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시대가 인간에게 앗아간 것들

편리함에 잠식되어 가는 인간

by 무해한

뭐든지 배달시킬 수 있다.

바야흐로 대배달의 시대다.

클릭 한 번이면 무엇이든 집 앞으로 배달시킬 수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배달음식은 주로 짜장면, 치킨, 피자 등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배달이 불가능한 음식이 거의 없다.

육회, 석회구이(굴), 샤브샤브, 월남쌈, 쌀국수, 대게찜, 뷔페 등

다양한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게 됐다.


배달음식은 현대인의 낙

배달음식은 '현대인의 낙'이 되었다.

퇴근 후, 배달음식을 시킨 후 가장 좋아하는 영상을 보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 되었다.

하루 종일 일한 사람이 음식을 만들며 또 노동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인들은 늘 일이 많으며, 피로하다.

하지만 배는 고프다.

그래서 오늘도 배달음식을 시킨다.


기분 나쁜 포만감

물론 나도 이 '배달음식의 낙'을 즐기고 있다.

몇 년간 학원을 운영하면서 밤과 낮이 바뀌었고,

퇴근하고 집에 오면 9시가 다 넘은 시간이었다.

9시, 10시에 요리할 기력이 없으니 거의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다.

하루 동안 힘들게 노동한 대가에 대해 보상을 바라는 듯이,

음식을 고르고 시켰다.

내 노동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먹는 걸로 충족시켰다.

노동 후, 또 노동하기가 싫으니 요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원래 요리를 좋아했으나, 요리 또한 일로 느껴졌다.

그래서 배달음식만으로 연명을 했다.

그런데 왜 밥을 먹었는데 기분이 나쁠까?

왜 밥을 먹었는데 만족감이 없고,

더 허기진 기분이 드는 걸까?


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편리한 세상에서 인간은 더 멍청해졌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집 앞으로 배달되는 음식.

버튼 한 번으로 '요리 노동'을 없앨 수 있다.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어렵지 않다.

고르고, 터치하기만 하면 된다.

돈이 오고 가는 계산과정도 간편하다.

얼굴이나 지문을 인식하면 5초 안에 결제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버튼을 누르는 행위'에 중독되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근데 어째서 인간은 더 멍청해지는 걸까?

우리는 이제 이 버튼 없이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과정 없는 식사, 결과만을 소비하는 우리

포만감은 음식의 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니다.

음식을 담아놓은 그릇,

음식의 향과 색깔,

음식을 먹는 장소의 분위기 등

우린 음식을 미각뿐만 아니라 시각과 촉각, 후각 등 오감을 이용해서 먹고 있다.


요리하는 과정은 포만감을 높인다.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음식의 상태를 보며 불의 세기를 조절하고,

조리하면서 조미료를 가감하고,

음식의 향을 맡는다.

이 과정은 우리에게 만족감을 준다.

음식을 만드는 과정은 길지만,

정성스럽게 요리할수록 우리의 오감은 깨어나고,

다섯 개 감각을 모두 사용해 음식을 즐기니 포만감은 크다.


그러나 바쁜 현대인에게는

요리를 하는 과정 또한 고통스럽다.

하루 종일 노동으로 지쳤는데, 또다시 일을 해야 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냉동음식, 간편 조리 음식을 먹거나 배달음식을 시킨다.

냉동음식, 간편 조리 음식은 정말 편하다.

하지만 먹고 나면 기분 나쁜 포만감을 느끼거나

혹은 더 허기져서 식사를 하고도 다른 간식을 또 먹게 된다.


우리는 이렇게 과정 없이 '결과만 소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배달음식뿐만 아니다.

우리는 매장에서 직접 상품을 들고 오지 않아도,

퇴근 후면 집 앞에서 상품을 만날 수 있다.

매장에 직접 가서, 상품을 운반하는 수고로움 없이도

우리는 마음에 드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런 소비가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결과만 소비하는 삶은 우리에게 무엇을 앗아갔나?

결과만 소비하는 삶은 우리를 더 허기지게 만든다.

우리의 기쁨을 사라지게 만든다.

이러한 맥락은 숏폼 콘텐츠에 중독된 양상과 비슷하다.

결과만 소비하는 삶이 우리에게 앗아간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과정에서 오는 성장과 기쁨을 누릴 수 없게 한다.

무언가를 만들거나 완성하는 과정은 당연히 힘들고 지루하고, 불편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지루하고 불편한 과정에서 성장하고 배울 수 있다.

새로운 사실을 터득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미역국을 끓이면서 간을 볼 때는

국간장으로 해야 할지 소금으로 해야 할지

부딪히면서 경험하면 그다음부터 미역국 맛은 달라진다.

맑은 미역국이 좋으면 소금으로,

진한 미역국이 좋으면 국간장으로.

내 취향에 맞춰 요리하는 법을 터득할 수 있다.

이렇게 경험하면서 느끼는 기쁨을 우리는 빼앗겼다.


둘째, 만족이 짧고, 허기가 더 길어진다.

과정이 생략되니 만족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과정에서 느꼈던 오감은 사라지고, 금세 허기지게 된다.

금세 허기진 당신은 다시 소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다시, 끊임없이 허기진다.


셋째, 타인의 노동에 대해 둔감해진다.

버튼 한 번만 누르면, 문 앞에 배달음식이 놓인다.

비대면 배달로 하면,

모르는 사람과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신용카드나 현금을 주고받지 않아도 된다.

이러한 편리함은 우리가 과정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엘리베이터 없는 6층 빌라까지 수고롭게 음식이나 생수를 옮겨준 고마움을 잃는다.

문 앞에 쌓인 배달음식과 택배는 당연하게 돼버린다.

누군가는 눈보라와 비바람을 맞으며 힘겹게 배달을 한다.

하지만 배달음식은 미끄러운 도로 위를 어떻게 달려서 배달이 왔는지 잊게 한다.

문만 열면 보이는 음식과 택배는 결과다.

우리는 그 결과만 보는 것에 당연해졌다.

어떻게 왔는지는 관심이 없고, 그저 돈을 냈으니 이 궂은 날씨에도 배달이 되는 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역시 돈을 내면 다 되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과연 이대로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수고로움을 모르며,

타인의 고통스러운 노동을 외면하고,

그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도 되는 걸까?


이 생각을 늘 하다가,

내 이러한 생각을 더 폭발시켜 준 그림책을 읽게 되었다.


그림책 <사라진 저녁>은 배달의 시대에

어떻게 인간이 더 무능해져가고 있는지,

타인의 수고로움을 어떻게 외면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늘 배달음식을 나르는 라이더들로 가득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는 플라스틱 용기가 쌓여간다.


하지만 어느 날, 아파트 주민들이 시킨 배달음식은 오지 않고

돼지 한 마리만 배달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돼지 한 마리를 어떻게 잡아서 먹을 것인지 몰랐다.


우리는 이렇게 편리함에 잠식되어

아이러니하게도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다.


결국


배달음식은 과정을 통해

느끼는 만족감을 앗아갔으며,

타인의 수고로움을 외면하게 했고,

인간을 더 무능하게 만들었다.


배달은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

그리고 앗아간 것들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생각한다.

의문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으며

궁금해하지도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