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폐급 장교였다.

연락장교(1)

by 하까몽

많은 사람들과 같이, 나는 군대보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모인 집단을 본 적이 없다.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에 있다가 나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입대했던 한 병사부터, 자신의 나이를 끝까지 병사들에게 숨기던 초임 하사까지. 다양한 연령과 다양의 배경의 사람들이 오직 한 목적을 위해 모인다.

국방의 의무, 우리는 그것을 신성하다 하지만 그 신성한 의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기 다르다. 누군가는 매도 빨리 맞는 것이 낫겠다며 20살이 되지마자 자원입대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끝까지 피해보려 하지만 결국 마지못해 그 신성한 의무에 동참하게 된다. 그러나 그 마음이 어찌되었든, 그가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 모든 이들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들은 모든 이들 앞에 칭찬 받아야만 한다. 그것이 자신을 희생하는 그들에 대한 사회의 마땅한 대우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만약 그 신성한 국방이 의무가 아닌 직업이라면 어떨까?


그렇기 때문에 군대라는 다양한 인간군상에서 가장 크게 나뉘는 것은 병사와 간부이다.

간부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에 동참하지만, 그들은 성직자가 아니다. 그들의 의무는 이미 끝났으며 그들은 직업으로 그것을 이어가는 것이다. 병사들에게 군대가 숭고한 희생의 장소라면, 간부들에게 군대란 그저 매일매일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할 삶의 투쟁의 장소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의무복무만 마치고 나가려는 간부는 무엇이 되는가?


바로 여기에서 내 이야기가 시작된다.


나는 폐급 장교였다.

폐급이라는 말은 소모품 등에 붙는 용어로, 군수물자가 더 이상 사용이 불가능한 다시말해 가능성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그리고 인적자원은 엄연히 군수물자가 아니지만, 모든 것을 군대식으로 바라보기를 원하는 몇몇 병사들은 가능성이 없는 후임들을 가르쳐 폐급 병사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니까 간단한 작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며, 늘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정상적인 군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인물들을 뜻하는 말이다. 그래도 인적자원에게 군수품을 취급하듯 폐급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쓸 수 없었으므로 공식적으론 그들을 도움과 배려가 필요한 용사라고 칭했다.

폐급이던, 도움과 배려 용사던 둘 중 무엇이든 간부와는 절대 어울릴 수 없는 표현이었다.

왜냐하면 간부는, 특히 그 중 "장교는 군대의 기간으로 장교는 그 책임의 중대함을 자각하여 직무수행에 필요한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고, 건전한 인격의 도야와 심신의 수련에 힘쓸 것이며 처사를 공명정대히 하고 법규를 준수하며 솔선수범함으로써 부하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아 역경에 처하여서도 올바른 판단과 조치를 할 수 있는 통찰력과 권위를 갖추어야 한다."라고 대한민국 국군에서 장교의 책무를 정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장교란 폐급일 수 없다. 계급장이 부여하는 권위와 직책이 있는 한 장교는 가능성 없이 버려지는 소모품 취급을 받을 수 없었다.

오죽하면 장교의 공식적인 징계는 그것이 이제 군생활을 시작한 지 몇개월 지난 소위라 할지라도, 병과장에 해당하는 대령 즉 연대장만이 가능했다. 간부와 병사가 서로 나뉘는 그 집단에서도 소수의 권력자에 속하는 장교는 아무리 소위여도 폐급으로 취급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폐급 장교라는 딱지가 붙었다.

"지휘관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체력과 의지가 부족해 보임"

첫 지휘 실습에서 나를 담당한 중대장이 실습 일지에 기록한 문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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