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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종찬 Jan 30. 2021

Horseshoe Bend에서 한 폭의 수채화를 만나다

앤디의 머그잔 이야기

  애리조나 북쪽의 조그만 관광도시인 페이지(Page)에서 지내는 시간은 매우 분주합니다. 도시 전체가 삭막한 사막 지형에 둘러싸여 겉으로 보기엔 매우 건조한 도시로 볼 수 있지만, 콜로라도 강을 가로 막아 생긴 거대한 호수인 파월 호수의 비경이 그러하고 호수 하류로 이어지는 콜로라도 강의 비경 또한 잠시도 우리의 걸음을 쉬게끔 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파월 호수(Lake Powell) 전경

  페이지의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호수의 거대한 모습은 마치 이곳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조그만 행성일 것이라는 착각에 잠시 내가 디딘 흔적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곤 합니다. 마치 모래 위에 물방울을 흘려 그 길을 상상할 수 없게 만든 듯한 이곳의 비경에 머리 속의 모든 복잡함을 지워버리고 있습니다.

페이지(Page)의 Glen Canyon Dam에서 바라본 콜로라도 강

  굽이치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 이곳이 만드는 장관에 취해버리면 세상의 어떤 근심이나 걱정도 취해버린 나의 영혼의 한 부분을 털어내어 끝을 알 수 없는 저 깊은 계곡 속으로 깊이 빨려가고 있습니다. 예술을 한답시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과장하려는 불쌍한 우리의 영혼의 교만함을 눌러버리는 조물주의 위대한 솜씨는 감히 나라는 존재를 자연의 일부로 만들어 버립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대한 물줄기 속에 깊이 숨어버린 수 억년 전의 역사는 이제 서서히 자연의 예술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이곳을 찾은 우리의 영혼을 휘어 감고 있습니다.

호스슈 밴드(Horseshoe Bend) 이정표를 따라 호스슈 밴드로 사막길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광대한 자연의 힘을 느끼며 숭고한 마음을 품었던 파월 호수(Lake Powell)에서 89번 도로를 따라 4마일 정도 남쪽으로 내려오면 오른 쪽으로 호스슈 밴드(Horseshoe Bend) 이정표가 보이고 애리조나 사막 한 가운데 자연 그대로 꾸며진 주차장이 보입니다. 호스슈 밴드는 큰 관광지처럼 간판이나 이정표가 따로 없고, 그저 그냥 길가에 조그만 입간판 정도로만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스쳐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지만 이곳을 지나가기엔 너무나 많은 것은 간직한 장소입니다.

호스슈 밴드가는 길에 조그만 쉼터가 보입니다. 지친 여행자에겐 단비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주차장을 따라 사막 길을 한 참 걸어 언덕을 넘으면 언덕 아래에 조그만 그늘 집(Shelter)이 보입니다. 사막 한 가운데를 걸을 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단비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잠시 머물 수 있는 그늘만이라도 푹푹 빠지는 거친 애리조나의 사막 한가운데서 시원한 안식처를 마련하며 등줄기에 차고 흐르던 땀을 잠시 멈추게 합니다. 이렇게 20여분을 걸었을까? 

호스슈 밴드의 모습이 보입니다.

  저 멀리 깊은 계곡이 보이는가 싶더니 강 심장이 아니고선 볼 수 없는 멋진 장관이 모두의 시선을 고정시켜버립니다. 특별히 안전 장치가 없어 사진을 찍는데, 낮은 곳에서 가까이 다가가는 것 조차 쉽지 않을 만큼 호스슈 밴드의 위력은 모든 것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계곡의 모양이 말발굽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호스슈 밴드의 장관

  계곡의 모양이 말발굽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은 호스슈 밴드는 이름 그대로 말발굽 모양으로 콜로라도 강이 흘러가는 지형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한국의 강원도 정선읍 북실리와 귤암리 사이의 병방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한반도 모양의 밤섬 둘레의 동강 물줄기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유사합니다. 

이른 저녁 많은 사람들이 석양과 어우러진 호스슈 밴드의 모습을 촬영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호스슈 밴드에 석양이 찾아옵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보폭의 그림자가 호스슈 밴드에 길게 드려질 쯤이면 사막의 석양은 어느새 파월 호수와 이를 감싸는 애리조나 사막에 화려한 수채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자만했던 우리의 힘으론 불가능했던 순수 예술의 세계가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호스슈 밴드는 섬세한 예술작품이 되어 아름다운 수채화를 선물하고 있습니다.

  발끝 너머로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콜로라도 강의 물줄기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조각 조각 흩어져 있는 뱃사공의 노랫소리가 이 계절의 한 가운데로 메아리 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과 침식으로 인해 빚어진 자연의 섬세한 예술 작품들, 그리고 대지의 색깔이 만들어 놓은 오묘한 조화는 조물주의 위대한 작품 속에 부끄러운 자신의 교만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리고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만큼이나 빠르게 자연의 예술 작품은 변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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