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니 Apr 25. 2020

컨텐츠 제작자의 기쁨과 슬픔

하루종일 고민한 컨텐츠가 까였다. 벌써 두 번째.

까였다. 벌써 두 번째.


몇 시간에 걸쳐 쓴 뉴스레터였다. 새로운 마케팅 메세지를 처음 안내하는 레터였기에 머리를 뜯어가며 고심했다. 이미 한 번 빠꾸당한 건이라, 더 공을 들인 터였다. 내가 보기에도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결과물에 내심 뿌듯했다. 하지만, 돌아온 컨펌 의견은...


전혀 새로운 메세지로 보이지 않아요. 전체적으로 구조를 바꿔보세요.


종일 매달렸던 결과물이 까이는 꼴을 보고 있자니 눈가가 촉촉해졌다. 오늘 종일 매달린 결과물이 엉망이니, 내 하루도 엉망이 된 것만 같다. 나는 하루종일 뭘 한 걸까. 




커뮤니케이션 할 마케팅 메세지가 확정되면, 그 메세지를 어떻게 '컨텐츠로 어떻게 잘 전달하는지'는 오롯이 컨텐츠 제작자의 몫이다. 하지만 어떤 컨텐츠가 최상의 결과물인지 누구도 딱 잘라서 말 할 수가 없다. 좋은 마케팅 컨텐츠를 구성하는 원칙은 있지만, 어떤 것이 결과물이 나올 지는 컨텐츠 제작자 개인의 역량과 컨펌자의 시각에 달려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일한다. 우리 메세지를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며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컨텐츠 제작에 할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두번은 꼭 슬픔에 잠기게 되는 것 같다.



그동안 다양한 채널의 다양한 마케팅 컨텐츠를 제작한 제작자로서, 컨텐츠 제작의 어려운 점은 다음과 같다 :


1. 컨펌이 되느냐, 아니냐는 전적으로 컨펌하는 사람의 시각에 달렸다.


꼭 컨텐츠가 아니더라도 많은 직장인들이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을 것을 안다. 특히 컨텐츠는 객관적인 기준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이러한 특성이 도드라진다. 이럴 때에는 컨펌자가 생각하는 그림을 최대한 잘 이해하고, 구현하는게 답이다.(그리고 컨펌해주시는 분들의 의견이 대체로 정답이기도 하다.)


나는 팀원으로서, 팀장님이 생각하시는 그림을 맞추어 컨텐츠의 방향을 잡고 제작한다. 충분히 의견 교환 후 컨텐츠를 제작한다고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이란 항상 누수가 일어나는 것이므로... 나중에서야 커뮤니케이션 미스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있고, 내 경험의 부족으로 상사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때도 가끔 있다. 상사의 의중을 관심법으로 꿰뚫어볼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2. 컨텐츠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가끔, "이건 한 시간이면 되겠지"라고 시작한 일을 하루 종일 붙잡고 있는 경우가 있다. 컨텐츠의 틀이 정해져있어 구색을 맞추기만 되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컨텐츠 제작에 소요되는 시간은 항상 예상과 다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업무 스케쥴을 짜는 것이 어렵다. 아무리 적정 시간을 예상하고 분배해도 예상과 달라지는 일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업무에 따라 시간을 할당해두고 의도적으로 맞추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일종의 셀프 마감인 셈이다.


3. 그런데, 투자한 시간과 결과물의 퀄리티는 보통 정 비례한다.

...항상 이게 문제다. 30분만, 한 시간만 투자하면 더 잘 될것 같은데, 해야 할 건 많고... 


4. 가끔은, 공들여 제작을 완료한 컨텐츠가 결과적으로 산으로 가 있는 경우도 있다.


'오늘 잘 풀린다!'싶으면 일단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경우 열에 아홉은 중요 요소를 하나 이상 빼먹고 있을때가 허다하기 때문. 컨텐츠가 발행될 매체나 타깃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했거나, 메인 메세지가 애매하게 틀어져 전체 커뮤니케이션과 방향이 달라진다면 좋은 마케팅 컨텐츠라고 할 수 없다. 본질을 잊으면, 컨텐츠는 산으로 간다.


그런데, 컨텐츠가 산으로 가고 있는 중에는 그 사실을 깨닫기가 어렵다. 몇 번의 산행 경험 끝에, 이제 나는 중간중간에 키메세지, 매체, 타깃을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한 번 방향을 잘못 잡으면 돌이키기 너무 힘들다.



이건 아직 짬이 덜 찬 나의 이야기다. 구력이 있는 경력자는 훨씬 빨리, 잘 할 수 있다. 가끔 팀장님이 산으로 간 내 컨텐츠를 수정해 주시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경탄스럽다. 어떻게 그걸 뚝딱뚝딱 쉽게 해내시는걸까. 나도 나중엔 저렇게 될 수 있는 걸까?





퇴근 시간은 이미 지났다. 


나는 빠꾸당한 뉴스레터를 띄워놓고, 야근을 할지 아니면 퇴근할지 고민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무실에 남아 충분히 고민하면서 수정하고 싶은데, 지금 이 상태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지 의심스럽다. 


어쩔까, 하며 모니터 앞에서 멍을 때리는데 새 메일이 깜빡거린다. 어제 보고했던 프로모션 기획안에 대한 팀장님의 답 메일이다. 이미 한 번 상처받은 마음, 더 받을 상처도 없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메일을 열어본다.

 

모니씨, 기획안 좋네요! 이대로 진행 해 주세요~


첨부된 파일을 열어보니, 일부 예시를 추가한 것을 제외하고는 내가 쓴 내용 그대로다. 


배알도 없게, 기분이 뛸 듯이 좋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