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7세 고시가 화제다. 여기서 7세란 만 7세가 아니라 만 5~6세를 지칭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유치원을 다니거나 갓 졸업한 유아들이 마치 중・고등학생처럼 영어 지필고사를 앉아서 시험을 치르게 된다. 과도한 긴장감과 스트레스에 놓인 유아들은 시험 보는 도중에 울거나 시험 치르는 것 조차를 거부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교육 기관인 유치원에 자녀를 보내지 않고 영어 유치부*에 자녀들을 보내며 영어 입시를 준비시킨다.
뉴욕에 처음 석사 유학을 왔을 때, 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풍경을 기대했다. 실제로 많은 사립 유치원들이 유아들의 놀이와 자발적인 탐구를 중시하는 레지오 에밀리아 접근법을 표방하여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부모들이 자녀를 교육 기관에 보내지 않고 학원에 전일 보내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한 사립 프리스쿨(Preschool 혹은 Nursery School**)에 교생 실습을 하게 되면서 나는 뉴욕 상류층 사회에서 유아기부터 시작되는 경쟁을 엿보게 되었다.
현재 내가 교생 실습하는 곳은 프리스쿨로, 유치원의 전 단계이지만 한국의 어린이집과는 조금 다르다. 어린이집은 보육 중심이라면, 프리스쿨은 보육보다는 교육을 중심으로 한다. 그래서 운영 시간도 여느 유치원과 같이 짧은 편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왜 프리스쿨을 보낼까 의아하기도 했다. 왜냐하면 사립 프리스쿨은 교육비가 한 달에 300만 원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일례로, 뉴욕에서 가장 유명한 프리스쿨 중 하나인 First Presbyterian Church Nursery School은 오전 8:30에서 오후 2:30에 끝나는 전일제 만 3세 반 2025-2026 연간 학비가 $42,360이다. 오늘자 달러 환율 기준***으로 계산해 보니 5,941만 원 정도인 셈이다.
그런데 곧 나는 뉴욕 부모들이 왜 그 큰돈을 투자하며 굳이 프리스쿨부터 보내는지 알게 되었다. 사립 유치원 입시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 사람들은 '입시'하면 책상에 머리를 싸매고 앉아 고통받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내가 말한 '입시'는 입학 전형이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방식은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명망 높은 사립 유치원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우선 입학 원서를 내면 그 유치원에서 보낸 사람이 프리스쿨에 방문하여 일정 시간 유아의 놀이를 관찰하며 평가한다. 그리고 부모 및 원장님과 면담을 한다. 이 외에도 추가적인 절차가 있을 수 있지만, 어깨너머로 들은 바는 이와 같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국처럼 양적 평가를 하는 게 아니라 질적 평가를 하는 것이다.
이때 프리스쿨들이 가진 불만이라면, 유치원에서 파견하는 심사위원들이 교육 전공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부분 해당 유치원의 부모들이 선택한 사람들로, 주로 변호사나 의사 등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보낸다고 한다. 그래서 한 유아의 발달 상황을 제대로 측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사실상 한 유아가 얼마나 발달적으로 우수한지 보다는 사실상 그 유아를 둘러싼 네트워크, 재산, 집안 등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다. 이때 네트워크 중 하나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어느 프리스쿨을 다니는지 여부이다.
뉴욕뿐만 아니라 미국의 많은 사립학교들은 부모의 기부금으로 큰 지원을 받기도 해서 부모들의 입김이 크다. 그리고 프리스쿨부터 부모들이 참석하는 네트워킹 행사들이 많으며, '좋은' 부모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기 위해 부모들은 적극적으로 행사에 참석한다.
그리고 학교의 교사, 원장님 등도 부모의 네트워크 자산 중 하나이기 때문에 크게 진상을 부리는 부모들이 잘 없다. 적어도 내 느낌으로는 그렇다. 한국 여러 현장을 경험하며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여기서는 어지간해서는 겪거나 들은 적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에 비하면 놀랍지 않은 수준이다. 그리고 부모들을 실제로 만났을 때도 굉장히 젠틀하고 교육자를 존중해 주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건 사립학교 기준이고, 공립학교는 또 상황이 다르다 듣긴 했다.)
