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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Mar 01. 2019

"해방촌 셰어하우스"에서 반년 살고 나온 후기

"나 해방촌에서 살아봤어!" 할 이야깃거리는 만들고 떠난다


반년간 터를 잡고 살았던 해방촌 셰어하우스를 떠난다. 넓은 서울 중 굳이 해방촌에 터를 잡은 이유는 단순했다. 힙한 곳에서 술 많이 마시고, 더 놀고 싶어서. 단출한 이삿짐을 싸면서 생각한다.


그래서, 목표는 달성이 되었나?


남산 아래에서 내려다보는 서울 풍경


반은 맞고, 반은 아니다. 맛집은 그래도 돌아다닌 것 같은데, 술을 많이 못 마신 게 못내 아쉽다.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더 열심히 유흥을 즐겼을 텐데. 야심 차게 준비한 해방촌 술집 리스트가 아까울 따름이다.(언젠간 꼭 가리라) 특히, 애정 하는 LP 바를 자주 못 간 것이 가슴에 아린다. 거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웠다마는, 가게가 작아 혼자 가기엔 뻘쭘했고, 동행과 함께 가는 날은 꼭 가게가 만석이라 몇 번 못 갔다. 그때 그냥 혼자서 갈 걸.


LP 바는 잘 못 갔지만 그래도  나의 인생 피자, 보니스 피자는 원할 때 언제든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내가 살았던 셰어하우스는 보니스 피자와 걸어서 5분, 뛰어서 2분 내외인 '보세권'이었다. 가끔 피자가 먹고 싶은 날, 보니스 피자 앞의 긴 줄을 가로질러 유유히 테이크 아웃하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간지 나던지.

나의 인생 피자인 보니스 피자 (페퍼로니, 하와이안 하프 앤 하프)


셰어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있던 반년 동안 특히나 사람이 자주 들고 났다.

하나, 이태원 유명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매니저(놀러 가면 서비스 많이 줌),

둘, 해방촌에 모르는 사람 없는 해방촌 고인물(해방촌 거리 지나다니면 아는 사람 꼭 한 두 명씩 만남),

셋, 한국에 한 달 동안 여행 온 BTS팬(미국인, 나보다 케이팝 더 잘 앎)등등. 

예상치 못한 때, 예상치 못한 사람들을 만났다. 잠시 동안이었지만 같은 집에 사는 '식구'인 우리의 관계는 좀 더 특별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타인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을 좋아한다. 집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에서 전혀 접점이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셰어하우스에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도 적어보고 싶다. '해방촌'과 '셰어하우스'의 접점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르긴 다르다.

삼겹살 다 먹은 볶음밥에 김을 넣어먹던 Mena. 너 미국인 맞니?


남의 집 한 칸을 빌려 사는 삶에는 어쩔 수 없이 구질구질한 순간들이 닥친다. 


집주인은 한 달에 두세 번 들러 화장실을 포함한 집 청소를 해줬다. 뭐, 감사한 일이다. 하우스메이트들이 당번을 정해 화장실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를 하는 것이 보통의 셰어하우스 문화이니까. 문제는 집주인이 내 방에 들어오고, 심지어 물건을 건드린다는 거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그러다 어느 날, 퇴근 후 돌아온 방의 풍경이 종종 달라졌음을 느꼈다. 뜬금없이 창문이 열려있다거나, 건조대의 빨래가 걷혀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식이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기분이 굉장히 더러웠다. 그렇다고 컴플레인을 하지는 못했다. 물건이 없어진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이 한 행동이 무슨 의도였는지 짐작이 가니까. 무엇보다, 나는 이런 일에 예민하게 굴 위치가 아니었으니까.


셰어하우스를 떠나기 이틀 전. 평소처럼 퇴근하고 내 방문을 열었는데, 낯선 책걸상이 날 반겼다. 책걸상에게는 초면에 미안하지만, 나는 책상과 의자를 보고 굉장히 화가 났다(개 빡쳤다). 미리 말이라도 해 주면 안 되나? 아무리 곧 떠날 사람이라지만 아직은 '내 방'인데, 너무한다 싶다. 더 화가 나는 건, 그동안 내 방에는 책상이 없었다는 거다. 나는 책상 없는 방에서 사느라 반년 동안 너덜거리는 접이식 상을 거실에서 가져다 썼는데,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이제야 책걸상을 들여온다니. 아니, 내가 나가기 이틀 전에 들여놓는 꼴이라니. 이건 농락에 가깝다.


물론, 집주인에게 말은 하지 않았다. 보증금을 곱게 받아내는 일이 내 분노보다 중요하니까.


해방촌 골목길


지난 1년 동안 거처를 여섯 번 옮겼다. 짐을 싸고, 푸는 게 지겨워 헤아려본 건데 횟수가 솔찬하다. 내 의지로 옮겨다닌 것이니 할 말은 없지만 당분간은 정착하며 살고 싶다.


해방촌 주민으로 살았었던 반년을 다시 돌이켜본다. 항상 좋은 순간만 있지는 않았다만, 후회는 없다. 살고 싶어서 살았고, 옮기고 싶어서 옮기는 거니까. 적어도 "나 해방촌에서 살아봤어!"라고 운을 뗄 수 있는 재밌는 에피소드 몇 가지는 건지고 떠나는 거니까.


언제 어디서나 남산타워를 볼 수 있다는 건 해방촌 주민의 특권이다




셰어하우스에 사는 구질구질함은 '물리적인 공간 말고, 마음 붙일 곳' 에서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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