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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Nov 03. 2018

물리적인 공간 말고, 마음 붙일 곳

셰어하우스에서 방부터 옷걸이까지 빌려 산다는 것.



나는 셰어하우스에 살고 있다.


오래간만에 여유가 있는 저녁시간이라, 미뤄뒀던 빨래를 했다. 빨래를 널다, 전신 거울이 생각났다. 내 방에는 전신 거울이 없다. 그래서 나는 내 방의 유일한, 그리고 반 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거울에 옷매무새를 비춰보려 아침마다 그야말로 용을 쓰고 있었다. 내 방 말고 다른 방에는 모두 전신 거울이 비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혹시 다른 방에 있는 전신 거울을 하나쯤 빼서 거실에 놓으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마침 새로운 세입자도 내일 들어온다고 하니, 생각난 김에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나는 집주인에게 카톡을 보냈다.



안녕하세요. 여쭤볼 게 있어서 카톡 드려요. 제 방에 전신 거울이 없어서 불편한데, 혹시 거실에 하나 놔주실 수 있을까요? 아침마다 작은 거울로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서 확인하기가 어렵네요ㅠㅠ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적는다고 꽤 공을 들인 메시지였다. 이 정도면 부담스럽지 않게 잘 적었다 생각하며 전송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삼십초도 되지 않아 돌아온 답장에는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죄송한데 전신 거울이 필요하시면 방에 두시고 사용하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직접 구입하셔야 하구요^^





있는 거울, 내어 놓고 같이 쓰면 안 되냐는 말이었는데 이렇게 단 칼에 거절당하니 얼굴이 달아올랐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어 화도 좀 났다. 답장을 좀 띠껍게 보내면 풀릴까 해서 채팅창에 여러 가지 버전의 답변을 썼다, 지웠 하다가 그만두었다. 하려면 빨리 보냈어야 했는데, 썼다 지웠다 하는 잠깐 동안 너무 많은 생각을 해 버린 탓이었다. 내가 그렇지, 얼른 잊어버리자. 하며 핸드폰도 멀리 치워버리고 침대에 누웠는데 웃기게도 이제는 코 끝이 찡- 해져 온다.


월 40만원에 관리비 만 원, 공과금은 따로 내고 있는 내 방. 지금 '내 방'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 공간을 다시 찬찬히 둘러보았다. 옷가지들과 화장품, 책 몇 권, 노트북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빌린 물건이다. 침대, 서랍장, 테이블, 옷걸이, 그리고 '내 방'까지, 40만원 안에는 내가 사용하는 방을 포함한 모든 물건의 대여비가 함께 책정되어 있었다. 그러니 내가 전신 거울이 필요했다면, 전신 거울이 있는 방을 빌렸어야 했다. 같은 집이라도 각각의 방의 가격이 다른 이유는 방에 있는 각각 다른 옵션들의 대여비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집주인의 말이 맞다. 나는 다른 방에 있는 전신 거울을 공유하자고 할 수도, 하나 더 사달라고 할 권리도 없다.





애초에 셰어하우스를 살기로 결정한 이유는 '모든 것을 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난 보증금이 없었고, 집은 빨리 나와야 했고, 고시원은 죽어도 못 사는 체질인 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정규직을 보장할 수 없는 인턴직이었다. 트렁크 하나만 가지고 빠르게 들어갈 집을 찾는 내게, 옷걸이와 침구까지 제공하는 이 곳은 내게 분명 최선의 조건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모든 것을 한 번에 빌릴 수 있어 좋다며 들어왔는데, 언제고 쉽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제 이 곳의 속성들은 날 서럽고, 우울하게 한다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병원에 다니던 시절, 병원 앞에서 자취를 했다. 월세방이긴 했지만 그때가 인생 처음으로 완벽히 독립적인 공간을 사용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내가 얼마나 공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나는 내 자취방이 너무 소중해서 조명등을 사서 침대 곁에 두고, 폭신한 러그를 사다 깔고, 한쪽 벽면을 여행 사진들로 장식했다.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주말 내내 집에 있기도, 굳이 친구들을 초대해 와인 파티를 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렇게 사랑했던 공간을 퇴사와 함께 정리한 날엔나의 에센스 일부가 함께 정리되는 기분을 느꼈다.



그 시절이 그리웠던 나는, 당장 물리적인 공간만 확보되면 병원 앞에 있었던 "내 공간"이 재현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여한 물건이 가득한 이 곳은 결국 임시거처가 될 수밖에 없다. 내가 필요한 것은 "마음 붙일 공간"이었지 물리적인 독립적 공간이 아니었다. 대여하지 않은 온전한 내 물건들, 내 것 들으로 채워진 마음 붙일 공간이 간절하다. 또, 마음만 먹으면 이 공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과, 이 믿음에서 오는 안정감이 너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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