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소문

by 임복경

촛불이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청안은 남편의 말을 기다렸다. 남편 몽서가 짐짓 중요한 말이라도 하려는 듯 뜸을 들였다. 분명 대수로운 얘기가 아닐 텐데…. 청안은 애써 마음을 누그러뜨리며 시선을 떨구었다. 팔급의 동생 거립을 집으로 불러들였고 곧 올 시각이었다. 몽서는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짧은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느릿느릿 운을 뗐다.

“부인도 신년을 맞아 궁에서 천문 무녀를 불러들였다는 소문 들었을 거요.”

“네….”

청안의 대답이 시원치 않자 몽서가 소탁 앞으로 몸을 바짝 당겨 앉았다.

“북쪽의 소성이 동서로 가로질러 운행하매 남쪽의 대성이 빛을 잃어간다고 예언했다잖소. 그..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

“군주께서 말씀하시길 남북의 위치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하셨으며 하늘의 별들은 세를 겨루지 않는다고도 하셨다 들었습니다.”

“그게 본심이 아니라고들 하니까 문제지요.”

“괜스레 떠도는 말에 현혹되지 마세요.”

“괜한 말이 아니오. 이미 도성 안 사람들은 죄다, 팔급 장군이 실세라는 둥, 북진하여 땅을 넓히는 게 실은 자기 세력을 키워가는 모양이라는 둥 하면서 그 집안으로 몰려간다 하오.”

“하나뿐인 왕자의 아버지요, 군주의 부군이십니다. 아무래도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몽서가 말을 채갔다.

“그러니까요, 숨만 쉬고 있어도 여차하면 곤란해질 처지에 저러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흔드니 명을 재촉하는 형세란 말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사람 일은 모르는 거 아니요… 우리도 오늘 동생을 후하게 대접하십시다. 혹시 모를 일이니 거립에게라도….”

“그리하지요.”

이번에는 청안이 말을 자르고 자리를 물러 나와 안채로 향했다.


청안을 보고 노복이 허리를 숙이며 다가왔다.

“거립 대사농께서 방금 도착하셔서 안으로 뫼셨습니다.”

“아무도 들이지 말아라.”

청안이 방안의 은은한 솔향을 가르며 들어와 거립과 마주 앉았다.

“진즉에 공과 이런 자리를 마련했어야 했는데 내가 무심했습니다.”

“혼란스러운 주변 정세 속에 중직을 맡고 계신데 사사로운 것까지 마음 쓰지 마십시오.”

거립의 빛나는 이마를 물끄러미 보다 옆에 놓인 나무 궤 위를 가리켰다. 두 뼘 남짓한 적송이 아담한 토기에 담겨있었다.

“지난해 춘국에 다녀오다 바닷가 돌 틈에서 자라는 저 나무를 발견했어요. 고고한 자태가 내가 본 중에 으뜸이라 지척에 두고 볼만합니다. 선물이니 사양하지 말고 받아주세요.”

“대장군께서 아끼는 것을 주신다 하시니 마음을 나눠주시는 듯하여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리 말해주니 나도 기쁩니다… 올해 가뭄으로 굶어 죽는 양민들이 늘고 있어 대책 마련하느라 공의 노고가 크십니다. 풍년을 기원하는 제를 주관하시기로 하셨다고요?”

“대신들의 뜻을 모아 빠른 시일 내에 풍년제를 올릴 계획입니다.”

청안이 잠시 거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그런데… 팔급 장군이 주둔하고 있는 처례성으로 몰려가는 이들이 날이 갈수록 더해 간다고 들었어요.”

“네, 백성들이 기근에 허덕이다 못해 물자가 풍부하다는 소문을 듣고 북으로 무리 지어 간다고 합니다. 흉노에게서 빼앗은 북쪽 땅에서는 수렵에 의지해 살아가다 보니 가뭄에도 굶지는 않는답니다.”

“팔급 장군이 분명 왕명에 따라 영토 확장에 힘쓰고 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허나 권세가 커질수록 시샘하는 불순한 무리가 생기기 마련이니 그 점을 유념하시라 전하고 싶습니다.”

“저의 오라비는 태생적으로 창공을 가르는 수리 같은 자입니다. 지칠 줄을 모르죠. 매일 더 높이 날고 싶어 하고 원하는 사냥감을 발톱으로 움켜잡아야 하루를 살았다고 여기는 사람이에요. 곁에서 보기만 해도 두려운 상대이긴 합니다. 정해진 공납보다 더 상납하라고 이번에 청하러 가는 참에 대장군님이 염려하시는 바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춘국이 주변국들과 동맹을 강화하려고 혼인책을 쓰고 있어요. 조만간 춘의 공주가 처례성으로 행차할 예정이라고 합디다. 춘의 왕이 팔급 장군과 손을 잡으려는 수는 오판입니다. 내 판단으로는 팔급 장군께서 거절함이 옳습니다.”

“그리 전하겠습니다만 주변에서 건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거립이 돌아오는 길엔 개들도 굶주려서인지 우는 소리 없고 겨울바람만 살을 에는 듯 매서웠다. 흔들리는 등화는 발끝만 간신히 비추었고 사방의 칠흑 같은 어둠을 물리치기에 역부족이었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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