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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리 Aug 24. 2021

어떤 장소는 어떤 고양이로 기억된다

그들의 안녕을 소망하며.

참고: 고양이 사진 없습니다 (시무룩)


 글을 쓰러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괜히 인상을 쓰고 키보드를 두드리며 잘 안 풀린다는 듯 콜드 브루 한 모금을 마신다. 각자의 일로 꽉 찬 바쁜 카페의 완벽한 풍경에 완벽히 녹아든 것 같다. 사실은 모니터에 "뭐 쓰지 망했다"로 시작해 의미 없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가득하다는 게 밝혀지지만 않는다면. 


 그날도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시원하게 트인 창가 옆에서 글쓰기를 멈추고 나는 안 될 거라며 속으로 울면서 겉으론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러다 여느 때와 다르게 창가 밖으로 유유히 지나가는 작은 회색 고양이를 발견했다. 사실 내 눈에는 귀여움 포착 레이더 비슷한 게 있어서  걸을 때면 멀리서 다가오는 강아지들을 기가 막히게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얼굴엔 미소가 번지며 콧구멍은 커지고 - 요즘은 마스크를 쓰고 다녀서 얼마나 다행인 지 - 다만 눈은 차분함을 잃지 않지. 회색 고양이를 포착하자마자 창가에 철썩 붙어서 사진을 찍고 귀엽다며 끙끙 앓았다. 예쁜 고양이. 그날 이후로 그 카페는 나에게 회색 고양이의 카페가 되었다. 자주 오는지 안 오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끙끙 앓았다..


 어떤 장소는 어떤 고양이로 기억된다. 중학생 때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덩치가 큰 삼색 고양이가 살았다. 사람만 보면 냐옹 울면서 다가와 사람 다리에 자기 몸뚱이를 부비적 부비적. 자기가 얼마나 예쁜지 안다는 듯 벌러덩 애교를 부리기도 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내가 살던 아파트 동 앞을 지나가던 그 고양이를 보면 냉큼 달려가 잘 있었냐 묻고 한참을 예뻐해주곤 했다. 길고양이가 아직은 도둑고양이에 더 가깝던 시절. 오늘도 그 삼색 고양이를 봤다고 엄마에게 자랑을 하면 먼저 손이나 깨끗하게 씻고 오라는 소리를 듣곤 했던. 지금 사는 곳과 멀지 않은 그 아파트 단지를 지나치면 질풍노도의 시기를 소심하게 겪었던 날들과 그 삼색 고양이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사람에게 예쁨 받기를 좋아하던 친구였는데 아마도 걘 길고양이 1세대였을지도 몰라, 하고. 


 우리 동네 행정복지센터 주변을 자주 돌아다니는 그 턱시도 고양이. 나만 경계하는 건지 모두를 경계하는 건지 몰라도 센터 건물 옆 비워진 밥그릇을 보면 오늘도 잘 먹고 다니는구나 안심이 되곤 한다. 전에 다니던 회사 근처를 돌아다니던 치즈색 고양이는 유독 주차된 차 밑으로 잘 숨고는 했다. 무척이나 더웠던 여름날, 또 차 밑으로 쏙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목이라도 축이라고 종이컵에 물을 받아 나갔는데 그 사이에 사라졌었다. 서울의 어느 작은 동네책방을 갔을 때 길에서 만난 고양이도 생각이 난다. 그 친구는 사람을 좋아했다. 나와 내 일행 주변을 맴돌며 냐옹 냐옹하고 따라왔었는데. "줄 게 없어 미안해!" 말해주고 헤어졌던 기억이 난다. 가끔 등본을 떼러 복지센터를 가면 혹시나 그 고양이가 있을까 기웃거리게 된다. 전 회사나 그 동네책방을 우연히 떠올리면 필연적으로 그 고양이들이 떠오른다. 여행지에서 무심코 꽂았던 이어폰을 타고 귀로 흘러 들어온 노래로 그 여행을 기억하는 것처럼. 


 여름이 가는 게 아쉬운 듯 내리는 비에 가을장마라 조금 이른 듯한 이름을 붙여주는 어지러운 계절이다. 얇은 겉옷을 챙겨 습관처럼 회색 고양이의 카페에 갔다. 오늘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걸 보니 비를 피해 잘 지내고 있는 듯하다. 춥던데 다행이야. 어떤 장소의 어떤 고양이들도 잘 지내고 있을까. 똑같은 세상이어도 나는 팍팍하게 너는 자유롭게 사는구나 쉽게 부러움을 사곤 하지만 사실은 위태롭게 살아가는 길고양이들. 이런 거친 날이면 그들이 생각난다. 잘 지내는지 괜히 궁금해지는, 빗소리에 맞춰 토독토독 타자를 치는 8월의 어느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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