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부터 퇴사까지
학교에 얌전히 돌아온 뒤, 다시 간호대 생활이 시작되었다. 3, 4학년 학사일정은 엄청난 수업량과 그에 못지않은 실습일정을 병행해야 했는데, 마치 학생들이 딴 생각 할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내 꿈을 찾겠다며 휴학했다가 돌아온 복학생 신분이었던지라 전처럼 "이건 내 길이 아니야!"라고 울부짖지는 않았으니 나름 휴학의 의미가 깊었다고 할 수 있겠다. 본격적으로 실습을 하면서는 간호학이라는 공부의 의미를 찾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간호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마인드로 학교 수업은 그럭저럭 들을 수 있었지만, 취업이 다가오자 굉장히 난감해졌다. 누군들 '귀사의 발전과 자아 성장을 위해' 입사를 하겠냐마는, 어쨌든 간호사라는 직업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사실 싫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하기 싫다는 것은) 꽤나 고민스러운 일이었다. 앞으로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3차 병원을 가기는 해야 하겠는데, 도저히 자기소개서에 '저는 나이팅게일이 되는 것이 제 평생의 소원이었으며 간호 본부장이 될 때까지 이 병원에 뼈를 묻겠습니다.'라는 말이 나오질 않더라.
그래서 원서도 겨우겨우 2군데만 썼다. 일원동에 있는 SMC와 자대 병원. S병원에서는 최종까지 올라갔으나, 그다지 간절하지 않았던 나의 내면을 꿰뚫어 본 것인지 임원 면접에서 탈락했고, 결국 자대 병원에 최종 합격하게 되어 어찌어찌 간호사로서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부터 졸업까지의 행보를 비추어보아, 애초에 나는 내가 임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래서 노력은 하되, 자살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때려치자 다짐하고 입사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현실적인 마인드셋이 나를 버티게 했다. 환자가 나를 개차반처럼 대해도, 선배 간호사가 활활 태워도, 교수가 나에게 뜬금없이 소리를 질러도, 대부분 일을 시작하기 전 예상했던 일이었다. 뭐, 이런 상황을 예견했다고 해서 마음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아직도 이때 썼던 일기를 보면 펑펑 울고 만다.
나는 병원에 아슬아슬 매달린 채, 끊임없이 잘 하고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었다.('이렇게 힘들면 그만두는 게 맞지 않을까?') 대체 언제쯤이면 할 만 해지는 거냐고 학교 선배들에게 따졌더니 1년을 버티면 전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래서 기준을 1년으로 잡았다. 딱 1년만 참아보고 그 이후 이 직업에 대해 평가하자. 모든 일에는 적응 기간이 필요하니까. 지금 힘든 것이 정말 간호사라는 직업에서 오는 어려움인지, 아니면 내가 아직 업무적으로 미숙해서 오는 어려움인지 판단은 1년 후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아등바등 버텨낸 1년 하고도 몇 개월 후, 깔끔히 퇴사를 선언했다. 퇴사 면담을 하며 구구절절, 구질구질한 사유가 어지러이 더해졌지만, 결국 핵심은 같았다.
나는 간호사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학생 때부터 끊임없이 고민했던, "간호사가 과연 내 길인지, 아닌지"라는 고민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간호사는 아니다. 적어도 병원에서 직접 간호 제공자는 못해먹겠다.
A를 할지, 말 지는 그나마 쉽다. 하는 것, 아니면 안 하는 것이니까. 대학 입학 후부터 시작되었던 몇 년의 고민을 뒤로하고 드디어 나는 할지 말지 중 '안 하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쉽지 않았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한 나를 한 번 토닥여주었다. 하지만 진짜 진로 고민은 이제 시작이다. 심지어 이제는 OX퀴즈가 아니다. 객관식도 주관식도 아니고 심지어 서술형이다.
간호사 때려치면, 다음엔 뭐 할 건데?
나도 스스로 많이 물어봤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지겹게 듣는 질문이다. 나의 답변은 늘 같다.
아무거나,
간호사만 빼고!
* 인스타그램 계정 @writer.mo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