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비우고 싶었나 봅니다.

#250706

by 하로

주말에 천안에 갔다 왔습니다. 친누나가 천안에 살아서 2~3달에 한 번씩 방문합니다. 이전까지는 계속 고속/시외버스를 타고 이동했으나, 이번에는 자차로 가고 싶었습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그냥 본능에 이끌리듯 차에 타고 출발했습니다. 맑은 하늘을 배경삼아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며, 서태지 7집과 8집 전곡을 들으면서 흥얼거리다 보니 어느덧 친누나네 집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하자마자 왠지 모르게 정신이 맑아졌고 답답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이 느낌이 꽤나 어색했지만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1박 2일 동안 조카와 강아지들과 놀다 보니 긴장이 풀렸습니다.


천안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갑자기 러닝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이번에도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천안에서 집으로 이동하느라 피곤할 법도 하고, 습도도 80%에 육박할 정도로 불쾌한 날씨였는데 미쳤나 봅니다. 그래도 "운동도 될 겸, 좋은 게 좋은 거지"하고 뛰었는데 너무 상쾌했습니다. 뛰고 나서 시원하게 샤워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쓰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이유가 있었습니다.


생각을 비우고 싶었나 봅니다.






최근에 팀장님과 1:1 면담을 한 이후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지금 회사에서 J 커브를 그릴 수 있는 프로젝트나 경험이 무엇이 있을지, 거기에 저의 강점을 부각시키면서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는, 그런 가성비 좋은 경험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일감이나 프로젝트, 도메인 등을 생각해봐도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입사 동기들, 주변 지인들, 심지어 본부장님께도 면담을 신청하면서 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초반에는 입사 동기들과 술을 마시면서 이런 고민을 얘기했는데, 당시의 결론은 '담당 도메인을 "개인화"로 바꾸자'였습니다. 이렇게 결정된 근거는 (1) 회사의 올해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개인화"가 필요하고, (2) "개인화"에 필요한 데이터는 충분히 많은데 이걸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3) "개인화"를 지금 회사에서 플랫폼화하면 이직할 때에도 많이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개인화" 대신에 지금 하는 도메인을 넣어도 다 말이 되는 상황이지만, 그 당시에는 술에 취해서 그랬는지 "개인화"에 설득당해버렸고, 주말 내내 제가 하고 싶은 "개인화"에 대해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그 다음 주가 되었을 때, 주말 내내 정리한 생각을 (본부장님께 공유하기 전에) 팀장님에게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당시에 저에게 조언해주신 내용의 방향성이 이게 맞는지 확인받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팀장님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팀장님이 기대했던 것은 도메인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일하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정확히는 하늘에서 내려온 회사가 시킨 업무를 수동적으로 하는 환경이 아닌, 하나의 목적 조직 내에서 능동적으로 업무를 하는 환경으로 바꾸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제가 담당하는 도메인의 비전과 미션, 목표 등 전략을 짜고 그 방향성에 맞게 문제를 발굴해서 해결해나가는 그런 환경. 그게 현재 시장에서 원하는 PM/PO라고 합니다. 이 얘기를 듣고 너무 아차 싶었습니다. 지금 담당하는 도메인도 제대로 못하고 다른 도메인으로 가는 게 결국 도피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싶었습니다.






근데 이 과정을 다 들은 주변 지인들 중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뭐가 그렇게 조급한데?"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고요. 저도 왜 조급하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뭐가 불안해서였을까요? 사실 불안할 필요도 없고, 오히려 지금 도메인도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인기 도메인이었는데.


그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도 정의하지 않았는데도 그냥 주변 상황과 얘기만 듣고 흔들거리는 상황이었더라고요.


그래서 생각을 비우고 싶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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