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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Sep 07. 2024

날카롭게, 때론 멀리 보기(6)

김훈의 허송세월 6(187~218쪽)

"비가 오거나 춥고 바람 부는 날에 어머니는 늘 수제비를 만들었다. 음산한 날씨는 가난을 더욱 발가벗기는 것이어서, 어머니는 그 쓸쓸한 기운으로부터 식구들을 보호하려고 수제비를 만들었던 모양이다."(p196)


음울한 가난의 풍경은 이제 먼 풍문이 되었지만,

가난을 위무하던 유년의 냄새는 남아

한 그릇 수제비 국물로 떠돈다.

유난히 바람이 궂어 눈이 시리거나

불퉁한 언어가 가슴에 얹히는 날이면,

반죽덩이를 오래오래 주무르던 엄마의 등을 떠올린다.

'갈등과 다툼과 불화와 적대관계를 버무려'

한 알의 수제비 건더기로 엉기도록

들썩들썩 찰지게 반죽을 치대던

오래전 그 손바닥의 굴곡과 온기를.

따끈한 국물 한 수저로도 훈훈히 덥혀지는 몸

기다려야 가능한 것들과 참아서 순해지는 것들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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