁한 언어가 가슴에 얹히는 날이면,
반죽덩이를 오래오래 주무르던 엄마의 등을 떠올린다.
'갈등과 다툼과 불화와 적대관계를 버무려'
한 알의 수제비 건더기로 엉기도록
들썩들썩 찰지게 반죽을 치대던
오래전 그 손바닥의 굴곡과 온기를.
따끈한 국물 한 수저로도 훈훈히 덥혀지는 몸
기다려야 가능한 것들과 참아서 순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