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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소록 Nov 04. 2024

인간 사회의 운명을 바꾼 힘(1부)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균쇠』

지리가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하다. 남은 문제는 그 영향이 얼마만큼 큰지, 지리가 역사의 개괄적인 흐름을 설명할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p43)


『총균쇠』,  재레드 다이아몬드, 김영사  

우선, 피아노 연주자이고 쓸개 생리에 대한 세계적인 전문가이며 새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작업을 병행한 저자가, 50세에 이력 전환을 시도하여 일반 대중을 위한 책을 집필하는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서문과 프롤로그를 읽어보면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 이 책의 구성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역사가 종족마다 다르게 진행된 이유는 환경의 차이 때문이지, 종족 간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대 사회의 불평등이 타고난 능력 차이에서 유래한다는 인종차별적 시각에 대한 과학적 반증이라는 점만으로도 이 책은 큰 의미가 있다고 느껴진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 있다.(그중 오늘은 1부의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본다)


1부 : 에덴에서 카하마르카까지

인류의 역사는 적어도 약 5만 년 전에 시작되었고, 그때를 저자는 ‘대약진’이라 이름 지었다. 대약진은 지리적으로 한 지역, 한 집단에서 시작되어 다른 지역으로 퍼지며 기존 집단을 밀어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황상, 대약진은 아프리카에서 먼저 시작되어 유라시아로 확대됐고 이후 오스트레일리아·뉴기니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며,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는 인류가 마지막으로 정착한 곳이다.


대약진 중 눈에 띄는 것은 인간에 의한 대형동물종의 대량 학살이다. 아프리카와 유라시아에서는 인간과 동물이 함께 진화해 왔다. 즉, 인간의 사냥 기술이 발전하는 동안 동물들은 인간을 향한 경계심을 키워온 것이다. 하지만 뛰어난 사냥술의 현생인류를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친 오스트레일리아·뉴기니의 거대 동물상은 진화의 준비 없이 인간의 손에 도륙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거대 동물상이 멸종하면서 가축화 대상 동물이 사라졌다. 아메리카 대륙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으며 멸종하지 않았으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가축이 되었을 대형 야생 포유동물이 사라졌다.(인간사회의 발전 요인 중 야생 식물의 작물화와 야생 동물의 가축화가 갖는 의미는 매우 중하다.)


1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카하마르카에서의 충돌>이다. 1532년 11월 16일 페루의 고산지대 도시 카하마르카에서 잉카제국 황제 아타우알파와 스페인의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만난다. 이때 아타후알파는 월등한 수적 우위에 있었음에도 생포당한다.(스페인군 168명은 약 8만 명의 아타우알파 군을 상대하여 7,000여 명을 학살했다. ) 


스페인의 피사로를 성공으로 이끈 직접적 원인으로는 총포와 철제 무기와 말에 기반한 군사적 기술(원주민군은 말을 처음 보았고, 몽둥이류의 무기를 사용했으며 헝겊옷을 입고 있었다), 유라시아의 풍토병(유럽발 천연두로 이미 잉카제국의 황제와 황태자가 사망한 상태였다), 유럽의 해양 과학기술, 유럽 국가들의 중앙집권적 정치 구조(스페인은 배 건조 및 장비 마련, 선원 고용에 필요한 자금을 피사로에게 지원했다), 문자(피사로는 책을 통해 전해진 정보로 다른 문명 세계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고, 매복의 전략을 모방할 수 있었다) 등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은 이런 근접 요인들을 압축한 것이다.


아타우알파 생포 사건은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에 벌어진 많은 유사한 충돌의 결과를 결정지은 요인들과 기본적으로 똑같았다.


잉카 제국이 스페인인들에 의해 정복당하는 과정은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의 대형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멸종당하는 장면과 닮았다. 그 동물들이 멸종당한 이유는 인간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기 때문이다. 잉카의 원주민들도 역시 그러했고. 경계심 없는 천진무구함이 사악함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를 잘 보여준다.


 아프리카는 다른 대륙보다 적어도 500만 년을 앞서 인간의 역사가 시작됐다. 남북아메리카는 아프리카보다 면적이 50퍼센트나 넓고 다양한 환경이라는 장점이 있다. 유라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대륙이고, 유럽 남서부는 구석기시대 문화적으로 앞선 유물들을 남겼으므로 그때부터 앞서나갔을 수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뉴기니는 지리적 특성상 세계에서 가장 앞서 수상 기구를 보유했고, 해양환경 개척이 필요했다. 개척, 적응, 인구 폭발이라는 순환이 대약진의 필수조건이라면, 어느 대륙에나 가장 빨리 발전할 조건이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유라시아 사회가 가장 빨리 발전했으며, 그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이 책은 그 이유를 추적해 가는 과정의 서술이다.) 


1부의 2장에서는 지리적 조건이 인구 규모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곧 사회 조직의 차이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폴리네시아를 통해 설명한다. 문득 인구 절벽에 부딪힌 우리나라 현실이 떠오른다. 오늘날도 국가 경쟁력의 기본은 인구수가 아닌가 싶어서다. 



*총균쇠 1부(~p129)의 내용을 마음에 남는 부분을 위주로 거칠게 정리했다.

 총 4부의 내용을 4일에 걸쳐 간략하게 정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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