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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니 Jan 13. 2019

눈물의 수위

눈물이 발끝에서부터 차올라 가슴께에서 넘실댄다. 눈물은 걸을 때마다 발걸음에 맞추어 파도처럼 철렁거린다. 


철썩. 철썩. 



보통은 가슴께를 마지노선으로 눈물의 수위가 더 높아지지 않게 관리하지만, 잠시만 방심하면 눈물은 목 끝까지 차올라 목젖을 툭, 툭 건드린다. 눈물이 목젖께에서 일렁거린다는 건 위험 신호다. 눈물의 수위가 너무 높아져 흘러넘치지 못하도록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요즘 우울해서 컨디션이 안 좋아요.”


요즘 PT를 받고 있는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하라는 대로 잘 따라오던 모범 회원이 집중을 하지 못한다 걱정하기에 의무적으로 한 대답이었다. 더 이상의 이야기를 하기 싫어 최소한의 단어만 사용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운동하는 내게 트레이너가 되물었다. 끊임없이.

 

왜 우울한데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예요? 저는 스트레스 풀 때 샌드백을 쳐요. 회원님도 한 번 해볼래요? 그런데 운동할 때 우울하면 근육도 안 늘고 체지방도 잘 안 빠지는데... 우울해서 어떡하지. 잠은 좀 잘 자요? 회원님, 그래서 왜 우울한데요? 얘기를 해야 풀리지. 왜 우울한데요? 왜 우울한데요? 왜 우울한데요? 왜 우울한데요? 왜 우울한데요? 왜 우울한데요? 



말하기 싫어요.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요. 운동하면서 한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가벼운 그런 것들이 아니라고요. 생각도 하기 싫으니까 자꾸 물어보지 마세요. 선생님이 자꾸 물어보니까 지금 눈물이 목젖께를 넘어가려 하잖아요. 자꾸 우울에 대해 생각하게 하지 마세요. 한 번만 더 ‘우울’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간신히 막아놓은 눈물 둑이 기어이 터져 버릴 것 같단 말이죠. 그러니 그만 좀 물어보세요. 말하기 싫어요. 말하기 싫어요. 말하기 싫어요. 말하기 싫어요. 말하기 싫어요. 말하기 싫어요. 



툭.


트레이너가 자꾸 들쑤시는 통에, 결국 수위 조절에 실패했다. 왈칵, 짜증이 난다. 이제 눈물은 내 의지의 영역을 떠났다. 이 단계까지 오면, 쏟아내서 수위가 낮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나는 남은 운동시간 동안 엉엉 울다가 나왔다.




모르겠다.


우울이 깊고 길어지면서 이제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할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포기했다. 우울에 대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더 얽혀 드는 느낌이 들어서다. 이게 답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뭔가를 하기엔 너무 지친다. 눈물 수위가 가슴께를 넘어가지 않도록 관리하며, 일상생활을 해 내는 것만 해도 나는 이미 너무 힘들다.

 

또 눈물이 목젖께로 올라온다.

이래서 내가 우울에 대해 생각하기가 싫다.  





작년 말 우울이 최고조를 찍었을 때 쓴 글입니다.

지금은 열심히 회복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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