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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미니마니모 Jan 23. 2020

두근두근 첫 녹음

몸상태가 메롱이라 아쉬웠지만 즐거웠던 시간

 저번 주부터 이어진 고된 일정에 몸이 드디어 파업을 선언했습니다. 제 몸은 도통 저의 열정을 따라가기에는 부족한 몸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피곤하게 살아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이제는 그게 아니라 얘가 약하다, 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어찌되었건 조금만 무리해도, 사실 무리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금세 아파버리는 몸 때문에 참 힘듭니다. 어김없이 첫 녹음을 하는 날도 그랬어요.


 감기 몸살에 위염과 장염이 사이좋게 온 듯한 어지러운 상태로 회사는 과감하게 못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팟캐스트 첫 녹음은 미룰 수가 없었어요. 필사적으로 나온 늦은 오후, 몸이 안 좋으니 괜히 더 으슬으슬 추운 날씨를 견디며 홍대로 갔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해 힘이 나지 않아서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죽집을 찾았지만 버젓이 열려 있음에도 장사를 안 한다고 했어요. 오늘은 일진이 사납구나, 싶었지만 마냥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죠. 망연자실해서 친구에게 전화를 거니 그럼 우리집으로 잠깐 올래? 했습니다. 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어요. 서울에 꽤 오래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서울이 본가인 친구가 갑작스럽게 우리집에 올 거냐고 묻는 게 왜인지 몰라도 굉장히 낯설었거든요. 제 친구들이 유독 그랬던 것인지 몰라도 다들 집에 부모님이 계시거나 정리가 안 돼 있는 등등의 이유로 친구들의 본가는 많이 가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걸었어요. 홍대입구에서 본다고만 생각해서인지 연남동이 펼쳐지니 조금은 뭉클하고 반가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왜 뭉클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항상 그리워하던 동네를 정말 집에 가는 기분으로 만나서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름답고 그리운 동네를 걸으며 도착한 친구 집은 소담하게 잘 정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거의 처들어가다시피한 저의 등장에 어머니께서 집을 치우시느라 난리라고 했었는데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친구의 자취방에 갔을 때에도 참 깔끔하고 예쁘게 꾸며졌다 싶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유전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친구 어머니께 인사드리고 언제나 기분 좋은 칭찬도 잔뜩 들었어요. 비록 편의점에서 산 단호박죽 밖에 넘길 수 없는 상태였지만, 따듯한 분위기의 식탁에서 달달하게 속을 꽉 채웠습니다.




 

 

 친구집에서 정말 딱 2분 거리였던 단팟 스튜디오, 당황스러울 정도로 가까웠어요. 겨우 2분이었지만 저에게는 단팟 스튜디오에 가는 길이 문제였습니다. 정말이지 못 먹을 때는 왜 무얼 봐도 다 맛있어 보일까요? 무얼 봐도 좋아보이고 무얼 봐도 부럽고 탐이 났던 장소와 시간.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카페, 와인 바가 살갑게 모여있으면서도 어떤 골목에는 고소한 냄새의 통닭집이 또 어떤 골목에는 군침 돌게 하는 곱창과 장어집이 있는 연남동의 한복판. 당장의 속이 좋지 않은 저에게는 참 괴로운 구간이었어요. 고로케도, 밀크티도, 빵도 그날따라 왜 이리도 맛있어 보였는지.

 자꾸만 돌아가려고 하는 시선을 겨우 붙잡고 단팟 스튜디오에 도착했습니다.

 단팟 스튜디오는 저희 나름대로 많이 조사를 하고 알아봐서 선정한 곳이에요. 당장 값비싼 마이크를 사기에는 앞으로의 저희가 어떻게 될지 몰라 그렇게 투자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많이들 사용하시는 팟캐스트를 위한 스튜디오를 검색하다가 단팟 스튜디오로 오게 됐습니다. 홍대점에 대한 평이 좋아서 홍대점을 선택했고요. 지하라는 점에 한 번 놀랐지만 내부가 생각보다 깔끔해서 괜찮았어요. 잠깐 10분 정도 대기한 후 배정된 저희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일단 마이크가 정말 엄청 컸어요. 유명 연예인들의 머리 크기가 이 정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크기의, 커다랗고 검은 물체가 제 앞에 있으니 괜히 긴장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친구도 덩달아 긴장했는지 둘다 목소리가 속된 말로 째내는 것 같았어요. 시범적으로 녹음을 해보다가 너무 재미없고 정적인 컨텐츠가 될 것 같아서 긴장을 내려놓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한동안 하지 않았던, 오히려 간호사 친구들을 만났을 때보다 더 간호사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고 고민하게 하는 '시간: 시작은 간호사' 팟캐스트. 첫 녹음날 역시도 간호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더 생각하게 되는 날이었어요. 우리의 컨텐츠가 누군가에게 와닿을지 어떻게 닿을지 전혀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프다면서도 시덥잖은 말을 자꾸만 꺼내는 제 입을 누가 좀 말려주었으면, 했지요. 마침 친구가 고프로 카메라도 챙겨온 터라 목소리 가다듬으랴 내용 신경쓰랴 카메라도 의식하랴, 이모저모 혼자서만 바빴네요:)


 


 침을 삼킬 때나 작은 잔기침에도 잔뜩 얼어붙어 마이크에서 몸을 떼었다 붙였다 하기를 여러 번, 분명 양쪽 다에게 낯선 공간일텐데도 서로의 모습이 금세 닮아있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약간은 답답하고 환기가 잘 되지 않는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그만큼 오롯이 둘만이 있는 느낌이었어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우리의 이야기와 웃음소리는 어쩌면 팟캐스트를 통해 들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저 지하의 작은 방에 들어와 있었을 뿐인데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직 이어폰 속 우리의 숨소리, 목소리만 들리는 곳. 팟캐스트라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시작해서, 이제는 기획 정도까지만 해봤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이지만, 새로운 경험들이 찾아오는 것에 신기함을 느낍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얼마나 더 많은 새롭고 재미있는 일들이 벌어질까요?
그게 무엇이든 도전하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겠죠.


 

 시작을 했다면 끝을 봐야한다는 생각으로 무엇이든 시작을 하기 전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는 저예요. 고민 내용을 하도 많은 분들께 말하고 다니는 터라 그만큼 비판도 많이 받기는 하지만. 요즘 저와 가까운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합니다. 너는 뭇 사람들과 고민의 총량은 비슷하지만 그 고민을 좀 더 빠르고 깊게 하는 것 같다고. 끊임없이 미래와 고민에 대해 생각하고 해결하려고 애쓰다보니 고민의 시간이 다른 이들에게는 빠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보니 섣부른 게 아니냐 급하게 하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요. 저 스스로는 급하고 빠르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어서 저로서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말들이에요. 어찌되었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그것으로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시작한 팟캐스트가 좋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줄 거라고 믿어요:D




 저와 친구(브런치 작가명: 모니)가 시작하는 팟캐스트의 이름은 '시간: 시작은 간호사'입니다. 팟빵, 아이폰 팟캐스트, 유투브를 통해 청취하실 수 있어요. 비하인드 스토리 및 공지는 인스타그램과 이곳 브런치의 '시작은 간호사 팟캐스트 매거진'을 통해 알려 드릴 예정입니다. 머지 않아 공개 될 저희의 첫 이야기, 많이 들어주시길 부탁드릴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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