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대로의 '이문세' 연가】

【올림픽 기원에 대한 의구심】

올림픽을 창안하신 피에르 드 쿠베르탱은 교육학자셨다. 문제는 그전에 비슷한 두 분이 전례를 갖춘 사건이 있었다는 거다. 과거와 미래가 통했다고 가정하면, 합이 24년인 쿠베르탱이, 동일한 의견을 발표한 이인의 연도 합인 38인 수를 이겼다는 것이다. 38광땡의 우연함은 어디에서 발현된 것인가?

수리운으로 보았을 때, 둘 다 좋은 수이나 적수공권의 왕의 기운인 24가 우세하였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육조•혜능의 일화를 보면, 수행을 잘하는 혜능을 보고 육조는 '불이야' 외쳤고, 혜능은 '도둑이야'라고 외쳤다고 한다. 스님들의 기치는 널리 프랑스에 전해져서, 올림픽의 기원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올림프스산에서 채화로 부터 개최지로 이어지는 성화 봉송은 그러한 일화를 담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 남의 집에 전세로 살 적에, 도둑이 들었는데, '도둑이야' 어머니께서 외치셔도 주변의 반응이 없자, '불이야'하시고 도움을 요청하신 어머니께서 간담이 서늘하셨던 기억이 중첩된다. 을사늑략이 아닌 독립지사들의 을사결의가 맞고, 병오늑략이 올바른 역사라 한다. 무오 독립 선언서라고 해야 또한 옳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기구하게도 그렇게 또 평행선을 달린다.

임진왜란 시에 봉수대가 다 허물어지고, 소식을 연통하는 법은 파발마가 아닌 전갈이었다. 이에 마라톤의 기원은 거듭 거슬러 올라간다. 전봉준의 의기양양하심은 어디에 근원이 있을까? 몽골의 전통가옥 게르는 게르만과 통하고, 식수로 적합지 않은 게르마늄 토양에 훈족의 또 다른 이름인 쌤족이 샘물의 기치로 경상도 사투리의 선생인 쌤과 상통된 점도 유쾌하게 다가온다. 쌤족의 와전이 햄족이었고, 소시지의 기원이라 억지 부리는 행색은 어찌 그리 역설적으로 어여쁠고! 우리나라의 산이 앙증맞다는 그들의 능청이 머털도사의 불호령 부른다.

흑사병이 창궐한 중세에는 미개의 극치에서 벗어나는 게르만의 발효인 마유주와 수유차가 꿀물이었을게다.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누가 춘향에게 억지 부린 변사또였을 고... 사실 대항해시대도 혜초의 일족이 이끈 무대였다고 한다. 그 전 시대에 이미 동양은 가야왕국 허왕후와 같이 북•남미와 중동을 잇는 교역로가 있었다. 허왕후가 가져온 돌덩이는 빛으로 바람을 일으킨 전윤성왕의 잔여물이고, 그녀는 빛의 해상로에서 당당한 주인공이었다.

올림픽의 이해와 의미부여, 자발적 참여, 동기 창출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답은 승화다. 바로 스님들께서 꽃피우신 총화시다. 저마다의 기량과 과학기술, 문화가 집약된 지구촌 문화의 장이다. 게르만족을 뒤이은 스승으로서 다가간 쌤족과 같이, 대륙에서 미개로 향한 정진의 올림픽 기원은 혜능에서 육조에 이르는 짧은 콩트였다. 배면 뛰기의 기여에서 과학기술집약의 대결로 향한 동행은 무엇을 일구었나! 지명의 의구심에 착안한, 삼척동자도 아는 망상해수욕장이 아닌 세계평화 구현이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연륜이 깊으신 노인이 본 역사의 단편이었고, 한때의 극복 방법은 총과 칼을 앞세운 뒤, 복수심을 무력화하는 기독교의 전파였다. 영화 '미션 임파서블'의 리듬감이 전도의 불가능을 일깨우며 글에 막걸리 한잔의 취임새를 넣는다. 금메달과 국위선양은 정복의 개념인 정상이 아니라, 함께 모색하고 추구해야 할 노스텔지아인 이상향 이리라! 승리의 폭죽은 인간의 피를 제물로 바치는 것이 아닌, 동양의 가치관이 투영된 갑골문자의 점성술과 같이 불경에서 이르는 방편에서 짐승의 피로 대체하는 지혜였다.

다시금 쿠베르탱의 제창은 불화인 탱화였고, 돈이 없어도 띵호와인 중국 왕서방의 서글픈 기치였다. 윌리엄텔에서 등장한 이이제이는 남미의 역사를 왜곡한 후안무치고, 방편을 알았음에도 아즈텍과 마야, 잉카의 후손은 정복자의 날조된 역사로 억울한 미개의 탈을 써야 했다. 따스한 해볕에 동로가 필요 없는 포근한 아지랑이는 올림픽에 대한 스님들의 역설적인 서글픈 허탈감이셨다. 배고픈 소쿠리에 꼴(깔:여물)은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언중유골의 훈계가 아닐까!

고전과 미래의 달가운 오작교는 허탈한 박탈감에 머리 벗어진 까막, 까치의 공로를 스님들이 아쉬운 공훈에 투영하여 빚은 기현상이다. 아리송한 존재에게 다가가는 가을은 붉은 부끄러움으로 애상함을 더한다. 다가오는 후안의 두려움으로 피어난 사자성어, '후생가외'는 공부에 매진으로 이끈다. 천고마비의 사자성어 속 오랑캐는 역사적 사실을 날조한 이들에게 역지사지를 일깨운다. 올림픽에서의 애국가 연주는 형설지공으로 이룩한 열정의 정수을 빼앗긴, 상흔의 지공너덜을 품은 무등산을 어루만진다.

88 올림픽의 슬로건은 더 높이, 더 빨리, 더 멀리의 채찍에 휴식의 여유로 다가오기도 한다. 감춤은 감출장자의 한자에서 연상된 스님들의 장 담그는 솜씨로 폭로의 연달은 충돌이었고, 스님들 일화로 비춰준 비밀은 발자취를 더듬어 선조의 얼과 혼을 뒷따르는 이의 벗이었다. 모자이크의 장막에서 모나리자의 미소가 보이기 시작함은 진실에 이르는 열정의 통로다. 멕시코와 미국의 장벽건설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약탈로 부터 보호하려는 혜안의 기치이자 슬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