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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Sep 08. 2024

날카롭게, 때론 멀리 보기(7)

김훈의 허송세월 7(219~256쪽)

    

전 우주적 이치를 담은, 제목을 알 수 없는 ‘한 권의 책’은 정약용을 유배지로, 이승훈을 참수대로, 황사영을 능지처참의 길로 이끌었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그들의 치열한 염원은 담대하고 무모하고, 그만큼 순결했다. 그러나 젊은 그들은 육신을 쪼개는 폭력 앞에 비루해져 서로를 낮은 자리로 불러들였으며, 인간의 형틀에 묶여 찢기고 맞아 피흘렸다. 결국, 누구는 배교하고, 누구는 순교했다.      


고발과 배반의 치욕으로 목숨을 보존한 정약용은 유배지 강진의 평화로운 일상 위에서 쓴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적은 없으며 이는 인성人性이 본디 열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가는 이 ‘열악함’을 아름답게 여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청춘 시절의 그 ‘한 권의 책’은 그들의 마음속에 늘 살아서 작동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각각의 청춘 앞에 ‘한 권의 책’이 있다. 책장이 열리고 청춘은 각각의 세계를 마주한다. 누구는 하느님의 얼굴을, 누구는 없음의 빈터를 볼 것이다. 누구는 피 흘릴 것이고, 누구는 배교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은 나아갈 것이며, 지금과는 다른 세계의 문 앞에 다다를 것이다. 세상은 야만적이나, 생명의 세계는 경이로우며 한계가 없다. 그래서 참혹하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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