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죽음은
너의 삶을 썼다

<자살> 서평

by 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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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에두아르 르베
워크룸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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Édouard Levé (1965-2007) 에두아르 르베
사진과 글을 주요 매체로 삼아 활동한 프랑스 작가. 1965년 1월 1일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르베는 20대 중후반에 그림을 그렸지만, 서른 즈음 인도 여행을 다녀온 후 사진을 찍기 시작한다. 이후 개념적인 사진 작업에 매진한다. 한편 2002년에는 533개 작품 아이디어를 모은 『작품들』을 프랑스 출판사 P.O.L에서 출간하면서 문학가로서 남다른 이력을 시작한다. 이어 2004년 『저널』을, 2005년 『자화상』을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다.

그리고 에두아르 르베는 2007년 10월 15일, 파리에서 자살한다.

《자살》은 그 이듬해에 출간된 책으로, 그가 자살하기 며칠 전 송고한 글이다.





이야기는 ‘너’라 불리는 인물의 죽음을 친구가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그 회상은 감정이 아니라 관찰의 차원에 머무른다. 친구는 이유를 찾으려 애쓰지만, 이야기의 어디에도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독자는 그 부재 자체를 마주하게 된다.


르베는 죽음을 하나의 사건이나 미스터리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그것을 언어와 기억의 구조 속에서 재배치한다.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 존재를 구성하던 서술의 방식이 끊어지는 지점이다.


즉, 그는 ‘왜 죽었는가’가 아니라 ‘죽음을 어떻게 말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곧 문학 자체의 한계를 시험한다. 감정의 서술을 배제한 건조한 문체, 파편적으로 흩어진 장면, 그리고 2인칭 화법의 거리감은 모호하고 불편하지만,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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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칭 서술은 작품에서 가장 특징적이고 독특한 요소다. “너는 죽었다”는 문장은 동시에 “나는 남았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화자는 너를 회상하면서도, 어느 순간 너의 시선을 빌려 자신을 바라본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위치가 바뀌고 독자 또한 그 교차점에 놓인다. 어느 순간 작품 속 ‘너’가 화자인지, 작가 자신인지 모호해지지만,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이 불확정성 자체가 작가가 구축한 서사 구조의 핵심이다. 그는 관계의 경계를 무너뜨림으로써, 존재의 불안정함을 문학의 언어로 옮겼다.


이 책이 자주 “작가의 실제 자살과 결부되어 과대평가되었다”는 말을 듣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작품의 현실적 맥락은 강력하다. 하지만 본작의 존재론적인 성찰의 깊이와 파격성은 그만큼 강렬하다. 작가는 ‘죽음의 재현 불가능성’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했다. 죽음을 설명하는 대신 설명할 수 없음을 구조로 제시한다. 그런 점에서 《자살》은 자서전적 고백이 아니라, 죽음을 사유하는 형식의 실험이다.


감정의 결여는 이 작품의 결함이 아니라 본질이다. 르베는 죽음을 애도하지 않고, 관찰한다. 그 냉정함은 오히려 진실에 가깝다. 죽음을 둘러싼 감정의 언어들이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애도의 서사를 거부함으로써,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드러낸다. 죽음을 말할 수 없는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말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 르베는 바로 그 모순을 문학의 중심에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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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에 이 책이 자살을 미화한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이 작품만큼 솔직하게 자살에 대해 문학적으로 다룬 작품은 없을 것이다. 작가가 삶에 대한 애착과 혐오만큼을 죽음에 대해서도 할애한 글로 읽었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의 죽음을 해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죽음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충동을 반추하는 일이다.


작가의 실제 죽음이 작품을 유명하게 만들었을지라도, 그 텍스트는 그 자체로 독립적인 문학적 완결성을 가진다. 《자살》은 감정적 위안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덮은 뒤에야 비로소 그 무력한 사유가 시작된다.


죽음을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르베는 가장 정확하게 그것을 말한다. 그것이 이 책의 잔혹한 명료함이며, 동시에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다. 작품의 시작하기 전 편집자가 쓴 <이 책에 대하여>는 그 자체로 작품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부분을 인용하며 서평을 마친다.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의 삶에 의해 쓰였다.

누군가의 삶이 누군가의 죽음에 의해 쓰였다.

그리고 누군가 그것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