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말하면 더 그럴싸하다고요

<소란한 속삭임> 서평

by 해링
소란한 속삭임.png
<소란한 속삭임>
예소연
위즈덤하우스


‘모아’는 어느 날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구는 남성에게 거침없이 맞서는 ‘시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 남성이 시끄럽다는 것에 동조했다는 이유로 시내는 모아에게 모임에 들어올 자격을 부여한다. 홀린 듯 역 모아는 그 모임이란 ‘속삭이는 모임’이고 회원은 자신과 시내 단둘뿐이며, 손을 세우고 입을 가린 다음 반드시 비밀이 아닌 것들을 속삭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참을 수 없이 고요한 이 모임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야기는 이 '속삭임'이라는 장치를 중심으로, 현대사회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단절하는지를 섬세하게 추적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점은 감정이나 연대, 소통 같은 키워드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한국소설이 개인의 상처나 사회적 연대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이야기 자체의 재미를 놓치는 경우가 많지만, 《소란한 속삭임》은 다르다. 본질적인 서사적 흡인력을 유지하면서도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함께 품고 있다. 설정이 부각되거나 작가의 말이 호소의 형태로 다가오지 않기에, 독자는 부담 없이 비교적 중립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읽어나갈 수 있다.


priscilla-du-preez-VTE4SN2I9s0-unsplash.jpg


'속삭이는 모임'은 언뜻 듣기에 재미있는 콘셉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실제로는 각자의 크고 작은 결함을 공유하게 되는—공유하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공간이다. 여전히 우습지만 한편으론 슬프다. 작가는 이 모임을 통해 '병든 사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과도한 내적 묘사나 감정의 토로 없이도, 사람들이 왜 이런 모임에 모일 수밖에 없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단편에 가까운 얇은 책이다. 그러나 짧은 분량에도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정제되어 있고, 이야기는 힘을 뺀 문체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그렇게 이어지는 서사는 마지막에 이르러 의외의 시의성을 띠며 마무리된다. 무게감 있게 다루기 쉬운 주제를 귀엽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예소연 작가의 균형 감각이 돋보인다.


물리적인 구성 또한 흥미롭다. 작 중 '속삭임'은 실제로 작은 폰트로 인쇄되어 있어 시각적인 경험까지 더해진다. 이 장치는 단순한 형식적 실험이 아니라, 작품의 주제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읽는 동안 독자는 '속삭임'을 눈으로 듣는 듯한 감각을 받는다.


결말은 다소 예측 가능한 흐름으로 이어지지만, 그럼에도 작가가 지금의 사회가 다뤄야 할 문제를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납득이 된다. 모임을 통해 회원들의 소박하지만 중요한 변화를 분명히, 그리고 여전히 소박하게 담아낸 것도 좋았던 부분이다. 완전히 닫힌 결말이 아니기에 남는 여백이 오히려 잔잔한 여운으로 남았다.


jarritos-mexican-soda-RnnKc2gFDOE-unsplash.jpg


최근 한국소설들 가운데는 개인의 내면이나 사회적인 논의에 집중하느라 읽는 재미나 서사의 밀도를 잃은 작품이 적지 않고, 그래서 읽고 나면 머릿속에서 금세 휘발되는 경우도 많아 아쉬웠다. 그러나 <소란한 속삭임>은 과도한 감정 묘사에 기대지 않고,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재미와 깊이를 함께 지닌다. 짧지만 밀도 있고, 웃기면서 그 이상의 가치를 담고 있다.


의문을 제기하지 않지만 자연스레 생각나게 하는 게 이 책의 성취이다.

언젠가 '속삭이는 모임'을 떠올리며 처음 책을 읽었을 때처럼 다시 웃을 수 있기를.





속삭이면 더 집중하게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