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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기저귀를 갈아도 되겠니?

뉴욕 사립 어린이집은 무엇이 다른가

by 서하린

현재 나는 사립 어린이집 만 1세 반에 관찰실습을 나가고 있다. '관찰'이라는 말이 붙어있긴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관찰만 하는 게 아니라 수업만 안 할 뿐 보조교사 역할은 다 하는 교생 위치이다. 대학교 부설 기관이기 때문에 교생이나 조교들이 많아서, 보통 영아 2명 당 1~2명의 교사가 배정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가끔 바쁠 땐 영아 3~4명 당 교사 1명 비율이다.


이게 얼마나 적은 교사 대 아동 비율이냐면, 만 1세의 경우 한국 어린이집은 영아 5명 당 교사 1명이 배정된다. 뉴욕주도 동일한 비율을 따른다. 그리고 0세는 한국이 3:1, 뉴욕이 4:1이다. 이런 비율을 생각해 보면, 이 기관에서의 실제는 많은 부분 교실 안에 성인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점 미리 강조하고 시작하고자 한다.


뉴욕은 한국과 비슷하게 어린이집은 NYC Department of Health and Mental Hygiene이 관할한다. 한국에서도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산하에 있듯 말이다. 그리고 교육보다는 보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도 비슷하다.


이곳은 대학 연계 기관이라 보육료가 저렴한 편인데, 그렇다고 해도 여름 제외한 풀타임 1년 학비는 25,000달러(약 3420만 원*) 정도에 육박한다. 그래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보육해 주는데 이 정도라면 뉴욕에서는, 심지어 교직원의 질까지 감안하면 굉장히 감사한 가격이라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소득계층 구분 없이 무상보육이 시행되고 있지만, 뉴욕의 경우에는 저소득층 위주로 저렴한 공립 보육이 제공된다. 유치원의 경우 Universal Pre-K(UPK)라는 3, 4세 대상의 무상교육이 제공되고 있다. 하지만 공·사립 격차로 인해 여건이 된다면 사립을 선호하는 편이다.




사설이 길었는데, 그래서 이제 글 제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 어린이집에서 실습하게 되면서 관찰한 가장 놀랍고 다른 경험은 바로 교사가 영아**에게 "너의 기저귀를 갈아도 되겠니?"라고 묻는 것이었다.


이 기관은 굉장히 진보적인 아동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 주축이 되는 건 바로 영아도 한 명의 자율적인 인격체로 존중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관찰했던 어린이집들 중에서 영아에게 저런 질문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보통 교사가 영아의 기저귀를 확인한 후 갈아야 할 때 "기저귀 갈자~"하고 가는 식이었다.


만약 기저귀를 갈아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 영아가 "No"라고 하거나 거절하는 비언어적 표현을 보인다면, 교사는 "2분 뒤에 다시 올게" (사실 이 '2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혹은 "그럼 00이 갈아준 다음 네 기저귀 갈아줄게"라는 식으로 영아가 심적으로 준비할 시간을 준다.


밥을 먹을 때도 간식 시간이랑 점심시간이 딱 정해진 게 아니라, 영아의 반응을 살피고 배고파하는 경우 밥을 먹는다. 영아들에게 아기 수화(Baby sign language)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줘서 영아들이 그걸 활용하여 소통하기도 한다. 가령 배고픈 경우 주먹을 쥐고 입을 톡톡 두드리는 걸로 표현한다. 그리고 밥을 다 먹은 경우, 양손으로 별을 반짝반짝하는 손짓으로 표현하며 "All done"이라고 한다.


낮잠 시간도 정해진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영아의 개별 필요에 따라 다르다. Crib이 3~4개 정도 있는 Nap room이 따로 구비되어 있어 영아가 낮잠을 필요로 할 때 낮잠을 재운다. 영아가 잠이 들면 교사는 방에서 나온다. 방 안에서 우는 소리가 나거나 한 번씩 확인하러 갔을 때 영아가 눈을 뜨고 일어나 있다면 방에서 꺼내온다. 이러한 낮잠 형식은 이 기관이 Nap room이 또 따로 있어 독특하게 운영하는 것 같은데, 나중에 또 따로 자세히 써보겠다.


다만, 결국 단체생활인지라, 교사가 사사건건 영아에게 의견을 묻고 허락을 구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모두 함께 나가야 하면 나가야 하고, 활동을 해야 하면 해야 할 때도 있다. 대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를 분명하게 말로 설명해 준다. 그리고 만약 영아가 거절 의사를 보이면 최대한 시간을 주면서 단계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유아교육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이랑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애들이 뭘 알아"라는 말이다. 그런데 영아를 하나의 자율적 인격체로 존중하며 의견을 묻고 유심히 관찰하면서 느끼는 건, 영아들도 "뭘 안다"는 점이었다. 표현이나 이해 방식이 성인과 다른 부분이 있을 뿐, 기회를 준다면 충분히 본인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인상 깊었다.


"너의 기저귀를 갈아도 되겠니?"라고 물어봤을 때 어떤 영아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영아는 그 누가 와서 물어봐도 "No"라고 강경하게 말한다. 어떤 영아는 놀이하다가 울고 짜증을 내면서 배고프다는 걸 표현하고, 어떤 영아는 교사에게 먼저 다가와 아기 수화로 배고픔을 표현한다. 또 어떤 영아는 다른 영아가 밥을 먹기 시작하면 식탁으로 다가가 유아용 의자를 가리키며 자기도 밥을 먹고 싶다는 걸 표현한다. 그 누구도 하나같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방식으로 의사표현을 하진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이 기관에서 보이는 개별 맞춤형 보육은 기관 특성상 교실에 많은 성인 인력을 배치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진보적 교육관은 좋지만 가끔 너무 진보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곳에서는 피아제와 비고스키 등 전통적인 아동학 내러티브를 해체하고 재평가하며, 그들이 말한 것보다 영아가 더 주체적이고 능력이 있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나도 '정말 영아들이 내 말을 이해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데 이 기관 철학의 초점은 그래서 영아들이 "내 말"을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교사가 영아들의 의도를 읽을 줄 아는 능력을 기르자는 점 같다. 영아들이 성인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표현한다기보다는, 영아들 본인들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고 표현"한다는 점에서 성인과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고 보는 것이다.


* 2025년 6월 11일 기준 환율(₩1,368.95 / $1)을 적용했을 때.

** 만 0세부터 2세까지의 나이. 참고로, 유아는 만 3세부터 5세까지이다.


사진: UnsplashCarrie Allen www.carrieall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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