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해석은 우주의 법칙과 원리를 해석하는 데 방해를 일삼고, 물만 축낸다. 능엄경의 오행에 요일의 달과 해(천자암의 쌍향수에 얽힌 순도와 도윤의 동아)를 넣은 7 음계의 화합과 조화로 욕토를 지나 정토, 지천, 보감의 우주 확장을 지나, 선천 도수의 우주 축소인 선윤(전윤)으로 들어서는 우주는 지구의 역사와 사주를 함께 한다.
우주 축소의 시대에는 공룡의 시대인 쥐라기를 맞고, 테르로 각박한 시련을 벗어나, 번영 • 공존 • 상생으로 거듭난다. 그전인 우주 확장기에 지구는 커지고, 식생은 작아지나, 질소 대기 생태와 해저 기지의 생태에서 유전자의 멸종을 피한다. 선천 도수인 선윤에서는 지구는 작아져 쥐라기 시대 마냥 각박한 생태에서, 해저 기지의 쾌적한 환경이 인류와 식생에 유리(유리광전)할 수도 있다(피안의 세계).
포함되지 않은 이는 해저 기지에서 지내는 이와 연동하여 서로 간의 단점을 보완하는 호흡으로 상생의 맥으로 거듭난다. 단, 해저의 거대 생물이 해수면에 가까운 생태와 환경으로 다가온다. 상어와 메가도돈, 대왕오징어, 귀신고래, 고래상어가 해수면에 출몰하는 문제도 제기된다. 해저 기지의 건설도 해저 거대 생물에 나쁜 시그널을 주어 우려스러운 상황을 자초하게 한다.
심층수에 매료된 이기적 종교는 반성과 성찰, 회개, 참회의 절차를 겪고, 이해와 공감대 속에 상생의 묘를 터득해야 한다. 외계의 시그널이 우주의 공존과 상생을 꿰하신 16번째 석가모니 부처의 지혜와 혜안에 지속가능성인, 반야의 지혜에 매달린 집념의 금강경과 같이 미래로 동행한다.
열반은 명당의 비기로 육탈과 정신적 해탈로 다른 세계에 환생으로 드리우고, '아약향수'는 다시금 그리운 고향에 수구초심으로 드리운다. 서편제 아리랑의 구슬픔이 동편제 구성진 경쾌함으로 다가오는 날은 보감에서 피어낸 과학과 학문, 문화의 지혜가 선윤에서 종지의 싹을 틔우는 미덕이며 대덕이더라!
화엄의 매력은 어떤 것일까? 행성이 10개인 태양계에서 행성 14개인 새로운 가이아로 발딛음은 암트롱이 달에 족적을 남긴 그때와 감정이 교차된다. 지구의 자전축은 63.5°에서 90°로 곧추어 선다고 한다.
석가모니의 열반에 이르시는 길은 지구의 사주를 예견하신 비유의 법문이자, 마음공부인 유전자의 비밀에 다가서는 방법이었다. 지구의 종말에 대한 예언은 우스운 수수께끼였고, 지성인의 전당인 유전자의 단체는 화엄계로 들어서는 대덕인 단초였다. 외도에 빠진 기독교는 카일라스의 산맥을 넘어 다시 불자로 거듭나셨다.
만행과 정진은 방일하지 않는 바른 수행으로 16 제자(16개의 행성)가 무상정등각으로 들어서게 한다. 외행성인 16번째 행성(싯다르타)의 시그널은 카오보이의 맥으로 태양계를 화엄으로 다스린다. 10번째 명왕성, 14번째 보선은 목성과 연동하여 불안정한 수리의 단점을 보완한다.
위기가 기회가 되는 피터 드러커의 명언은 훌륭한 유전자로 거듭할 사주를 타고난 유전자에 귀를 기울이게 하여 이해를 거쳐 설득으로 나아가는 화두였다. 무상정등각은 소리를 들으신 틱 증상이나 환청이 아닌, 보시는 관세음보살의 묘한 심오함이었다.
유전자는 우주를 담고 있는 정밀지도였다. 마음대로 되지 않은 자식은 유전자에 사주의 맥을 새겨 망나니 같은 마음을 다잡도록 하여, 부모님의 사자후가 쇠귀에 경 읽기로 끝나지 않는다. 석가모니께서 일컬으신 칠각지는 빛을 넘어 무상정등각의 이치와 원리를 아는 배움과 공부의 아리랑 고개였다. 스무고개(이십곡리)를 가지 않고도, 도동고개에서 우골탑인 학비를 잃지 않고, 아흔아홉구비를 넘지 않고도, 저절로 스스로 때맞춰 터득되는, 희생하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이자, 배려셨다.
줄탁동시로 공부에 매진하는 인내 • 노력은 시작이 반인 학구열과 강학의 열정으로 도가니(멜팅팟)를 개화한다. 뜨거운 울분이 '공부의 열탕이 시원하시다'는 부모님께서 품으신 헌신의 맥을 이해하게 된다. 제페토의 헌신은 피노키오(불상에 감응 • 감화 • 교화되는 연역법, 계 • 정 • 혜는 귀납법)에 인간이 되길 바라는 부모의 사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