어쨌든, 미국은 유치원인 K학년부터 시작하여 바로 초등학교로 이어지기 때문에 유치원 입시는 앞으로의 교육 과정의 중요한 시작점이다. 그래서 학기말이 되면 부모들이 원장님이랑 어느 유치원 진학하길 원하는지 상담하기 시작하고, 원장님과 좋은 관계를 만들어 놓았어야 원장님이 더 적극적으로 본인 네트워크를 사용해서 입시를 잘 지원해 줄 수 있다.
나는 이 현상을 보며 한국보다도 뉴욕이 훨씬 닫힌 사회라는 걸 느꼈다. 물론, 7세 고시에 참전하기 위해서도 많은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부로 승부를 볼 수 있는 반면 이곳의 유치원 입시는 애초에 집안과 재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참전조차 못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글에 더 자세히 언급할 테지만, 이 과정에서 인종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좋은 프리스쿨 및 유치원 교사 및 원장님은 대부분 백인이고 이 상류층 사회를 주름잡는 세력도 결국 대부분 백인들이다.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돈이 많아도, 능력이 뛰어나도 특정 인종이 아니면 리그에서 배척된다.
그렇다고 한국의 7세 고시를 옹호할 생각은 없다. 내가 대치키즈로 자랄 땐 학원 고시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작되었는데, 그게 만 5세까지 내려왔다니 끔찍할 따름이다. 하지만 이쪽 세상도 이곳대로 문제가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 간의 기득권과 이권 싸움 속에서 희생되는 건 안쓰러운 유아들 뿐이구나 싶어 마음이 아프다.
글을 쭉 읽고 첨언하자면, 뉴욕의 유치원 입시 구조에서 입시를 치르는 유아들 당사자들은 사실상 크게 '희생'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유치원에서 보낸 심사위원들이 평가할 때 보고자 하는 일련의 지표들이 있긴 하지만 7세 고시와 비교한다면 그게 지나치게 발달 수준을 넘어선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가령, 숫자 세기나 기본적인 어휘력 등 유아로서의 선행된 학습 수준을 요구한다. 물론 이건 내가 그들의 평가과정이 어떤지 더 자세히 알면 더 제대로 논평할 수 있다 생각한다.
이 구조 속에서 희생되는 유아들은 그 구조에 속하지 못한 수많은 다른 유아들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공립 유치원이 오히려 일부 사립 유치원보다 교육의 질이 좋다고 이야기가 나오곤 하고, 공립 유치원에 보내는 게 그렇게까지 터부시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공립학교에 대한 신뢰가 낮다. 그래서 공립학교에 가면, 일부 부유층 동네에 있는 공립학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유색인종에 저소득층 학생들이 다닌다.
교사 대 아동 비율도 처참한 수준이며 (교사 1명 당 K학년의 경우 20명) 교실 분위기나 교육과정도 상당히 다르다. 참고로 한국도 내가 언급한 '처참한' 수준의 교사 대 아동 비율에 속하며, 이는 공・사립 구분이 없다. 아무튼, 유색인종에 저소득층 유아들은 유아들이 가득 찬 교실 속에 Mandate(주정부/도시 수준에서 규정한 교육과정)를 맞추느라 허덕대는 교사들 밑에서 학습해야 하는 셈이다.
반면, 사립학교의 경우 교사 대 아동 비율이 훨씬 낮은 편이다. 지금 내가 있는 프리스쿨은 교사 2명에 학생 12명이 있으며, 지금 교생인 나까지 추가되어 교사 대 아동 비율이 1:4인 셈이다. 교사 1명 당 4명의 유아들을 지도하는 환경과 교사 1명이 20명을 지도해야 하는 환경 속 교육의 질 차이는 전공생이 아니더라도 어떨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교육의 차이가 곧 성장의 차이가 되고, 배경의 차이가 되는 이곳. 이곳도 갈 길이 멀다고 느낀다.
* 영어 유치부: 유치원은 교육부 공식 인・허가받은 교육 기관만 사용할 수 있는 명칭이며, 영어 학원은 영어 '유치원'이라고 표기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유아들을 전일 교습하는 영어 학원은 영어 '유치부'라고 지칭해야 마땅하다.
** 엄밀히 말하면 Nursery School이 좀 더 놀이 중심이고 만 2세부터 4~5세까지 받는다. Preschool은 3~5세를 받으며, 좀 더 학교 준비에 중점을 둔다고 하지만 사실상 두 용어 간의 큰 구분을 두지 않는 편이다.
*** 1달러 = 1,402.50원 (2025.5.3. 기준)
사진: Unsplash의 Luca Brav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