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팔이의 하소연 |콘텐츠 범람 시대, 지루함을 견뎌라

지루함을 견뎌야 사람이 된다.

by 무해한

브런치 글을 매일 게시하려니 쉽지 않다.

그래도 브런치 작가 한방에 승인된 것에 감사하며,

나만의 세계관을 담은 나만의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글을 쓸 수 있음에 감사하다.


브런치 커버 (2).png


나는 글팔이다.

나는 글을 팔아먹고 산다. 아주 작은 1인 출판사를 운영하며 텍스트 콘텐츠를 팔려고 한다.

사실 책은 잘 안 팔린다.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한 탓도 있다.

그래서 출판사를 운영하는 것으로만 먹고살 수 없어서 이것저것 다양한 일을 했다.

직업이 작가지만, 작가의 일로 돈을 벌진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를 제작하기도 했고,

유튜브로 큰 수익을 얻은 나날도 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수입원은 강의였다.

글 쓰는 재주밖에 없던 나는 논술 강의를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현재는 출판 강의, 전자책 제작 강의로 돈을 벌고 있다.

결국 '글팔이'를 자처하는 작가지만,

정작 글을 팔아 돈을 번 일은 거의 없다.

슬프지만 현실이다.

텍스트 콘텐츠는 외면을 받고 있다.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노동이다.

어제 남긴 글이다.

https://brunch.co.kr/@harmless0317/3

사람들은 점점 글을 읽는 것을 귀찮아하며, 생각하는 것엔 지쳐있다.

따라서 자신의 흥미를 만족할 수단으로 '정크 콘텐츠'만 찾게 된다. 싸구려 도파민이 가득한 쇼츠, 릴스 등으로 흥미를 충전한다. 이런 시대에 '책을 읽는 것'은 노력해야만 가능한 일이 됐다. 필자도 작가로 살고 있지만, 여가시간에 그을 읽기보다 쇼츠, 릴스를 보는 게 더 끌리는 것은 사실이다. 현대인들에게는 책을 읽는 행위가 노력해야만 하는 일이고, 노동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다. 삶 속에서도 노동으로 지치는데, 여가시간에 굳이 더 노동을 하겠는가? 따라서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책을 읽는 행위는 제2의 노동이다.




콘텐츠의 홍수는 인간의 지루함을 앗아갔다.

오늘도 하염없이 손가락이 위로 올라간다. 스마트폰 액정에 엄지 손가락을 자꾸 위로 올린다. 나에게 흥미로보고 재미있는 영상이 나올 때까지. '멈춤'과 '고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스마트폰 액정에 엄지손가락을 위로 쓸어 올릴수록 끝도 없이 동영상이 나온다. 고갈되지도 않는다. 아무리 재미없는 영상이 5개 이상이 나와도 엄지손가락은 멈출 줄은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잠시라도 흥미롭지 않는 순간을 못 버티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고갈되지 않는 콘텐츠의 홍수는 인간에게서 지루함을 앗아갔다. 지루하고 따분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인간의 욕구는 항상 재미를 쫓는다. 쇼츠와 릴스는 그 재미를 손쉽게 충족시켜 준다. 더 이상 생각하고, 사유하고, 감상하지 않는다. 흥미를 즉각적으로 충족시켜 주는 숏폼 콘텐츠들이 있기에 지루한 시간을 더 이상 견디지 않아도 된다.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고 또다시 콘텐츠 충전을 한다.

심지어 화장실에 볼 일을 보러 갈 때도 스마트폰을 본다.

샤워할 때도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보며 씻는다.

설거지할 때도 콘텐츠를 틀어 놓는다.

우리는 잠시라도 지루할 시간을 스스로 주지 않는다.

지루함을 더 기피하게 되었고, 잠깐의 틈이라도 콘텐츠를 소비하려고만 한다.


병원, 엘리베이터 안에서 잠깐의 대기시간에도 계속 콘텐츠를 본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결국 홍수에 휩쓸리고 만 것이다.

이렇게 콘텐츠의 홍수는 인간에게 '지루함'을 앗아갔다.




역설적으로 지루함을 견디는 자가 생존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현대인들은 콘텐츠에게 잡아 먹혔다. 뇌를 쉬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콘텐츠 제작자들은 오히려 콘텐츠에 자신을 잡아먹히지 않도록 애를 쓴다.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읽기 위해, 변화의 흐름은 캐치하지만

양질의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은 쇼츠로만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양질의 콘텐츠는 숏폼 콘텐츠에게서만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결국 콘텐츠의 대홍수 시대,

콘텐츠를 가장 잘 읽고, 만드는 사람들은 무작정 콘텐츠만 소비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깊이 있는 사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축약된 것을 감상하고, 그 안에서 메시지를 해석하려는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콘텐츠의 범람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은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깊이 있는 사유로 콘텐츠의 흐름을 바라보는 사람들이다.


깊이 있는 사유가 가능하려면,

지루함을 견디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모든 지루한 시간을 콘텐츠로만 채우면,

결국 우리는 콘텐츠에 잡아 먹히게 된다.


지루함을 스마트폰으로만 버티려고 하지 말자.


지루함을 견뎌보자.

지루함을 견디어 내고 텍스트도 읽어봐야 한다.

지루함을 견디어 내고 주변이 상황과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

지루함을 견디어 내고 창밖 풍경을 바라봐야 한다.

깊이 사유하고, 판단력을 기르자.


콘텐츠에 파묻히는 세상 속에서

무너지지 않는 방법은

지루함을 견디어 내는 일이다.




뇌에 공백과 여백을 허용하자.

잠시라도 뇌에 쉼을 허락하자.

멍 때리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

공백과 여백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 생각의 순간을 버텨내자.

지루함을 견딜 줄 알아야,

사유하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지루함을 견디며 글을 읽고,

지루함을 견디며 글을 쓴다.

나 또한 쉽지 않다.

그러나 잠시 스마트폰을 끄고,

다른 몰입을 가져야

내가 생명과 영혼을 찾은 느낌이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숏폼만 소비하는 일은

싸구려 도파민을 충족시키는 일이다.

정크 푸드를 먹는 행위와 같다.

배는 부르지만 찝찝하다.


지루함을 견디어 내면서

책을 읽고 생각하는 사람은

비싼 도파민과 엔도르핀을 충전시킬 수 있다.

양은 좀 적어 보일지라도

포만감이 오래가고,

행복감이 있다.


다음에는 배달의 시대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