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의 머그잔 이야기
내 마음에 그려놓은 마음이 고운 사람들이 있어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의 아침은 새벽녘 투명한 물방울이 대지를 적시고 그 위를 보석처럼 찬란하게 비치는 태양과 같이 찬란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곳을 살아가던 원주민들이 만들어 놓았던 수많은 문명을 잊어버린 그리움은 고독한 그들에게는 모진 시간이었지만, 그리움을 안고 살아가며 꾸는 꿈들은 인제 현실이 되고 21세기에도 그들만의 문명의 흔적을 그리고자 하는 이들이 있어 아름답습니다. 그렇지만 자본의 현실이라는 이해충돌 속에 수많은 문제를 안고서 서로가 풀어야할 고민거리를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래피드 시티(Rapid City)에서 16번 도로를 타고 남동쪽으로 30분 정도 운전을 하면 385번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여기에서 왼쪽으로 턴하여 385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20분 정도 운전을 하면 왼쪽으로 인디언 역사의 원대한 꿈의 실현인 크레이지 호스 메모리얼(Crazy Horse Memorial)을 만나게 됩니다. 입장료는 자동차 한대당 인원수를 계산하여 지불하게 되는데 2인 기준 24불, 3인 이상일 때는 30불의 입장료를 지불하시고 안으로 들어가면 저 멀리 크레이지 호스의 흉상 부분이 계속 조각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차를 주차한 후에 크레이지 호스 여행자 센터(Crazy Horse Tourist Center)에 들어가서 일인당 4불을 지불하여 버스 투어를 신청한 후 버스를 이용하여 그룹으로 크레이지 호스가 조각되는 현장을 여행하게 됩니다.
다코타 지방의 블랙힐스 지역은 백인 탐험가들이 처음으로 러쉬모어 산 (Mount Rushmore)사우스 다코타 지방에 도착하기 전에는 원래 아메리카 인디언인 수우족(Sioux)의 땅이였습니다. 그렇지만 1870년대의 골드 러시에 의한 급격한 인구 이주가 이곳으로 이동하면서, 이곳에 거주하던 인디언들과의 분쟁의 원인이 되었고, 어느 날 이곳을 침범한 연방정부 기병대가 매복해있던 인디언들에 의해 남북전쟁의 영웅 ‘커스터 장군’과 더불어 전원이 전멸당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1876년에 발생한 리틀 빅혼 전투(Battle of Little Bighorn)입니다. 이 전투는 인디언들이 연방정부 기병대와 싸워 가장 큰 승리를 이룬 전투였으며, 이때에 인디언을 이끌었던 추장의 이름이 수우족 중에서도 라코다 족 출신의 ‘크레이지 호스(Crazy Horse)’였습니다. 하지만 병력이나 조직 면에서 미국 군대를 이길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크레이지 호스’는 기병대에 의해 체포되어 결국은 죽음을 당하고, 대부분의 인디언들은 항복하여 보호구역으로 강제 이주가 되었습니다.
블랙힐스 지역은 이렇게 미대륙의 원주민과 이민자의 역사를 하나로 품은 곳입니다. 예부터 아메리카 인디언의 땅이었던 이곳에 네 명의 미국 대통령들의 흉상들이 새겨져 있는 러시모어 산에 조각되어지자, 이곳을 지키고 있는 수우족의 분노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인디언 지도자들이 백인들에게 원주민에게도 위대한 영웅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러시모어 산 조각 작업에 참여했던 코작 지올코스키(Korczak Ziolkowski)라는 한 폴란드계 조각가에게 당시 아메리카 원주민 추장이 자신들에게도 위대한 영웅이 있다며 조각상을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래서 1948년부터 러시모어에서 약 17마일 (27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 침략자에게 강하게 저항하고 장렬하게 원주민의 땅을 지켰던 ‘크레이지 호스’가 말 위에 앉아있는 모습으로 조각되기 시작되었습니다.
코작 지올코스키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시작한 ‘크레이지 호스’의 조각은 정부의 지원 제안도 거절한 채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들어가는 경비는 일절 기부금과 ‘크레이지 호스’를 찾는 관광객들의 입장료 등으로 충당하였습니다. 그가 1982년에 노환으로 사망하자 부인인 루스가 작업을 이어받았고 2014년에 그녀가 사망한 후 현재는 자녀들이 재단을 만들어 ‘크레이지 호스’ 조각을 계속 하고 있는데, 지금은 머리부분이 완성되었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의 이 조형물로 완성이 되는데, 높이는 563피트이고, 길이는 641피트이며 내어 뻗은 팔 길이만 263피트인데, 단지 기부금과 입장료로 언제 ‘크레이지 호스’가 다 완성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블랙힐스에서 만나는 ‘러시모어’와 ‘크레이지 호스’의 공존, 이러한 역사 이해의 충돌로 이어지는 미국 역사의 미묘한 단면에는 커스터 장군은 영웅으로 묘사되지만, 아메리카 인디언에겐 ‘크레이지 호스’가 그들의 전설적인 영웅이자 신앙의 한 부분이 되어있습니다. 처음에 ‘크레이지 호스’ 조각을 시작할 때의 수많은 백인 사회의 조롱, 수백만 불을 지원하겠다는 미국 정부의 제안도 있었지만, 이것은 정부의 소유물이 아니라 블랙힐스의 비극적인 역사를 기록하는 기념물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의 산물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영혼을 중요시하는 인디언 사회에서 ‘형상화’라는 비판도 존재하였지만 언제 완성될 지 모르는 시간의 존재감 속에서 역사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기대하며 오늘도 조금씩 크레이지 호수의 형상이 조각되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