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p362)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소담출판사
공상과학소설에 등장하던 투명 망토와 무인 자동차가 실현되고, 화성이주 계획이 추진되는 시대. 과학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며 우리의 일상을 빠르게 변화시킨다. 어딘가를 향해 달음질치듯 걷는 사람들 속에 섞여 움직이다 문득 두려움을 느낀다. 이런 속도로 변화하는 세상은 결국 어디로 가 닿게 되는 것일까.
지난 시대보다 편안하고 쾌적하고 노고는 줄어든 세상. 과연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행복해졌을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기술이 매만지고 가꾼 매끈한 편익의 세상 속 진정한 인간의 행복을 질문한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작가의 강한 풍자 정신이다. 헉슬리는, 자동차 생산과정에 컨베이어 시스템을 도입하여 대량 생산의 길을 튼 헨리 포드를 『신세계』의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한다. 『1984』의 '빅 브라더'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신세계』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아야 하는 순간에 "포드님이시여!"를 외치며 성호를 긋듯 포드의 첫 자동차를 본뜬 T자를 긋는다.
『신세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이 '출산'이 아닌 '생산'의 과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모체에서 태어나지 않고, 컨베이어 시설에서 공장의 물건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된다. 지적 작업을 위한 알파, 베타 계층과 하급계층 근로자인 감마, 델타, 엡실론 계층 등으로 인간은 시험관 태아 단계에서 계급이 결정된다. 약물 투입으로 역할에 적절한 지능을 갖게 하고, 전기 자극을 통해 계급에 맞는 습성을 주입시킨다. 훈련의 반복에 의해, 습성은 타고난 기질로 굳어진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같이, 전체주의와 과학기술의 진보가 가져올 부정적 유토피아의 모습을 냉혹하게 그려내고 있다. 1932년에 발표된 이 작품 속의 미래 모습 중 가족의 해체, 감정적 교류가 배제된 성생활, 마약의 상용화 등은 우리에게 이미 미래가 아닌 바로 오늘의 모습이라는데 충격의 깊이가 있다.
책이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금서가 되고, 낡은 것들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세상, 얼굴 모습과 체격이 단 몇 종류로 한정되고, 수많은 쌍둥이들이 존재하는 세상. 『신세계』의 모습은 언뜻 기이하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재개발의 명목 하에 하루하루 무너져가는 서울의 옛 동네와 골목들, 유행처럼 번진 성형으로 쌍둥이처럼 닮은 이들이 늘어가는 서울의 거리가 문득, 눈앞에 어른거리는 까닭이다.
『멋진 신세계』는 J.B. 왓슨의 전기충격 실험이 엿보이는 장면(아기들에게 꽃과 책에 관한 조건반사 자극을 주는 장면)이나 부화-습성훈련 본부의 시스템에 관한 설명에서 짐작케 하는 생물학적 지식들(헉슬리는 한동안 옥스퍼드 의대에 다녔다고 한다), 에리히 프롬의 서구문명 비판론이 겹쳐 보이는 역설적 사유들, 극기훈련과 정화 등 동양사상과 접목되어 표현된 장면 등 1963년 69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30권의 책을 냈던 올더스 헉슬리의 박학다식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야만인 보호구역에서 태어나고 자란 '존'은 우연한 인연으로 『신세계』에 편입되지만, 적응하지 못하고 달아난다. 그가 읽던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신세계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고, 마약을 복용하지 않고 육욕의 본능에 괴로워하는 그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된다.
"사람들은 행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으며, 얻지 못할 대상은 절대로 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잘살고, 안전하고, 전혀 병을 앓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늙는다는 것과 욕정에 대해서 모르기 때문에 즐겁습니다."(P333)
슬픔도 없고, 아픔도 없으며, 반 그램짜리 정제 두 알만 삼키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인 『 신세계』. 그런데 왜 야만인 존은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을까.
"늙고 추악해지고 성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p363)를 원한다고 존은 말한다.
서부유럽 주재 세계통제관인 '무스타파 몬드'는 체제반란을 유도한 야만인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섬으로의 전출을 앞둔 버나드가, 두려움에 떨며 발작을 일으키자 이렇게 말한다. 섬으로의 전출은 처벌이 아니라 사실은 하나의 보상이라고. 자아의식이 강해 사회 적응이 어려운 사람들, 나름의 독자적 관념을 가진 사람들, 조금이라도 자기주장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모인 곳(p343)이 섬이기 때문에 그들이 부러울 지경이라고. 즉, 『 신세계』의 일상에는 그런 것들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 된다. 사회체제에 철저히 순응한 사람들만이 자의식 없는 행복을 누리는 곳, 『 신세계』의 진짜 얼굴이다.
모두가 행복한 『신세계』와, 불행해질 권리가 있는 야만의 세계. 지금 우리의 문명은 어느 자리를 향하고 있을까. 그리고, 당신의 선택지는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