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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May 27. 2019

결론 없는 글 쓰기

일간 이슬아 찬양, 같잖은 강박증과 말라버린 에세이 감성에 대해서

드디어! 일간 이슬아를 구독했다.


일간 이슬아의 글을 받아보고 있다. 일간 이슬아는 프리랜서 작가 이슬아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한 편의 글을 메일로 보내주는 메일링 서비스다. 구독료는 월에 만 원. 


워낙 독특한 서비스 구조로 유명세를 탄 터라, 작년부터 구독을 벼르고는 있었다. 벼르고는 있었는데... 번번이 구독 시기를 놓쳤다. 그러다 얼마 전, 일간 이슬아가 생각 난 어느 날과 작가님이 구독자를 모집하는 기간이 운명처럼 겹쳤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5월의 셋째 주 월요일 자정, 일간 이슬아의 첫 글을 받아볼 수 있었다. 


첫 메일은 다음과 같은 제목으로 메일함에 도착했다. : [일간 이슬아 / 이야기] 2019.05.13. 月 : 자이언트 우먼

가면 갈수록 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돌아보니 그는 내게 엉덩이가 강조되는 자세의 운동을 특히 자주 시켰다. 체형상 어떤 자세를 해도 엉덩이가 강조되니까 기분 탓일 수도 있다. 기분 탓인지 아닌지를 돌아보는 일은 익숙하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내가 마음만 고쳐먹으면 문제가 아니다. 명확한 불쾌함은 드물다. 그보다 잦은 건 애매한 불쾌감이다. 나는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면서까지 불쾌의 정도를 살피는 것이 몹시 번거롭게 느껴졌다. 그래서 구트와의 PT는 연장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운동을 가르쳐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건강하세요. 인사를 하고 구트와 작별했다. 그곳은 집에서 첫 번째로 가까운 헬스장이었다. 


이슬아 작가님의 글은 여러 편 읽어봤기 퀄리티에 대한 믿음은 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문장에서 모국어의 까슬함이 느껴졌다. 특히 마음의 든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명확한 불쾌함은 드물다. 그보다 잦은 건 애매한 불쾌감이다. 나는 돈을 내고 운동을 배우면서까지 불쾌의 정도를 살피는 것이 몹시 번거롭게 느껴졌다." 익숙한 단어들이 너무나 적절하게 배치되어, 문장의 감칠맛이 짜릿했다. 


나는 고작 글 한 편을 받아보고 바로 나의 글쓰기 동지들에게 달려가 호들갑을 떨었다. 제가 이슬아 작가님의 글을 드디어 구독했는데요, 문장이 얼마나 감칠맛 나던지! 어쩌고저쩌고. 다행히 나의 글쓰기 동지들은 글을 쓰러 모인 착한 사람들이어서 나의 호들갑을 잘 들어주었다. 거기에서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나는 호들갑을 떨다 못해 이렇게 말했다. "다음 주 주제는 결론 없는 글쓰기로 해요! 이슬아 작가님처럼!" 



결론 없는 글을 써보자


'결론 없는 글 쓰기'는 기-승-전-결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에세이를 두고 한 말이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정말 순수한 일상 에세이를 쓴 것이 오래되어 한 제안이었다. 사실, 브런치에서 연재하는 글의 성격 때문인지 나는 언젠가부터 글의 짜임새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직 과정과 그 이후 이야기를 적다 보면 현실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 집착이 심해져 가끔은 글을 시작하기조차 버거운 때가 생기기도 했다. 글 한 편을 쓰는데 시간이 점점 더 오래 걸렸고, 원하는 퀄리티도 비현실적으로 높아졌다. 최악은, '결'에서 뭔가 임팩트를 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이슬아 작가님의 까슬한 문장을 만나고 저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나의 에세이 욕구가 스멀스멀 피어났다. 작가님의 글에는 특별한 갈등도, 결론도 없었다. 하지만 확실히 재밌었다. 그래, 글에 꼭 기승전결이 확실하고, 아름다운 결론이 있을 필욘 없는 거였다. 나는 일간 이슬아의 문장 하나하나 꼭꼭 씹어 읽으며 생각했다. 나도 이런 글 좋아하는데! 깔끔한 동시에 감칠맛 나는 문장들! 쉽게 읽히면서도 묵직한 글!



그래서 이 글을 썼습니다.


'다음 주는 결론이 없는 글을 씁시다!'라고 먼저 선동질했으니, 수습을 해야 했다. '일간 이슬아'같은 에세이를 써야지, 각을 잡고 앉았는데 생각보다 더 어려웠다. 글감을 정하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본디 에세이는 일상의 한 순간에서 길어 올리는 것인데, 에세이 소재로 쓸 만한 촉촉한 글감이 나오질 않았다. 벌써 습관이 굳어진 것일까. 뭘 생각해도 자연스럽게 글의 결론을 먼저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시간만 잔뜩 낭비하고, 나는 결국 적당한 에세이 소재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이 글을 썼다. 일간 이슬아 찬양, 같잖은 강박증과 말라버린 에세이 감성에 대해서. 취지에 맞게 이번 글은 힘 빼고, 개요 없이 손 가는 대로 적었다. 오랜만에 짜임새 있는 글에 대한 강박을 버리니 확실히 글이 훨씬 쉽게 쓰여지는 것이 느껴진다. 다른 글에 비해서는 조금 완성도가 떨어지더라도, 뭐 어떤가. 어차피 그 글도 완벽한 글이 아닌데.


좀 더 쉽게, 즐겁게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글쓰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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