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 Feb 25. 2020

코로나 바이러스를 태운 9호선


1. 

요즘은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9호선에 약간의 인간미(?)가 돈다. 


출근시간에 타는 9호선을 생각하면 조금 무섭다. 엄청나게 빽빽한 사람들, 하지만 사람 수에 어울리지 않는 고요함, 거기에 더해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사람들의 몸부림까지. 완벽한 삼박자의 조화에 소름이 돋는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비인간적인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그 시간만은 약간 정신을 빼놓는 것을 선택한다.


지난주, 그날도 아침의 9호선은 빽빽하고 동시에 조용했다. 익숙한 그 분위기를 깨고 누군가 기침소리를 냈다. 소리가 꽤나 명확한 것으로 보아, 보지 않아도 마스크를 안 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순간, 주변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치치 않고, 이어서 서너 번 큰기침이 이어지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기침의 진원에게서 필사적으로 피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해서, 사람들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렇지, 이 사람들도 잠시 영혼을 빼놓은 것일 뿐이었다. 이 시국에 마스크도 안 쓰고 기침하는 것은 짜증스러웠지만, 사람들의 몸부림이 인간적으로 느껴져 조금은 반가웠다.




2. 

나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 편이다. 두려운 게 있다면 내가 9호선으로 출퇴근한다는 사실이다. 익명의 사람과 세상 가까이 밀착해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도 두렵고, 내가 감염된 것을 모르고 9호선으로 출퇴근한다면 나올 기사도 두렵다. 기사가 나온다면, 제목은 아마 이렇지 않을까. 

"N차 감염자, 증상 발현 후 9호선 출퇴근… 최소 3758명 접촉, 지역사회 감염 비상"


그러다 생각만 하던 그 일이 일어났다. 퇴근길에 9호선을 이용한 확진자가 나왔다. 김포시 거주자 분인데, 증상 발현 이후 9호선을 타고 퇴근했다고 한다. 뒤늦게 살펴보니 내 퇴근길 동선과 겹쳐지는 부분이 꽤 있었다. 이 사람이 나와 같은 지하철 같은 칸, 바로 옆에 어깨를 부비고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서늘해졌다.


그리고, 오늘은 팀장님이 선별 진료소를 방문했다. 2월 1일 이후 은평 성모병원을 방문했고, 증상이 있는 사람은 선별 진료소를 방문하라는 안내 때문이었다. 팀장님께서는 얼마 전 회의 일정으로 은평 성모를 다녀오셨었던 이력이 있으셨고, 나는 팀장님의 끊이지 않던 기침을 생각하며 한 번 더 마음이 서늘해졌다.(사실 그 기침은 병원을 방문하기 한참 전부터 있어왔는데도) 팀장님은 선별 진료소에서 다행히 검사 대상자는 아니라는 확인을 받고 귀가했다.




3.

퇴근시간 9호선을 탄 확진자, 선별 진료소를 방문한 내 옆 자리 팀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별생각 없이 살던 마음에 약간 동요가 온다. 생각보다 바이러스가 가까이 다가온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 서울에서는 확진자가 많지 않아 마스크 끼고 잘만 돌아다녔는데, 드디어 경각심이 드는 걸까.


경각심이 드는 것과 별개로, 나는 내일도 9호선을 탄다. 

재택근무는 없고, 코로나 바이러스보다는 돈이 더 무서우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