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부터 휴학까지의 방황기
진로 고민의 시작은 평범하게 고삼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이과생이었던 나는, 크게 세 가지 선택권이 있었다. 자연대, 공대, 의과/보건대. 19세의 나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자아성찰의 시간을 가져보았다. 우선 수학, 물리 머리는 아니다.(공대를 제외했다) 생물 화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연구자가 되고 싶지는 않다.(자연대를 제외했다) 그러다 보니 남은 보건대. 게다가 아버지의 엄청난 서포트("간호대 간다고 다 병원에서 간호하는 거 아니다. 병원 간호사 말고도 진로 많더라! 그리고 여자는 전문직이지.")가 더해지니, 간호대라는 선택지는 꽤 괜찮아 보였다. 그리하여 고삼 여고생은 큰 고민 없이 간호대로 진학하게 된다.
사실 마음 한 구석에 찝찝함이 있기는 했다. 간호학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전공이었고, 아버지는 병원 간호사 말고도 이런저런 길이 있다 하셨지만 별로 와 닿진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무사히 입시를 마치고 대학에 간다는 희열이 컸으므로, 찝찝함 따위 가볍게 무시하고 입학하게 된다.
부모님의 권유와 점수에 맞춰서 입학한 전형적인 대학생답게, 나는 내 전공 공부에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너무 학과 밖에서 돌아다녀서 당시 동기들 사이에서는 좀 유별난 애로 여겨졌다. 간호학과라면 다들 하는 학과 동아리는 들지도 않고, 중앙 동아리에, 총학생회 행사에 바쁘게 뛰어다녔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새내기의 호기심으로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닌 것이었으나, 나중에는 그럴듯한 직함도 달아보고 각종 학내 행사도 기획하며 다이내믹한 대학생활을 만들어 나갔다. 돌이켜보면 "간호학과가 왜 여기에서 이런 일을...?!" 같은 시선도 즐겼던 것 같다.
간호대 학생들은 보통 1학년에 각종 교양을 몰아 듣고, 2학년부터 전공 지옥이 시작된다. 우리 학교 또한 다르지 않았다. 특히 자비 없이 타이트한 시간표와 흥미 따윈 1도 없는 전공수업의 콜라보는 나를 미치게 했다. 화끈하게 학점을 포기해 버릴 배짱은 없고, 그렇다고 공부는 하기 싫어서 2학년 내내 울상으로 학교를 다녔었다. 그렇게 힘들게 학교를 다니던 중 2학년 2학기, 간호대 최대 행사인 촛불의식이 진행되었다.
"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 전문 간호직에 최선을 다할 것을 하느님과 여러분 앞에 선서합니다. " (나이팅게일 선서 中)
나이팅게일 선서를 하며 나도 작은 다짐을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긴 아닌 것 같다. 무조건 휴학해야지.'
휴학은 쉽지 않았다. 부모님이 생각보다 심하게 반대하셨기도 했고, 한평생 말 잘 듣는 범생이로 살았던 나도 휴학하면 뾰족한 수가 나온다는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3학년이 되었다간 큰 일 나겠다는 자가진단 끝에 어렵게 1년 휴학계를 내었다. 그리고 휴학 1년의 모토를 "간호학 관련된 거 빼고 다 해보자!"로 세웠다. 아빠가 추천한, 전문직이니까 평타는 치는, 미적지근 한 전공 말고, 나도 미친 듯 사랑할 수 있는 꿈다운 꿈을 찾고 싶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운명의 상대를 만나듯, 내 운명의 꿈을 만나고, 세상이 뭐라 하든 상관 않고 미친 듯이 그 꿈을 좇다 결국 보란 듯이 성공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게 인생의 목표고, 청춘의 패기라고 생각했다.
휴학 일 년간 정말 많이 돌아다녔다. 영어학원에 꽤 오랜 시간을 쏟았고, 각종 스터디, 동아리에 참석하며 학교 밖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했다.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친 듯 사랑할 만한 꿈을 찾는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휴학 1년이 끝날 때 쯤에야 알았다. 꿈은 타임 리밋을 걸어두고 힘들게 벼락치기하듯 찾는 것이 아니었다. 꿈은 사는 평생 끊임없이 탐색해야 하는 것이었고, 평생도 때로는 모자란 것이었다.
겨울은 끝나가고 있었고 복학이 다가왔다. 어차피 딱히 하고 싶은 것이 없다면, 학교 돌아가서 면허는 따는 것도 방법이겠다. 라며 스스로 타협했다. 이렇게 거창하게 시작했던 휴학도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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