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사의 오류】
인천의 검암역은 누구의 칼을 기억하게 하는가? 어제의 현명한 현인께서 이곳으로 부른다. 율생리는 한자 '서녘서'자와 '나무목'자가 합해 회의자인 '밤율'자와 살다는 '날생'자로 이루어졌고, 강화 초지대교 근처에서 명불허전으로 생각의 꼬투리를 캐낸다.
명성황후와 중국 청나라의 첫 개화는 대명항이라는 인천 지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에도 어제연 장군께서는 비장한 각오로 삼랑진의 정족산 사고를 지켜내셨다. 역사의 오류로 승리가 얼마만큼 왜곡되었는지는 알기 힘드나, 전등사에 보전된 진본 수자기의 존재로 어제연 조선 군대의 위용은 살아있었다.
갑신 개혁은 중국의 편에 기댄 개혁이었고, 김옥균,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은 명성왕후의 측에서 일으킨 삼일천하였다. 뒤에 이어진 삼일운동의 시간적 상징성은 의미심장하다. 일본에 기대어 일으킨 갑신정변으로 기록된 김옥균은 역설적으로 청나라로 도주하였고, 우장춘 박사의 부친에게 살해당했다. 서재필은 미국으로 망명한 서태후 세력에 기대어 미국에서 최초의 서양의사가 되셨다. 강화도 순무는 아마도 중국에서 개화의 첫 국가라고 전해준 기념 작물이지 않을까?
군산과 목포는 2차 전쟁을 위한 수탈의 전초기지였고, 군산에서 언***가는 미국으로 문화 보호를 내세우며,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그 아드님이 인** 박사다. 수많은 문화재가 도굴되어 미국과 일본으로 넘겨졌다. 다행인 점은, 일본으로 수탈된 권율의 칼과 달리, 미국으로 건너간 문화재는 다시 돌아올 수는 없어도 우방의 측면에서 한국 국적인 꼬리표를 달며, 역사에 간직될 수 있다는 행운이다.
불행은 그러한 돈이 지원된 종착역이 매국노인 김**이다는 역사적 비극이다. 할리우드와 흑인들에게 돈으로 접근한 김**의 할리우드는 민족기업인 미국법인에게 아성을 잃고 무너졌다. 음지 금융(불법 사채업)의 비극은 노** 때 극성을 띠었고, 뉴스에 등장한 희생자의 출혈은 일제강점기만큼 컸다. 좌익에 의한 빠징코와 바다이야기, 불법 사채업의 가렴주구는 한반도의 홍역이었다.
"해를 보셨다"는 아버지의 재치를 전해주신, 전등사 승석 스님과 다담에서 손바닥으로 가리지 못 한 역사적 진실이 아스라이 피어난다. '말할 수 없는 비밀'은 남녀 사랑극인 대만 영화의 서정성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광대한 서사성으로 전이된다. 타이타닉의 침몰은 어제연 장군의 기지와 용맹에 중첩된 조선과 미 공화당의 공작으로 영국의 거만과 허영을 질타한 훈계였다.
미 민주당의 허영과 거만도 흑인들의 부패와 저질성을 지향한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는 화승총의 도화선이 되길... 미군이 김** 집권기 때, 연세대 근방 신촌에서 억울한 사건에 휘말린 뉴스는 사실의 전말을 캐내어 굴욕을 당했다는 사실이,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지 않듯 '명약관화'로 피어난다.
미군의 수모는 미군에 장사하던 점포에서 보복하려 했으나 되갱기며 되풀이되었고, 노** 집권기에는 미군이 한국에서 퇴각하기까지 이르렀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는 배경음악과 함께, 미군부대 탱크 위를 점령한 좌익의 으기양양함에 그 당시의 매스미디어는 도배되었다.
당시의 시점에 생성된 지각과 존재한 나무에 그러한 사실이 기록되고 있기에, 지금의 과학기술로 복원 • 해석할 수 있는 여지인 민족정기와 한, 서러움을 지우려 일제는 지각인 정상의 바위에 쇠못질을 하였고, 송광사의 비사리구시는 민족의 역사적 사실을 간직한 죄목으로 베어져 밥을 담는 큰 푼이 되고 말았다.
전등사의 웅장한 소나무와 까마귀 때는 반포지효를 생각케 하며 군무 속 지저귐으로 효는 충의 근본임을 일깨워 준다. 국가를 잃은 민족에게도 희망은 있지만, 역사를 잊은 민족은 남미의 인디오처럼 미래가 없다. 한국답다를 잃은 전등사의 불상과 탱화에 발길의 의미는 퇴색되었지만, 깃발 전시 '수호'에 인간을 깨우치는 종소리는 그윽하게 한민족의 핏속으로 깊어만 간다.
오장치(태양빛 코로나를 발산하는 인 비슷한 물질)를 품은 불상은 날을 지새우며, 삼랑성을 지킨 조선군에 플라즈마로 (불면증에) 동요케 했고, 이불을 뒤척이며 날 샐 걱정에 친자기물인 숯에 감응(뇌 속 코로나 빛 상쇄)하며, 바람의 숨소리인 자장가에 겸허할 수밖에 없음은 호국불교의 자정을 기대할 수밖에 없는 유약함과 비겁함이었다. 정해결사(한국답다를 계승•발전한 불교 정화운동)의 시대성이 어제의 비겁한 타협에 경종으로 숯덩이 머리와 가슴을 먹먹히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