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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Feb 28. 2020

팟캐스트 프러포즈를 받았다.

나는 그 자리에서 "YES!"를 외쳤다.


작년 늦가을이었다. 친구에게 '팟캐스트 프러포즈'를 받고, 그 자리에서 "YES!"를 외쳤던 것이.



남들은 항상 시작이 가장 어렵다던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시작이 제일 쉽다. 그래서 팟캐스트를 시작하기로 결심하는 것도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었다. 글도 좋지만 말로 속 시원하게 떠들어대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친구가 프러포즈했기 때문에' 시작할 수 있었다.


이 친구에게 팟캐스트 프러포즈를 받고 승낙할 때, 그와 나는 겨우 두 번째 만나는 사이였다. 그래도 보통의 두 번째 만남보다 깊이가 깊었다고 확신한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꽤 읽었던 사이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우리는 브런치를 통해서 만났다!)



우리는 공통점이 많았다. 우린 둘 다 간호사 면허가 있고, 병원을 다녔다가 퇴사했고, 병원을 나온 뒤에는 굳이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발버둥 치며 살아가는 중이었다. 이런 공통점은 영화 취향이 비슷하다거나 하는 것과는 달리 정말 이례적인 것이어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관심사도, 가치관도 비슷한 데다 이 친구도 추진력 하나는 끝내주어서, 겨우 두 번 만난 사이에 팟캐스트를 하기로 정해버렸다.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히 팟캐스트 주제는 '간호사 면허가 있지만, 병원 밖에서 일하고 있는 간호사의 이야기'가 되었다. 우리를 가장 단단하게 묶어주는 주제이자, 가장 관심 있 이야기였으므로 이것보다 적절한 주제가 없었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팟캐스트는 서너 달 뒤인 20년 초에 오픈하기로 했다. 여유가 있다고 생각해 천천히 준비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했다. 막상 하려고 보니 할게 얼마나 많은지. 게다가 우린 욕심도 많아서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것이 없었다.


팟캐스트를 위해서 우리는 팟캐스트의 주제와 목표를 정했다. 기획안을 쓰고 에피소드별 적정 시간이나 진행 방식, 업로드 일정을 정했다. 팟캐스트 업로드 채널을 정하고 계정을 개설했다. 홍보를 위한 인스타그램도 놓치지 않았다. 에피소드 별 키워드를 뽑고, 어떤 내용을 담을지 회의했다. 대본을 쓰고, 고쳤다. 녹음을 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폐기하고 다시 녹음했다. 오디오 편집을 배우고, 편집했다.


프롤로그 한 편만들고 보니 꼬박 3개월이 흘렀다.   




어제 3화 녹음을 마쳤다. 팟캐스트는 3월 초중순에 정식 릴리즈 될 예정이다. 녹음몇 번 해 보면 금방 자신감이 붙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속도가 늦다. 녹음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꼭 못 해서 아쉬웠던 말,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이 떠오른다.


초보 주제에 욕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대본도 기깔나게 잘 쓰고 싶고, 말도 아나운서처럼 조리 있게 하고 싶고, 콘텐츠에 엄청난 의미도 담고 싶은 욕심은 버린다고 버려지는 게 아니다. 가끔 조바심에 짜증이 올라올 때면, 나는 내가 방송 작가도 아니고, 아나운서도 아니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도 아니라는 것을 상기하려 애쓴다.


기억하자, 팟캐스트는 내가 즐겁자고 시작한 일이다.


잘하려고 애쓰다 보면, 재미로 시작한 것도 어느 순간 일로 느껴진다. 팟캐스트를 만들고 운영하는 모든 것이 '일'로 느껴질 때면, 나는 팟캐스트 프러포즈를 받았던 그때를 떠올린다. 재미있을 것 같아서 앞 뒤 안 가리고 "YES!"라고 대답했던 그 순간.



나는 "YES!"를 한 번 외치고, 다시 편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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